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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럭저럭 명함을 내놓을 만한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후배가 사표를 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데이 트레이더’였다. 책상 위에 컴퓨터 3대를 켜놓고 수시로 거래한다는 게 그때만 해도 신기하게 보였다. 더구나 매도 매수의 프로그램까지 어떻게 짜서 특정 종목의 주가가 일정 수준으로 오르거나 내리면 자동적으로 사고파는 프로그램 매매까지 한다니….우연한 계기에 그를 만났다. 당연히 돈은 많이 벌었는지 물었다. 그는 썩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라는 게 대답이었다.수시로 사고판다면, 도무지 장기 투자와 단기 투자의 구별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다가 “글쎄, 10분 정도?”라고 했다. 주식을 사서 10분 이상 가지고 있으면 장기 투자요, 그전에 팔면 단기 투자라는 얘기였다. 기업과 정부의 중·장기 정책과 단기 전략만 하더라도 최소한 1년 정도를 기준으로 삼고, 장·단기 금리도 그 정도를 볼 것이다. 10분이라면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안 된다. ‘증권 투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해야 한다’, ‘우량 주식을 사서 대물림한다는 자세로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흔한 지침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이야기였다. 이론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긴박하게 움직이면서 시장과 싸워 어떻게 이기는가.전문 투자자들을 보면 늘 신통방통하기만 한데 근래 급등한 주식시장에서 개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수익을 내고 지난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시장 급락으로 인한 손실을 충분히 회복했을까. 개인 사무실을 운영 중인 변호사 후배도 이 대열에 가입한 개미다. 그는 최근 많은 변호사들이 그렇듯 수임 건이 많지 않아 남는 시간에 손을 댄 주식 투자가 부업 이상이 됐다. 그의 설명을 차분히 들어보면 나름대로 투자의 틀도 짜여 있다.그에게서 들은 가장 인상적인 말이 기억난다. “주식을 사서 집에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르든 내리든 기본적으로 당일 처리한다는 얘기다. 그에게서 투자는 보통 길어봤자 하루가 된다. 웬만하면 그날 사서 그날 처리한다는 것인데 요즘 활동 중인 개미, 개인 투자자의 한 모습인 것 같다.기관은 고성능 컴퓨터로 먼저 매매이들 둘 다 개인들 중에서는 ‘수준’을 갖춘 것도 같다. 그러나 기관들과는 역시 비교가 안 된다. 첫 번째 사례는 월가에서 전해진 트렌드다. 고주파 매매(High Frequency Trading:정확한 번역은 극초단타 매매라고 하는 게 맞겠다)라는 것인데 골드만삭스 등 대형 투자은행의 신기법이다. 고성능 컴퓨터의 월등한 속도를 무기로 일반 투자자들보다 극히 짧은 시간차로 먼저 주문 정보를 알아내 매매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사자 주문은 시장 도달에 0.3초가 걸리는데 이 방식은 0.03초 안에 매수 정보를 파악해 매매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가령 보통 투자가가 특정 주식을 1만 원에 매수 주문했다면 이 방식은 0.03초 안에 주문을 감지해 9500원에 사들이고 그 시간차를 이용해 1만 원에 되팔아 1주에 500원의 이익을 거둔다. 결국 감독 당국에 적발돼 제재를 받게 됐지만 이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국내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생했다. 서울의 증권거래소 건물 안에 입주해 있는 NH투자증권 등 4개의 증권 선물 회사들은 코스콤의 랜망을 이용해 0.012초 만에 거래를 체결해 왔다. 거래소 밖 경쟁 업체들의 주문 체결 속도는 0.016초. 0.004초 빠른 매매로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초단타 매매가 이뤄지는 선물과 옵션거래에서는 이 같은 시간차가 중요하다고 한다. 거래소도 결국 문제점을 인정해 이들 4개사의 매매 시스템을 외부로 옮기게 하고 전산망도 외부 통신사를 경유하게 했다. 최근 하이닉스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대형 주가연계펀드(ELF) 투자자들의 사례도 차원은 다소 다르지만 시사점은 컸다. 하이닉스 주가가 사전에 약정된 특정일의 기준치보다 1050원 낮게 형성되면서 투자자는 투자 수익이 71.2%씩 왔다 갔다 했다. 1050원의 가격차로 38%의 이익이 날 것이 33.2% 손실로 반전됐다. 문제는 단순히 일부 투자자들이 고위험 상품에 손을 댔다가 적지 않은 손실을 봤다는 차원이 아닌 것 같다. 이런 파생상품 구조에서 기관들의 영향력이 개인들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 구조적인 불균형이다.이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하이테크 시대에는 그만큼의 위험도 감내해야 한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