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한경비즈니스 공동기획 - 노사관계, 선진화로 가는 길

최근 노동시장은 오리무중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한치 앞조차 내다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노사 간 화합에 대한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지만 올 하반기에 13년째 끌어온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과 복수 노조 허용 문제가 예고돼 있어 노사 양측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노정 간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분위기다.‘대공황’에 버금갈 정도로 엄청난 파고를 불러일으켰던 글로벌 금융 위기는 세계 노동시장의 지형마저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반목과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이 회사의 심각한 경영 위기로 이어져 대량 해고는 물론 최악의 경우 회사 부도를 초래한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때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로 군림하던 제너럴모터스(GM)가 쇠락의 길을 걷다 지난 6월 파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일이 좋은 예다. GM의 사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기업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 기업이 가질 수 있는 총체적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GM의 사례가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노사 간 계속된 불협화음은 GM의 불길한 미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미국 내 최고 강성 노조인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과의 대립이 노사 관계의 건전성을 해치면서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트렌드를 읽지 못한 채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해 있던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은 GM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만들었다.불황이라는 대외적인 변수로 노사 양측은 상생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통계 수치로도 잘 알 수 있다. 4월 30일까지 노사 간 양보 교섭과 협력 선언을 벌인 경우는 126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83건에 비해 3.3배나 늘어난 것으로 노동부 조사 결과 밝혀졌다. 주로 양보 교섭은 임금동결 형태(587건)로 나타나고 있으며 유연성 증진(48건)과 같은 강제적인 구조조정보다 임금 반납, 동결(207건)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2000년대 전반부터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이어지자 미국 대부분의 노조들이 단체협약에서 각종 복지 조항을 포기하는 대신 고용 안정에 집중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들은 건강보험과 같이 개인과 관련된 이슈들에서만 한목소리를 내고 있을 뿐 대정부 투쟁 등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일본에서도 임금 인상보다 고용 유지와 일자리 창출로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상징인 도요타자동차노조는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기본급 동결을 선언했고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올해도 임금을 더 이상 올리지 않기로 회사 측과 합의했다. 대신 노조는 고용 보장이라는 성과를 회사 측으로부터 얻어냈다.전문가들은 상생을 위해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결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는 국가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 5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09년 세계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57개국 중 27위를 기록해 지난해보다 4단계나 상승했다. 그러나 노사 관계의 유연성을 말해주는 노사 관계 생산성 부문은 57개국 중 56위를 기록해 여전히 낮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지난해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 차질액은 9513억 원이었으며 수출 차질액은 4억2300만 달러(5055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일례로 우리나라 대표 수출 기업인 현대자동차만 하더라도 1987년 이후 파업으로 입은 손실액이 11조4654억 원에 달한다. 기아차(5조7009억 원) 손실액까지 합칠 경우 파업에 따른 손실은 17조 원으로 늘어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늘어나고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ISO-26000’ 발효를 앞둔 시점에서 노사 간 대화 복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숙제”라며 새로운 노사 관계 확립의 필요성을 주문했다.무엇보다 노사 화합은 회사의 경영 실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1980년대 한국 노동계의 강성 노조 중 한 곳이었던 조선 업계만 하더라도 무분규 전통을 이어가면서 상생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15년째 무쟁의를 기록 중인 현대중공업은 올해도 지난 3월 노사 화합 결의대회를 갖고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다’라는 슬로건까지 만들었다. 지난 2006년 9월 독일 콘티사가 노사분규 없이 배를 잘 만들어줬다면서 노조위원장의 부인을 선박 명명식에 스폰서로 초청할 정도로 현대중공업의 노사관계는 돈독하다.그렇다면 노사 화합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노동부가 집계한 ‘2008년 노사 협력 선언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전체 노사 협력 선언 사업장의 근로 손실 일수는 15만5194일로 미선언 사업장(65만4208일)의 4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무엇보다 노사 협력 선언은 고용 안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노사 협력 선언 사업장의 이직률은 27.9%로 미 선언 사업장 41.4%보다 10%포인트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균 근속 기간도 1892일로 미선언 사업장(1046일)보다 500일 이상 더 긴 것으로 집계됐다.노사 관계가 안정된 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의 역사가 길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007년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장수 기업의 조건-노사 관계를 중심으로’라는 보고서를 보면 국내의 대표적 장수 기업인 삼양사(84년), 유한양행(82년), 한국타이어(67년), 아모레퍼시픽(63년), 동국제강(54년)은 공통적으로 가족 문화에 기반을 둔 강한 일체감을 형성하고 있으며 고용 안정과 직원에 대한 투자를 중시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또 노사 간 동반자라는 인식이 확고해 위기일수록 강한 응집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조 스스로가 30분 연장 근무, 600% 상여금 반납, 소모성 경비 10% 절감 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했으며 경영이 정상화되자 회사는 보답으로 800%가 넘는 상여금을 지급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듀퐁이나 171년의 P&G, 140년의 코닝 모두 회사 경쟁력의 원인을 안정적인 노사 관계에서 찾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노사 화합의 모든 책임이 노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이 강성 일변도로 일관했던 것은 노정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GM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노조를 상대로 한 경영진의 대응책이 때마다 제각각이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풀이된다. 사우스웨스트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제임스 파커는 “대부분 노사 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돈 문제가 아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존중”이라고 강조한 것은 노사 양측 모두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값싼 인력을 고용해 쥐어짜기 식으로 경영하는 월마트가 노사 불안에 발목을 잡힌 것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