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 러브’

극장가는 온통 ‘아바타’ 세상이지만, 모처럼 한국 영화 세 편이 나란히 개봉된다. 이나영 주연의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와 송윤아 주연의 ‘웨딩드레스’가 별다른 아이디어가 돋보이지 않는 기존 충무로 상업 영화의 전형이라면 보다 색다른 감각의 ‘페어 러브(감독 신연식)’가 눈에 띈다. 50대 남자와 20대 여자의 연애를 톡톡 튀는 감성으로 매만졌다.오십이 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형만(안성기 분)은 카메라 수리를 업으로 삼는 노총각이다. 어느 날, 8년 전 사기를 치고 도망간 친구가 암으로 죽으며 딸 남은(이하나 분)을 잘 돌봐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형만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큰 아가씨가 된 남은의 모습에 놀라지만 아빠보다 더 사랑한 고양이마저 잃은 아픔에 슬퍼하고 있는 남은을 가끔씩 돌봐주기로 한다. 남은 또한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사는 아빠 친구 형만을 측은하면서도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남은은 형만에게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형만도 당황스럽지만 처음 느끼는 이 감정이 궁금하다.언뜻 ‘8월의 크리스마스(1998)’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가 꽤 나는 형만과 남은은 ‘아빠 친구’에서 ‘오빠’가 되고 이상한 데이트를 시작한다. 사기를 친 친구의 부탁마저 거절 못하는 안성기의 우유부단하고 사람 좋은 표정도 ‘8월의 크리스마스’의 한석규와 닮았다. 이른바 충무로 제도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좋은 배우’로 2005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신연식 감독의 ‘페어 러브’는 나이 차가 나는 두 남녀의 연애라는 통속적인 주제를 유쾌하면서도 사려 깊은 태도로 관찰한다. 어딘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두 사람이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을 탐색해 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진진하다.일단 ‘페어 러브’의 두 주인공은 너무 사랑스럽다. ‘라디오 스타(2006)’의 매니저 캐릭터를 떠올리게 하는 안성기는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숙맥’이지만 어린 연인을 위해 불꽃놀이도 준비하고, 이하나는 국민 배우와의 애정 연기라는 걸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그런 그를 톡톡 쏘아붙인다. 그 관계가 힘든 순간도 찾아오지만 어설프게 감정을 쥐어짜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녹아들게 만든다. 이처럼 마음 편한 멜로 영화가 얼마만인가 싶다. 주성철 씨네21 기자 kinoeyes@hanmail.net고운(송윤아 분)은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다.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한 탓에 정작 자신은 웨딩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했다. 그런 고운에게 사랑하는 딸 소라(김향기 분)가 자라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히고 싶은 것이 그녀의 평생 꿈이다. 하지만 고운의 병세가 갑작스레 악화되면서 너무 빠른 이별을 맞게 된다. 이제 엄마가 가장 좋은 기억만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딸이 가장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준비한다.잘나가는 미모의 포토그래퍼 지현(이나영 분)과 순정파 남자 친구 준서(김지석 분)의 달콤한 로맨스가 무르익던 어느 날, 친아버지를 찾겠다며 유빈(김희수 분)이란 아이가 들이닥친다. 과거 지현이 남자였던 시절(?) 태어난 아들인 것. 가출까지 감행한 유빈과 어쩔 수 없이 딱 7일간 지내게 된 지현은 아빠로 변장을 시도, 세상에 둘도 없는 미녀 아빠가 된다. 하지만 어설픈 콧수염에 자꾸 튀어나오는 여자 말투를 가진 지현을 유빈은 수상해하고 준서의 의심 또한 커진다.케이티(케이티 페더스톤 분)는 여덟 살 때부터 주위를 맴돌던 정체불명의 존재를 느껴왔다. 최근 들어 점점 더 강도가 심각해지는 이상한 사건들 때문에 남자 친구 미카(미카 슬롯 분)는 그들의 24시간을 감시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이후 의문의 발자국이 남겨지는 등 수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케이티는 퇴마사를 부르지만, 퇴마사는 집 안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