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와 따로 노는 모바일 산업
휴대전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 명에게 물어봤다. 한 명은 “10년 전이나 다른 것이 없어요. 전화를 주로 하고 문자 메시지를 가끔 주고받는 정도입니다”, 다른 한 명은 “휴대전화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는 물론 무선 인터넷으로 웹서핑, e메일 확인 등도 하고 내비게이션으로도 사용합니다. 휴대전화는 제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전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인이며, 후자는 이동통신사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이다.최근 국내 모바일 인터넷 환경을 성토하는 글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폐쇄적인 국내 모바일 인터넷 환경 때문에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모바일 환경에서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이동통신사는 3G 환경에서 마치 휴대전화가 마술 지팡이라도 되는 듯이 모든 것이 다 된다고 광고하고 있지만, 실제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용하는 용도는 그저 전화를 걸고 받는, 그리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치고 있다. 출고가가 100만 원이 넘는 휴대전화가 나오고 있지만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느끼는 휴대전화의 가치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현재 국내 모바일 환경을 보면 너무 비싸 누구도 선뜻 구입하지 못하는 물건으로 가득 찬 화려한 백화점과 같다.지난 5월 국내 3G 가입자는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000만 명을 넘은 뒤 1년 만에 두 배로 성장한 셈이다. 이동통신사들은 국내 3G 가입자가 매년 두 배씩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3G 가입자 증가에 대해 자화자찬하고 있다. 하지만 3G의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면 국내 3G 가입자에 대한 통계는 속 빈 강정이다. 3G는 음성 데이터와 비음성 데이터(데이터 다운로드)를 모두 할 수 있는 3세대 이동통신의 약자로 데이터를 내려 받는 속도가 기존 2세대(최대 2.4Mbps)보다 빨라진 14.4Mbps(HSDPA 경우)에 달한다.이 때문에 음성 통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멀티미디어 데이터, 인터넷 검색 등을 빠르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3G로 혜택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싼 데이터 사용료 때문에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2세대 이동통신과 같은 음성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단순 커뮤니케이션에 전화를 사용할 뿐이다.이상하지 않은가?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친구에게 보낼 수 있는 문자 메시지는 80자 이내다. 물론 그 이상으로 보내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때에는 이동통신사에 추가로 요금을(심지어 받는 사람도 낸다) 내야 한다. 이는 이동통신사들이 음성 통화를 제외한 데이터에 사용료를 붙이기 때문인데, 소비자가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데이터 사용료는 사채업자에게서 돈을 빌렸을 때만큼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 특히 각 이동통신사들이 홈페이지와 매달 날아오는 청구서에 친절히 적어둔 ‘데이터 패킷당’ 요금을 보면 무척 저렴해 보이지만 실제 사용해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요금이 나온다.물론 3G 전환을 위해 많은 비용을 투자한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가입자당매출(ARPU)을 늘리기 위해 데이터 사용량에 요금을 부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이런 요금제가 상식을 벗어나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현재에도 무선 인터넷 요금제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다며 데이터를 들고 나와 반박하겠지만, 무선 인터넷 요금제 사용자 중 휴대전화를 처음 구입할 때 약정으로 의무 사용 기간을 정한 사람을 제외하면 실제 사용자는 더 적을 것이다.최근 사석에서 만난 한 IT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무선 인터넷 환경은 나이지리아와 인도네시아보다 못한 전 세계 최악이며 독점적인 이동통신사의 입김으로 휴대 인터넷 시장이 침체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국내 이동통신사 3사가 제공하는 무선 인터넷은 각 사의 모바일 서비스를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후발 주자인 LG텔레콤이 오즈 서비스를 통해 일부 무선망을 개방했지만 완전한 무선망 개방으로 보기는 어렵다.비싼 비용 때문에 사용하는 소비자들도 적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및 콘텐츠 제공 업체들도 마치 유신시대처럼 이동통신사의 검열을 받아 배치되기 때문에 서비스 업체들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이동통신사의 눈치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한 업무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서비스와 콘텐츠가 나오기는 어렵다.망 개방 수준은 시장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갖춘 모바일 서비스 및 콘텐츠 업체들을 만들어 풍부하면서도 건강한 모바일 인터넷 환경을 만들어 내야 한다. 현재 국내에 모바일 관련 상장사는 일부 게임 업체와 휴대전화를 이용한 결제 서비스 업체 몇 곳이 전부다.이 중 게임 업체가 일본의 유명한 게임을 그대로 카피해 내놓아 큰 수익을 냈다는 것은 IT 업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다양한 서비스가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사가 떼어주는 수익만 가지고는 창의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없다. 이동통신사는 서비스 콘텐츠 업체를 하청 업체가 아닌 파트너사로 대우해 줘야 한다.단말기 시장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단말기 각자에 고유 번호가 있어서 심(SIM:Subscriber Identification Module: 가입자인증모듈) 카드가 있어도 특정 단말기에서만 사용이 가능할 뿐, 심 카드만 갈아 끼우면 어느 단말기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외국과 다른 기형적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반대로 외국인들이 자신의 심 카드를 가지고 국내 단말기에 연결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가 외국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모바일 후진국이 되는 것이다.변화는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패배를 안겨주기도 한다. 1990년대 말 PC 통신이 인터넷으로 전환되면서 하이텔과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 서비스 업체들은 변화를 타지 못하고 기존 PC 통신에 집중했다. 이 업체들은 모두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됐다. KT는 하이텔로 매달 들어오는 고정 수익 수십 억 원 때문에 PC 통신 시장을 포기하지 못해 수조 원의 포털 시장을 네이버와 다음에 내줬다. KT가 지금 파란 등에 쏟아 부은 돈의 10분의 1만 당시에 투자했다면 네이버와 다음이 주도하고 있는 인터넷 포털 시장은 달라졌을 것이다.국내 이동통신 시장을 돌아보자. 이동통신사들은 매년 거액의 수익을 벌어들인다고 각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시장을 본다면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국내에서 성공적인 모바일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공략해야 한다.언제까지 구글,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같은 해외 업체 서비스만 사용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경쟁을 통한 좋은 모바일 서비스 및 환경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다가올 모바일 인터넷 시장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강력할 것이다. 소탐대실할 것인지는 이동통신사가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생각대로 T’ ‘쇼를 하라’ 어떤 의미로 이런 광고 카피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광고가 현재 이동통신사들이 행하고 있는 폐쇄적인 모바일 전략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 쇼를 하고 있다.국내 이동통신사들은 더 큰 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가장 좋은 인력들이 이동통신 업체를 직장으로 선호하고 입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역량이면 국내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수도 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세계적인 휴대전화 업체로 발돋움한 것처럼 국내 이동통신사들도 세계적인 통신사가 되어야 한다. 이형근·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