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아이폰의 인기 몰이와 국내 통신 시장의 변화

12월 국내 출시된 애플 아이폰이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아이폰은 출시 10일 만에 10만 대 이상이 판매됐으며 올해 안에 20만 대 가까이 판매될 것으로 알려지는 등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업체들은 아이폰 선전에 당황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큰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 아이폰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애플 마니아들의 호들갑’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하지만 아이폰과 관련한 변화는 심상치 않다. 가장 먼저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정보기술(IT) 제품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폰을 구입하는 것이다.최근 한 저녁 모임에 참석했을 때 테이블에 앉은 8명 중 4명이 아이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여성으로 평소 IT 기기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마치 애플에서 신입 사원 교육을 받은 것처럼 아이폰에 대한 자랑을 친구들에게 늘어놓았다.최첨단을 달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 휴대전화 시장에서 아이폰이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선 지금까지 등장한 스마트폰 중 가장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 스마트폰은 이름만 ‘스마트폰’이지 사실상 전혀 스마트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아이폰은 전화 기능을 포함해 웹서핑, e메일 등 인터넷 기능을 휴대전화에서 쉽게 쓸 수 있게 구현했다.물론 이 기능들은 이전에 출시된 다른 제품에서도 수년 전부터 구현이 가능한 기능이었다. 하지만 휴대전화 광고 문구에 써 있는 이 기능들을 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기능을 만든 프로그래머들조차 이 기능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기보다 참았다가 PC방이나 사무실로 돌아가서 인터넷을 하는 것이 편리하다.이런 기능 때문에 인터넷 기업 및 영업 조직을 가지고 있는 증권사·보험사·제약사 등은 직원들에게 아이폰을 지급하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시장은 기존 윈도 모바일 계열 스마트폰이 장악하고 있었다.두 번째로 ‘생태 친화적’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생태계는 아이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업체들을 말하는 것이다. 아이폰을 중심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체, 액세서리 업체를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내 모바일 업계는 거대 통신 기업과 대기업만이 존재하는 시장이다.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과 창의성보다 자본력과 브랜드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애플은 개발자들이 아이폰 관련 프로그램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앱스토어를 열었다. 아이폰 사용자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아이폰 또는 PC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구입할 수 있고 이 비용은 애플과 개발자가 일정한 비율로 나눠 갖는다. 애플 앱스토어는 전 세계 최근 15억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아이폰은 앱스토어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반면 국내 모바일 소프트웨어는 통신사별로 구분된 모바일 사이트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이 경우 꼭 이통사 무선망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데이터 요금이 발생하며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은 이통사별로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특히 인기 있는 프로그램 경우에는 다른 이통사에 공급하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보호 케이스, 차량용 트랜스미터, 외장 스피커 등 아이폰 관련 액세서리 시장은 4조 원에 달할 정도로 하나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폰 케이스, 차량용 트랜스미터, 외장 스피커 등은 수백 개의 업체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페라가모,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까지 이 시장에 뛰어든 상황이다. 애플은 아이팟 시절부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산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액세서리 전략을 아이폰에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음원·동영상 등을 판매하는 콘텐츠 서비스인 아이튠즈도 아이폰 생태계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아이팟 사용자들은 자신의 아이튠 계정을 아이폰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애플은 아이튠즈에 전자책 콘텐츠도 추가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전자책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현재 전자책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마존의 라이벌은 다른 전자책 업체가 아니라 애플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애플은 아이폰의 가치를 높여주는 생태계를 구성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국내에서 아이폰의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우리나라보다 일찍 아이폰이 출시된 일본의 경우를 타산지석 삼아 볼 필요가 있다.잘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은 PC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율보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다. 내수 휴대전화 업체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노키아와 모토로라 등 글로벌 기업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일본은 지난해 7월 아이폰 3G가 먼저 출시될 당시 예상보다 저조한 판매량에 ‘일본에서 아이폰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일본 내 아이폰을 판매하는 소프트뱅크가 정확한 판매량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판매량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업계에서는 현재까지 약 100만 대 이내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하지만 최근 일본 내에서 진행된 설문 조사를 통해 아이폰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컨설팅 업체 BP컨설팅이 진행한 ‘아이폰 이용 동향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 내 아이폰 사용자는 평균 연봉이 569만 엔으로 고소득층에 속한다. 또 주목할 만한 점은 평균연령이 남성 40.6세, 여성 36.1세로 높다는 것이다. 또 사용자 대부분이 음악·콘서트 등 문화생활에 많은 지출을 하는 유행에 민감한 층으로 알려졌다.특히 올해 처리 속도가 빨라진 아이폰 3GS가 출시된 이후 일본에서 상황은 아이폰에 유리하게 바뀌고 있다. 신제품 출시에 어플리케이션 스토어가 힘을 받으면서 일반 소비자들도 아이폰을 구매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이에 당황한 일본 내수 휴대전화 업체들은 아이폰 대항마로 구글이 개발한 휴대전화용 운영체제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상황이다.일본 내에서 안드로이드 플랫폼이 아이폰의 적수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집안의 쥐를 쫓기 위해 사자를 끌어들이는 격’으로 보기도 한다. 국내시장에서도 안드로이드 플랫폼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볼 수 없다. 휴대전화 시장 무게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는 추세로 볼 때 국내 업체들은 기존 플랫폼보다 향후 지속적인 경쟁력을 쌓을 수 있는 독자 플랫폼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플랫폼인 ‘바다(www.bada.com)’를 추진하고 있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바다의 세부 내용을 발표하고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인 ‘바다 SDK’를 개발자들에게 공개했다. 그동안 하드웨어만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가 새로운 플랫폼을 주창하고 나선 것은 향후 경쟁 구도에서 주도권을 놓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아이폰 출시가 어떤 여파를 가져올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국내 모바일 시장에 자극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이형근 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