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공조 왜 필요한가

요즘 들어 국제 공조라는 용어가 자주 들린다. 갑자기 나온 단어는 아니지만 다양한 국내외 경제 이슈의 해결 과정에서 그동안 국제 공조가 핵심적 역할을 해 오지 못한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이슈에서 주인공은 국내적 정책 과제였고 국가 간 협조, 혹은 국제 공조는 보조적인 성격을 가지는 ‘기타 추진 방안’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그러나 이제 더 이상 국제 공조가 들러리 역할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의 금융 위기와 같이 대외 경제 부문을 중심으로 한 위기의 대응 과정에서 국제 공조는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 규제 강화나 거시 건전성 규제보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이번 금융 위기를 통해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금융은 국제화되고 있지만 규제와 감독은 그렇지 못해 결과적으로 규제와 감독의 실효성이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G20 및 금융안정위원회(FSB) 등에서 신흥 시장국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번의 금융 위기를 통해 신흥 시장국의 달라진 역할에 대해 전 세계가 공감할 수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도 달라진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출구전략을 비롯한 거시경제 영역에서도 국제 공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9월 초 런던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출구전략의 국제 공조의 필요성이 합의됐다. 우리 정부도 출구전략의 핵심인 금리 인상이 국제 공조하에 추진돼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특성상 우리나라만 금리를 인상할 경우 국제 자본 이동의 급격한 변동을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주요국들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그렇지만 같은 금융 변수라고 하더라도 환율과 관련한 국제 공조는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이자율이나 금융 감독 등과 달리 환율에 변화를 주는 국제 공조가 이뤄질 경우 이득을 보는 나라와 손해를 보는 나라가 갈리기 때문이다.한 나라의 통화가 약세를 띨 경우 수출 경쟁력이 개선돼 경기 확장적인 성격을 띠지만 강세를 띠는 나라는 경기 위축 효과가 불가피하게 된다. 막대한 국제수지 흑자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 위안화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강세 압력을 중국 정부가 거부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과 관련한 국제 공조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국제 공조 없이는 전 세계 경제의 파국 등 중차대한 위기에 이를 것이라는 공통의 인식이 있을 때일 가능성이 크다.글로벌 금융시장의 통합화와 국가 간, 지역 간 점염효과 등의 영향으로 대내외 위기 발생 시 한 나라의 독자적인 대응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위기에도 모든 나라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영향권 내에 있었기 때문에 위기의 와중에서 주요 선진국들과 신흥 개발국들이 긴밀하고 신속한 협조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우리나라만 하더라도 한·미 통화 스와프 협정을 비롯해 일본 및 중국과 통화 협정을 체결한 것이 외화유동성 위기 극복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자본의 이탈에 대응해 이러한 공조를 하는 대신 무작정 외화보유액을 확충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외화 매입에 따른 비용과 저금리 운용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금융의 국제화와 개방화 추세는 필연적이다. 여기에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경제 대국의 금융 부문도 국제금융 시장과의 통합이 더욱 진전될 것이다. 금융 위기를 비롯해 세계경제 현안이 생길 경우 국제 공조의 중요성이 더 커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의 형성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약력: 1962년생. 87년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석사. 2000년 미국 퍼듀대 대학원 경제학박사. 2005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자문위원. 2007년 LG경제연구원 수석 연구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