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식 대기자들에게 희망의 빛을 주고 떠난 ‘혜화동 할아버지’ 고(故) 김수환 추기경, 지난 2월 16일은 그가 떠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항상 사회의 낮은 곳에 더욱 낮은 자세로 다가갔던 그가 떠난 후 한국 사회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첫째, 장기 기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확연히 높아졌다. 그 결과 장기 기증 희망 등록 건수가 2008년 9만3000명에서 2009년 한 해 동안 20만7000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아직도 1만7055명의 환자가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중 20%만이 장기이식을 받을 수 있고 이들조차 평균 3년 6개월 이상을 삶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장기이식을 기다려야 한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유럽은 아시아보다 장기 기증 문화가 널리 확산돼 있다. 이렇게 장기 기증이 보편화되고 효율적인 장기 구득 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는 인식 제고와 법안 마련 등을 위해 오랜 기간 적극적인 캠페인이 필요했다. 일례로 십여 년 전에는 스페인에서 장기 기증은 종교적, 심지어는 미신에 의해 금기시됐다. 그러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효율적인 장기 구득 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스페인은 장기 기증 문화가 세계에서 가장 잘 정착된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스페인들의 장기 기증 문화를 수용하는 자세에서 출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장기 기증자와 그 가족의 자필 동의서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의서가 확인된 모든 기증자들은 국가 등록 기관에 등록되며 기증자가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했을 경우 기증자에 관련된 정보는 즉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로 보내진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병원은 장기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 병원·공항·경찰·응급구조요원들과 연계할 뿐만 아니라 전국 5000명이 넘는 전문 상담 인력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이런 노력으로 스페인의 장기 기증 비율은 한국의 10배가 넘는 100만 명당 34.4명에 달한다. 필자의 모국인 네덜란드에서는 옵트 아웃 시스템(opt-out system:장기 기증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경우 전 국민을 잠재적인 장기 기증 희망 등록자로 간주하는 시스템)을 가동해 보다 원활한 장기 기증을 돕고 있다.

다행히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장기 기증에 대한 인지도와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노바티스는 서울대병원과 함께 장기를 기증한 사람과 기증받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히말라야 생명 나눔 원정대 활동을 펼쳤다. 등반은 성공적이었다. 흔히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 준 사람 모두 건강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사회의 편견으로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들도 해내기 어렵다는 히말라야 등반은 이러한 편견을 깨고 참여자들의 의지 역시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한국노바티스는 꾸준한 장기 기증 캠페인을 펼쳐 왔다. 이러한 ‘장기 기증 생명 나눔 캠페인’을 통해 본인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1000여 명이 장기 기증 서약을 했고 금년에도 관계 기관과 함께 장기 기증 캠페인을 이어갈 예정이다.

필자도 지난해 한국에서 장기 기증 서약을 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국경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지금이 바로 고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이웃 사랑의 정신을 다시 기억하고 되새겨 봐야 할 때다. 동시에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1만7055명의 장기이식 대기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 기증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생명 나눔의 의미를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번 달이 가기 전에 장기 기증 서약이라는 작은 행위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일은 때때로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피터 야거
한국노바티스 사장

약력 : 1957년 네덜란드 출생. 198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약물학 전공(박사). 2007년 노바티스 본사 국제협력부 총괄책임자. 2008년 한국노바티스 대표이사(현). 2009년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