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바꾸는 경기 부양책

세계 자산시장이 출렁거렸다. 중국이 19개월 만에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올린다고 발표하자 미국과 유럽 아시아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수요 감소 우려에 국제 유가와 구리 가격도 떨어졌다. 중국이 독일을 제치고 세계 최대 수출국이 됐다는 소식에 글로벌 증시와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를 보였던 흐름이 180도 반전된 것이다. 중국의 행보에 세계시장이 울고 웃는 롤러코스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중국의 긴축 조치가 가시화된 지난 2004년 코스피지수가 4개월여 만에 24% 급락한 ‘차이나 쇼크’를 겪은 한국 투자자들은 은행의 지급준비율 인상이 긴축의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당시도 은행 지준율 인상에 이어 금리 인상이 단행됐고 이듬해엔 위안화 절상이 이뤄졌다.은행의 지준율 인상을 전격적인 조치로 해석하는 외신들과 달리 중국에선 예고된 행보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저우샤오촨 인민은행장은 최근 “인플레 억제가 통화정책의 주요 목표”라며 “은행 지준율이 효과적인 정책 도구”라고 강조했었다. 경기 과열에 따른 급강하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때문에 경기 부양 정책 기조의 급격한 변화보다 미세 조정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 경기 부양책의 ‘미세 조정’을 짚어본다. = 중국의 경기 부양책은 ‘적극적인 재정’과 ‘느슨한 통화’로 대표되는 양대 축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의 긴축 조짐은 재정보다 통화정책에서 감지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부양에서 미세 조정으로의 변화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인민은행은 1월 18일부터 은행의 지준율을 0.5%포인트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중국이 지준율을 인상한 것은 2008년 6월 이후 19개월 만에 처음이다. 대형 은행의 지준율은 14.5%에서 15%로 인상됐다. 이번 조치로 대형 은행의 대출 여력이 3000억 위안(약 51조 원) 줄어들게 됐다.인민은행은 은행 지준율 인상을 발표한 1월 12일 은행 간 기준금리인 1년 만기 국채 입찰 수익률을 기존보다 0.08%포인트 올린 1.8434%로 설정했다. 5개월여 만에 처음 올린 것이다. 인민은행은 지난 1월 7일에도 3개월 만기 국채 입찰 수익률을 1.3684%로 지난해 8월 이후 적용되던 수준보다 0.04%포인트 높였다.은행 지준율 인상 발표가 있은 다음날인 1월 13일엔 중국 은행감독관리위원회와 중국 은행연합회가 대출 억제 지침을 잇달아 내보냈다.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자본 확충 감독 검사 지침’에서 “은행들이 리스크를 통제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경영에 개입하겠다”고까지 밝혔다.중국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지침은 부동산 중개 업체에 대출 커미션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게 골자다. 이 지침은 1월 1일부터 적용됐다. 부동산 중개 업체들은 대출을 알선한 뒤 은행으로부터 주택 가격의 1.2%에서 1.5%를 커미션으로 챙겨 왔다. 중국에선 은행들의 신규 대출 가운데 20%가 부동산 관련 대출에 달한다.중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이후 5건이 넘는 부동산 투기 억제책을 내놓기도 했다. 부동산 양도세 면제 대상을 구입한 지 2년 된 주택에서 5년 된 주택으로 줄인 것이나 부동산 가격이 과도하게 오른 일부 도시에 대해 중앙 정부가 감찰팀을 보낸 게 대표적이다. = 중국 정부의 최근 행보는 은행 대출 급증으로 불어난 유동성이 야기할 인플레와 자산 버블 리스크를 예방하기 위한 선제적인 조치로 해석된다. 느슨한 통화정책을 편 결과 은행의 신규 대출은 2008년의 2배가 넘는 약 10조 위안(약 1700조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새해 들어서도 1월 첫 주 은행들의 신규 대출이 6000억 위안(약 102조 원)에 달하는 등 대출 급증세가 멈추지 않자 중국 당국이 대출 억제 카드를 잇달아 꺼내든 것으로 관측된다. 6000억 위안은 지난해 하반기 월평균 신규 대출의 두 배에 이르는 수준이다.은행 대출 급증은 신규 대출의 3분의 2가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흘러들면서 심각한 후유증을 예고해 왔다. 인플레는 빈자(貧者)들의 박탈감을 높여 사회불안을 심화시킨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팡누(房奴: 내 집 마련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는 노예 같은 삶)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 거래는 전년 대비 35% 증가했다. 지난해 12월의 경우 70개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전년 동기 대비 7.8% 올라 1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경기 부양책이 만든 과잉유동성은 부동산 가격뿐만 아니라 다른 생필품 가격도 부추기는 인플레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1월 전년 동기 대비 0.6% 올라 9개월 연속 마이너스 시대를 마감했으며 12월에도 2% 정도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인플레 압력은 최근 폭설과 한파 등으로 가중되고 있다. 중신증권은 올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2.6%에서 3.2%로,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2.5%에서 3.1%로 올렸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마늘·고추·식용유 사재기가 일만큼 인플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요 증가에다 가격 급등을 기대한 투기 수요가 가세한 때문이다.지난 2001년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을 미리 예측해 막대한 부를 챙긴 ‘공매도의 제왕’ 제임스 채노스가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두바이보다 1000배 이상 심각하다”며 “중국의 과잉 부양된 경제는 붕괴를 향해 가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과잉유동성의 리스크를 경고한 것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경기과열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 싱크탱크인 사회과학원의 허판 연구원과 야오즈중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자산 거품과 인플레를 피하려면 통화량 억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며 “‘과도하게 느슨한 통화정책’이 지속될 경우 올해 중국 경제는 성장률이 16%에 이를 정도로 과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중국이 다음에 꺼내들 카드는 무엇일까. 공개시장 조작을 통한 유동성 회수에 이어 은행 지준율을 올린 뒤 금리를 인상하는 건 통상적인 긴축 시나리오다. BNP파리바는 2분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예측했지만 중국 언론들은 상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2∼3차례 더 은행의 지준율을 올린 뒤 하반기에 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중국 은행의 대출금리는 5년 내 최저인 연 5.31%(1년 만기 기준) 수준이다. 핫머니 유입은 인플레를 유발하고 통화 관리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통화 당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인플레 억제 효과가 기대되는 위안화 절상도 예상되는 카드다. 위안화 환율은 2005년 7월 복수 통화 바스켓에 기반한 관리형 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 3년간 21% 절상했지만 지난 2008년 7월 이후 수출 기업 보호를 위해 달러당 6.83위안에서 사실상 고정시켜 왔다.위안화 절상은 수출 회복세를 지켜보면서 시기와 절상 폭을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1년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수출에 타격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현재 상하 0.5%인 위안화 환율 변동 폭을 확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싱예은행의 루정웨이 이코노미스트는 “인민은행이 하반기에 위안화 환율 변동 폭을 1%로, 내년엔 3%로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오광진 한국경제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