첨단 과학 덕 보는 미라 연구

“19세 소년 파라오의 미라 주변에서 130여 개의 지팡이와 각종 약초의 씨앗과 열매, 그리고 약재로 쓰이던 허브 이파리 들이 각종 제의용 기구들과 함께 발견됐다. 불과 9년간의 통치 후 한창나이에 사망한 투탕카멘의 신체 상태는 그가 유전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오랫동안 시사해 왔었다.” 황금 마스크로 고대 이집트의 상징이 된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사인이 밝혀졌다. 19세의 나이로 사망한 이 소년 파라오의 사망 원인은 그동안 적지 않은 논란거리였지만 최근 미국의 학술 잡지 ‘아메리칸 메디컬협회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와 컴퓨터 단층촬영(CT), 방사선 검사 등을 통해 다리 골절과 말라리아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AFP통신과 독일 주간 슈피겔 등은 최근 “이집트와 이탈리아, 독일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최근 투탕카멘 미라에 대한 유전자 검사와 CT 등을 동원한 2년 동안의 조사를 통해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번 조사에 대해 이집트 고고학위원회의 자히 하와스 위원장은 “1922년 투탕카멘의 무덤이 발견된 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평가했다.첨단 과학을 통해 수천 년 전 죽은 고대 이집트 지도자의 사인을 조사한 결과 절대 권력을 누리던 왕족도 일반인처럼 고통 받고 질병에 시달리던 약한 존재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투탕카멘은 기원전 1333년부터 1324년까지 9년간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다.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1922년 11월 나일강 서쪽 ‘왕가의 계곡’에서 황금 마스크를 쓴 그의 미라와 수많은 부장품이 보존된 그의 무덤을 발견하면서 유명해졌다.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파라오의 무덤이 발견되면서 이후 투탕카멘은 고대 이집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동안 투탕카멘의 사인을 둘러싸고 학계에서는 이륜전차에서 떨어지거나 말에 차이는 사고로 숨졌다는 설과 독살설 등 여러 가지 가설이 제기돼 왔다. 이와 관련, 연구팀은 이번에 유전자 검사를 통해 투탕카멘이 치명적인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 원충에 감염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연구팀은 또 투탕카멘이 왼쪽 다리는 발이 안쪽으로 휘는 ‘내반족(內反足)’이란 증상으로 고생했고 오른쪽 다리는 뼈 질환을 앓고 있어서 혼자서는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평생을 지팡이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투탕카멘은 또 입천장이 갈라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선천성 기형인 ‘구개열’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투탕카멘의 뼈에서 추출한 DNA 검사 결과 일부 DNA 염기서열에서 유전자 이상이 발견됐고, 이 같은 이상은 투탕카멘의 할머니와 아버지로 추정되는 미라에서도 발견됐다. 이집트 파라오 왕족이 모두 근친혼의 결과로 추정되는 유전자 이상으로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간 게 확인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유전적 질환에 따라 면역 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은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렸다. 다리 관절 부근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골절상으로 인한 상처는 순식간에 악화됐다. 결국 어린 파라오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됐다는 것이 연구팀의 견해다.이와 함께 이번 연구에선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투탕카멘의 가계를 둘러싼 궁금증도 상당 부분 풀렸다. 10여 구의 미라에 대한 유전자 검사에서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아버지가 태양신 아톤신을 숭배하며 일종의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파라오 아케나톤이며, 그의 어머니는 아케나톤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투탕카멘은 다시 아톤신 숭배에서 기존의 아몬(아멘)신 숭배로 사회를 되돌렸다고 해서 ‘투탕크 아몬’, 즉 투탕카멘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밖에 연구팀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견된 태아 미라 2구도 투탕카멘의 사산된 쌍둥이 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투탕카멘은 그의 누이 앙케세나멘과 결혼했지만 둘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고, 다만 그의 무덤에서 태아 미라 2구가 발견돼 학계에서 논란이 됐었다. 종래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였던 네페르티티 여왕의 미라로 추정됐던 KV35YL 미라는 조사 결과 투탕카멘의 어머니 미라인 것으로도 확인됐다.이번 연구팀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대 이집트 미라들의 유전자 샘플들에 대한 연구가 집적되고 활성화된다면 고대 미라들은 새 생명을 얻는 격이 될 것”이라며 후속 연구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김동욱 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