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의 ‘황제’ 보라스
지난 8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신인으로 사상 최고액을 받은 선수가 탄생했다. 이 선수는 미 샌디에이고 스테이트대학(SDSU)에 재학 중인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로 지난해 꼴찌를 한 워싱턴 내셔널스로부터 4년간 1510만 달러(약 187억 원)를 받았다. 드래프트 순위 1위인 스트라스버그는 키가 2m에 달하는 데다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뿌려대 메이저리그 에이스감으로 평가받고 있다.그가 받은 1510만 달러는 지난 2001년 1080만 달러를 받고 시카고 컵스에 입단한 마크 프라이어의 몸값을 경신한 신기록이다.신인 선수에게 이처럼 엄청난 돈을 안겨준 사람은 에이전트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스콧 보라스다. 보라스에 대한 평가는 선수들에게 ‘천사’, 구단들에는 ‘악마’라는 호칭이 따라붙을 정도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보라스는 지난 2006년 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뉴욕 양키스의 계약 협상에서 10년간 2억7500만 달러를 받아냈다. 이 액수는 지금도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 계약금이다. 보라스는 지난 2002년 박찬호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할 때 5년 계약에 6500만 달러를 받도록 해주기도 했다. 사실상 메이저리그에서 비싼 선수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계약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선수 1명에게 주어지는 몸값이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보니 보라스에게는 온갖 비난이 쏟아진다. 이번 스트라스버그의 계약 과정에서도 구단들이 그의 몸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으면 1년간 일본 프로야구로 가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그러나 보라스가 터무니없는 액수로 구단들의 돈을 갈취하는 파렴치한은 결코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메이저리그의 구조적인 모순 해결에 접근하면서 선수들에게 이득이 되고 구단에도 득이 될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에이전트의 ‘황제’라는 호칭이 그저 주어진 게 아니다.보라스는 메이저리그가 프로농구(NBA), 미식축구(NFL)처럼 리그 수입에 기반을 둔 ‘신인 연봉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점을 질타한다. 올해 신인 선수 계약 현황을 보면 그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의 스포츠 비즈니스 저널에 따르면 미식축구 구단들은 1차 지명 신인 선수들과 계약하면서 총 4억2300만 달러를 썼다. 프로농구는 신인들에게 1억20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8200만 달러에 그쳤다.보라스는 “이처럼 프로야구 선수들의 계약금이 낮다 보니 우수한 선수들이 농구나 미식축구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키가 2m가 넘는 스트라스버그도 얼마든지 농구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보라스는 덧붙였다.보라스는 “신인 선수로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는데 8년이 걸렸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의 수입은 35억 달러에서 65억 달러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라도 좋은 선수가 나타나면 최고 액수는 바뀔 것이라고 단언한다. 또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스트라스버그에게 1510만 달러를 베팅한 워싱턴 내셔널스는 현재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승률이 최하위다. 그러나 스트라스버그를 스카우트하며 내년을 도약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 플랜’을 짜고 있다. 스트라스버그가 다닌 대학에서는 그가 피칭하는 날만 골라서 볼 수 있는 ‘스페셜 패키지 시즌 티켓’을 비싸게 팔기도 했다.미 언론들은 그 누구도 보라스가 악랄하게 돈을 올려 받았다고 보지 않는다. 구단이나 선수 모두 손해 보지 않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에이전트라는 직업은 단순히 선수들의 계약이나 일정 관리 등 뒤치다꺼리나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선수를 발굴하고 그 선수가 제대로 몸값을 받게 하면서 해당 종목의 인기를 끌어 모으고 관련 산업의 부흥을 이끄는 ‘프로모터’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때로는 경쟁 종목과의 형평성을 따져보고 고쳐야 할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면 이를 시정하는데 앞장설 필요도 있다. 보라스의 성공 비결은 이를 누구보다 잘 실천했다는 것이다.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 한은구·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