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고 탈도 많았던 금년도 세제개편안이 발표됐다. 결론적으로 개편안을 통해 정부가 제시한 방향은 ‘감세 기조의 유지와 부분 증세를 통한 재정 건전성의 개선’이라고 표현될 수 있다. 이번 개편을 둘러싼 배경과 그 내용을 살펴본다.우선 큰 그림에서 올해 개편안의 핵심은 증세에 있다. 개편 결과 10조5000억 원의 추가 세수가 확보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물론 정부 입장에서는 증세의 측면이 부각되는 것을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정부가 돈을 더 내라고 하면 좋아할 납세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그러나 증세하지 않고는 지금 우리 재정이 처한 어려움을 개선해 나갈 방법이 없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재정은 지속적으로 악화돼 왔다. 특히 참여정부 5년 동안에는 국가 채무가 두 배 넘게 수직 상승했고 현 정부에서도 경기 부양 과정에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규모가 작은 우리 경제에서 재정 건전성이 나쁘면 언제든지 국가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지출을 줄이든지 수입을 늘려 재정 건전성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한다.경제 위기가 아직 완전히 극복되지 못한 현 단계에서 지출을 줄이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결국 수입을 늘리는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개편안인 것이다.증세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내년까지 추진될 예정인 개인 및 법인소득세율의 인하 정책, 즉 감세 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증세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나날이 추락하는 국가 경쟁력과 잠재성장률을 강화하기 위해 선택한 감세 정책을 시행 1년 만에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상 감세 정책은 그 효과에 대한 찬반도 분분하지만 단기적으론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 정책이다.그 대신 정부가 선택한 방법은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세 부담을 더 지우는 것이다. 부자 감세라는 선동적 구호로 매도돼 온 현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한 적극적 반론이고 보완책이다. 고소득 전문 직종에 대한 과세 강화, 고소득층의 근로소득 세액공제 폐지와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임시투자세액공제의 일몰 종료 등이 이에 속한다.이 방안들은 과세 원리상 방향도 맞고 시기적으로도 적절하다. 펀드 등에 대한 과세 강화와 세금우대 저축 상품의 축소, 학원, 병원, 유흥 업종, 관광 호텔 등에 대한 부가가치세 과세 강화도 같은 맥락에 해당된다. 대부분이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고 지적받아 오던 과제들이다.이런 측면에서 감세 기조를 유지하되 고소득층과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정 건전성을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정부의 개편 방안은 일단 합격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제시된 개편 방안들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제정책에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공존하기 때문이다.대표적인 예가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전세보증금 소득 과세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부유층에 속하는 이들에게 과세한다는 취지는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2001년에 이 제도가 폐지될 때 제기됐던 문제다.따라서 세금 전가로 인한 전세금 급등과 월세 전환에 따른 전세 물량 감소라는 부작용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최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감안할 때 반드시 보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또한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저한세율 재인상의 경우에도 이미 감세 정책으로 낮아진 법인세율과의 지나치게 작은 격차가 문제가 된다.장기적으로 법인세 체계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 추가적인 방향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약력: 1958년생. 83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92년 미 뉴욕주립대(알바니) 경제학 박사. 99년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조정부장. 99년 WTO IGE그룹 한국대표.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