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사의 스타일링
1994년 호주 매쿼리대 졸업. 95~96년 닥터마틴 스톰 마케팅. 2001년 홍보 대행사 오피스에이치 설립. 각종 패션지 보그, 바자, 엘르, 지큐, 아레나 등에 칼럼 기고. 저서에 샴페인 에세이 ‘250,000,000 버블 by 샴페인맨’ ‘행복한 마이너’가 있음.‘신사’라는 단어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 신사’를 많이 떠올린다.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말끔한 슈트 차림에 모자, 잘 닦여진 구두, 그리고 지팡이 또는 우산 정도가 되겠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부르게 된 이유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귀족제도 때문이다.귀족 계급인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한 ‘젠틀맨’이란 말은 중세에는 신분적 의미가 강했지만 15세기 이후 하나의 강력한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됐다. 신사는 타임지가 하루 정도 늦게 배달되는 시골 저택에서 스포츠로 신체를 단련하며 귀금속 장신구는 피하고 금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티 내지 않는 멋스러움과 검소한 생활이 영국 신사의 자랑이며 조건이었다.그렇다면 한국 신사는 어떠한가. 신사(紳士)의 한문 뜻을 풀어 쓰면 ‘선비 정신’, 또는 ‘큰 사내’라는 의미가 있다. 한국 신사의 뜻 속에는 영국 신사에서 말하는 외적인 스타일뿐만 아니라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라는 내적인 스타일의 의미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 신사는 밖으로도, 안으로도 정말 스타일리시한 남성이라고 할 수 있다.먼저, 얼마 정도의 단시간 동안 갖춰질 수 있는 한국 신사의 스타일링은 어떤 것일까. 아마 우리네 아버지들이 40대였을 1970년대가 가장 ‘한국 신사다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한다. 물론 기성복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자기만을 위해 양복점에서 옷감을 직접 고르고 테일러에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이해하고 있는 한국 신사야말로 진정한 멋쟁이들이었다.화려한 명품 양복 브랜드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진 요즘 필자는 가끔 겸손하고 클래식한 한국 신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촌스럽게 애국심 운운하며 스타일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스타일링 정신을 지키자는 것이다. 이제, 필자는 약 30년의 역사를 함께해 온 한국 신사의 스타일링을 오늘날 멋지게 즐길 수 있는 스타일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소싯적 소위 ‘멋 좀 부렸다’ 싶은 아버지 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국내 신사 맞춤 정장 브랜드 ‘장미라사’는 1956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당시 주력품이던 제일모직의 양복지에 대한 테일러링 테스트를 하기 위해 마련한 부서에서 출발했다. 삼성과 제일모직의 심벌 꽃은 장미다. 제일모직이 부서에 대한 애칭으로 그들의 옷을 만드는 부서를 ‘장미라사’로 부른 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브리오니, 제냐 등의 내로라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가 즐비한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한국 신사들의 정장 브랜드 ‘장미라사’는 올해로 입점 12년을 맞았다. 한때 브랜드 이름을 영어식 이름으로 바꿨다가 단골들이 반발해 1년 만에 원상 복귀했다는 후문. 필자도 ‘장미라사’라는 명칭이 약간은 어색하긴 하지만 온갖 영어 이름들로 즐비한 패션 브랜드 속에서 더 정이 가는 것은 사실이다.12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장미라사는 요즘 트렌드도 적극 반영하며 여전히 많은 단골 손님들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장미라사의 디자인은 스리 버튼이지만 기능은 투 버튼인 양트임 캐시미어 재킷은 슈트의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극대화하면서 완벽한 착용감을 만들어 낸다.한국 신사의 슈트를 갖추고 난 다음에는 단연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구두를 스타일링하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그 다음 스텝이다. 요즘은 무광의 자연스러운 가죽 소재의 가죽 구두가 유행이지만 한국 신사라면 약간은 광택이 나는 레이스업 슈즈를 매치하길 권한다.한국 신발이라고 하면 누구나 ‘금강제화’를 떠올릴 것이다. 금강제화는 1954년 ‘금강제화산업사’로 설립되었는데, 최고의 품질과 양심 있는 가격으로 많은 한국 남성들의 대표적인 신발 브랜드로 발전해 왔다. 금강을 대표하는 신사화 브랜드인 ‘리갈’의 브라운 컬러의 클래식한 가죽 레이스업 슈즈는 신을수록 편안하며 중후하고 고급스러움을 더해준다.마지막으로, 한국 신사 스타일링의 완성은 시계의 스타일링이다. 한국 신사의 경제적 능력과 감각적 센스를 대변해 주는 아이템인 시계는 한국 신사 스타일링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이나 시계의 본고장인 스위스의 시계만이 존재했던 1970~80년대에 최초로 한국 시계 브랜드인 로만손이 론칭했을 때 많은 한국 남성들이 그 자부심을 바탕으로 로만손 시계를 애용해 왔다.이제는 러시아와 중동 지역 등 해외에서 더욱 유명한 대한민국 토종 시계 브랜드 로만손은 지난 2005년에는 개성 공업지구에 로만손 협동화 공장을 준공해 통일시계를 내놓는 등 남북화합에도 한몫했다. 로만손시계는 탁월한 촉감의 고급스러운 장미라사의 캐시미어 슈트와 아주 잘 어울리는 매칭 아이템이다. 특히 가죽 밴드 시계 고유의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느낌과 골드 베젤로 화려함을 더한 로만손 아델(Adel) 라인의 시계(TL9224M)가 아주 좋은 예가 될 것이다.이렇게 한국 신사의 스타일링을 끝냈다면 이제는 회의장으로든, 사적인 모임으로든 ‘행차’할 때 무엇을 타고 갈 것인지 고민해 보자.‘한국 신사에게 어울리는 차는 어떤 것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필자의 눈에 띈 차는 바로 현대 자동차의 제네시스다. 1967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고유 모델 시대를 여는 한편 마이카 시대를 이끈 주인공이다. 최초의 자동차 모델인 ‘포니’를 개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후로도 현대 자동차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쏘나타는 올해로 20년이 훌쩍 넘어 우리나라 자동차 5대 중 1대가 쏘나타라고 할 정도로 많은 한국 신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의 신모델인 제네시스의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라인과 듬직한 무게감은 한국 신사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위와 같은 한국 전통 브랜드들은 그 역사가 오래된 것이지 스타일이 절대 촌스럽거나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넘쳐나는 브랜드들 속에서 한국 정통 브랜드가 그 긴 역사를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이유는 그 정통성과 시대에 맞춰 연구하고 발전하는 현대성 때문이다.물론 한국 신사 스타일링을 한다고 해서 꼭 한국 전통 브랜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다만 ‘신토불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 신사를 이야기할 때 한국 전통 브랜드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번 칼럼을 쓰면서 많은 추억을 떠올렸다. 아침이면 구둣솔로 구두를 탁탁 터시고는 말끔한 장미라사 양복을 입고 출근하시던 아버지와 컬러풀하고 트렌디한 폴 스미스 정장을 즐겨 입는 내 모습을 그려보니 아련한 미소 같은 것이 떠올랐다.이런 모습들이 큰 대비일 수 있지만 아버지도 나도 마음만은 한국 신사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 신사가 되기는 아주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몸가짐이 점잖고 예의 바르며 교양 있는, 속이 꽉 찬 한국 신사는 그야말로 긴 시간 동안 끊임없는 수양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다. 그에 비해 한국 신사로서의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링은 단기간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갖고 있는 한국 브랜드를 선택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여기서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모든 스타일링이 내 몸의 일부분인 듯 자연스러워야만 진정한 한국 신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