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훈 예림당 대표이사

‘예림당’은 더 이상 출판사이기를 거부한다. 지난 6월 코스닥에 입성한 예림당은 ‘21세기 아동출판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꿈꾸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콘텐츠’와 ‘글로벌’이다.1973년 설립된 예림당은 아동출판 전문 회사로서 탄탄한 기반을 닦아왔지만, 역시나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창업자 나춘호 회장의 뒤를 이어 2005년 취임한 나성훈 대표이사는 신세대 경영인답게 예림당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다.지난 2월 예림당의 과학 학습만화 ‘Why(와이)?’ 시리즈가 2000만 부 판매 고지를 넘어섰다. 출판물의 공식 집계가 이뤄진 후 2000만 부는 처음이다. 그러나 ‘Why?’ 브랜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콘텐츠를 활용한 과학체험전 ‘Why? 파크’가 8월 서울 능동 어린이회관 내에 오픈했고, 학습용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돼 공중파, IP TV, 케이블 방송을 통해 상영되고 있다. 과학체험전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Why? 과학아카데미’도 구상 중이다. 체험전의 일회성 경험에서 아쉬운 부분을 반복 교육해 과학적 사고를 길러주는 것이다.만화인 ‘Why?’는 해외에 수출하기도 용이하다. 현재 중국과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대부분의 동아시아 지역에서 현지어로 출판돼 판매되고 있다. 또 프랑스에서도 출간됐고, 러시아 업체와도 계약 협상 단계다.나 대표가 예림당의 경영을 맡은 것은 그가 36세 때부터다. 창업자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사를 맡은 것이지만 너무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매사에 꼼꼼한 나 회장이 아들을 학생 때부터 ‘하드 트레이닝’ 시켜 테스트를 통과한 결과였다.나 대표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회사에 나와 창고에서 책을 나르며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나 대표는 한경비즈니스 ‘아, 나의 아버지(714호)’에 기고한 글에서, 서운할 정도였던 아버지의 무심함을 아쉬워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그는 ‘오너의 아들’이라는 특별 대우를 전혀 받지 못했다.그가 졸업한 무역학과에는 은행에 취업한 선배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는 ‘은행원은 시원한 데서 일하는데, 창고에서 물건 나르며 힘들게 일하는 출판사 일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졸업 직후 회사에 회계부서 자리가 비어 임시직으로 잠시 들어온 뒤 점점 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되면서 결국 회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아버지가 가족은 뒷전일 정도로 열정을 쏟은 회사 일에 결국 자신도 빠져버린 것이다. 나 대표는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판박이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Why?’ 브랜드에 너무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나 대표는 “과학 외에도 한국사, 세계사 등 사회과학, 인문 교양으로도 향후 200종이 더 계획돼 있다. 적어도 5년 이상은 이것만 하기에도 빠듯하다”고 얘기했다. 당분간은 어린이가 어른이 되듯 ‘ Why?’의 성장을 뿌듯하게 지켜봐 달라는 주문이었다.약력: 1970년생. 89년 서울 중동고 졸업. 97년 단국대 무역학과 졸업. 1996년 예림당 입사. 2002년 예림당 전무이사. 2005년 예림당 대표이사(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