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경영 선언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

지난 1월 14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국제회의장. 포스코가 매년 연초 주주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최고경영자(CEO) 포럼’에 참석한 정준양(62) 회장은 한쪽 입술이 부르튼 모습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에 차 있었다.정 회장이 사령탑을 이어받은 작년 2월 말 이후 지난 1년 동안 거함 포스코는 고통스러운 불황의 터널을 통과해 왔다. 창사 이후 처음 생산량을 스스로 감축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최근 포스코는 글로벌 철강사 가운데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며 부활하고 있다. 위기를 통해 오히려 한층 단단해진 모습이다. 해외 주요 철강사들은 40% 이상 감산에 돌입했지만 포스코는 상반기 20% 감산만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실적 호전이 가시화되면서 작년 초 30만 원대로 추락했던 주가도 두 배 가까이 뛰어 60만 원 대를 넘나든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40%대 초반까지 낮아졌던 외국인 지분율도 50%를 넘어섰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블루칩의 복귀’, ‘왕의 귀환’이라고 불렀다.정 회장은 올 들어 부쩍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4일 열린 시무식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접 파워포인트 자료를 띄워 놓고 새해 구상을 밝히는 파격을 연출했다. 이 자리에서 정 회장은 “2010년은 포스코 3.0 실현의 원년”이라고 선언했다. 창업기(포스코 1.0)와 성장기(포스코 2.0)를 넘어 포스코의 새로운 도약기를 열어가겠다는 구상이다.CEO 포럼에서도 정 회장은 올해가 포스코에 커다란 변화의 해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새로운 변화와 성장의 핵심 축은 인수·합병(M&A)과 해외 일관제철소 건설 프로젝트로 압축된다. 포스코는 최근 M&A 시장의 대어인 대우인터내셔널·대우조선해양·대우건설에서 모두 강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정 회장은 인수 1순위로 대우인터내셔널을 꼽았다.“지난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체력을 비축해 불황의 터널을 지난 후에 올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준비를 하라고 내부에 주문했지요. 그동안 체력도 어느 정도 비축했고, 이제 다가오는 기회를 잡기 위해 여러 가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포스코가 인수 후보로 나오는 세 기업 가운데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것은 대우인터내셔널입니다. 앞으로 자원 개발이나 마케팅 강화 측면에서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정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은 아직 시장에 매물로 나오지 않았지만 매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인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우건설의 경우 인수 가능성에 유보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자체 검토 결과 포스코건설과 사업 내용이 겹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대우건설 인수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정 회장은 “대우건설은 우선순위에서 맨 마지막”이라고 말했다.추가 설명에 나선 이동희 사장은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조선해양의 동시 인수를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을 깨고 “두 기업을 모두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정 회장은 “해외 제철소 프로젝트도 올해 가시적 성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포스코가 일관제철소 건설을 추진해 온 지역은 인도 동부 오리사 주(연산 1200만 톤)와 인도네시아 자바섬(연산 600만 톤) 등 두 곳이다. 최근 여기에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카 주(연산 600만 톤)가 추가됐다.“현재 인도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오리사 주 지역에 1단계로 4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가 지연된 이유는 두 가지예요. 포스코가 인도에 진출한 것은 광권을 준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자면 광산 탐사권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데 법적 다툼이 있어 늦어졌어요. 그게 2월 중에 판결이 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예상합니다.”두 번째 걸림돌은 제철소 부지 확보 문제였다. 다행히 작년 말 인도 중앙 정부로부터 해당 지역의 산림지역 해제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울타리를 치고 부지 조성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예정 부지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과의 이주 협상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1월 24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에 맞춰 수행 기업인 자격으로 인도를 방문할 계획이다. 정 회장은 “대통령께서 힘을 실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며 “중앙 정부와 오리사 주 정부에 협력을 요청해 연내 착공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정 회장은 카르나타카 주에 인도 제2 제철소를 추진 중인 사실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카르나타카 주 프로젝트는 포스코가 아니라 인도 현지에서 먼저 발표된 내용입니다. 아직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철광석을 보유한 인도의 각 주들이 저마다 철강 사업을 하기 위해 뛰고 있어요. 철광석이 풍부한 카르나타카 주도 광산 50%를 주는 조건으로 외자 유치를 추진했는데 아르셀로미탈이 주정부 승인을 받았고 포스코도 신청해 긍정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어요.”포스코는 6개월 정도의 시차만 두면 두 군데 제철소 건설을 동시에 진행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오리사 주에 짓기로 한 1200만 톤(3단계 완공 시) 규모의 제철소와 합쳐 인도에서만 총 1800만 톤 규모의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인도 사업 투자액도 오리자 주 제철소에 투입할 120억 달러를 포함해 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3~4년 뒤 인도 제철소 건설이 모두 마무리되면 포스코는 국내 생산 설비(3200만 톤)를 포함해 총 5000만 톤 이상의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철강사 순위도 현재 4위에서 2위로 올라선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과도 본격적인 경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올해 국내에선 일관제철소 양사 체제가 들어섰다.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뽑아내는 일관제철 분야의 포스코 독점 체제가 깨지는 것이다. 당진에 건설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지난 1월 5일 화입식(火入式)을 갖고 가동에 들어갔다.“같은 철강 업체 최고경영자(CEO)로서, 또 한국철강협회 회장으로서 먼저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소재(슬래브)가 부족해 해외에서 수입해 충당해 왔어요. 이번 현대제철의 가동이나 지난해 동부제철의 가동 등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수입과 수출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균형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올해 철강을 소비하는 자동차와 가전은 성장하지만 조선 분야는 부진이 예상됩니다. 아무래도 후판 쪽에서 경쟁이 치열해질 거예요.”정 회장은 특히 ‘선의의 경쟁’을 통한 고객 가치 창조를 강조했다. 경쟁은 궁극적으로 고객 서비스 향상과 기술 개발, 품질 제고를 가져온다는 믿음에서다.정 회장은 올해 동서남아시아에서 한·중·일 철강사의 ‘대격돌’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철강사들도 이제 국내시장의 생산 능력이 수요를 훨씬 초과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역시 내수시장이 살아나지 않고 있어 수출을 강화해야 할 처지다. 한·중·일 세 나라의 수출 물량이 집중되는 곳은 바로 동서남아시아다. 정 회장은 “그동안 물류 기지와 가공 설비를 꾸준히 건설하며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이 지역서 벌어질 ‘철강 대전’에서의 승리를 확신했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