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중심 지하철 상권

지하 공간은 이미 우리에게 경제활동의 중심이 됐다. 지하철역은 사람들의 이동 공간인 동시에 수백만 명의 생계 공간인 것이다. 지하철 승강장에 설치된 신문 가판대에서부터 역 주위에 형성된 대규모 쇼핑상가까지. 그리고 불법이지만 역사에 좌판을 깔고 덤핑 물건을 파는 이에서부터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서울은 이미 지하철 1호선부터 9호선까지 운행으로 세계적인 지하철 도시가 됐고 역세권은 상권의 거시적 측면의 중심이다. 하루 동안 지하철로 실어 나르는 사람은 서울과 수도권이 약 550만 명, 부산과 대구가 약 100만 명 정도다. 수송 면이나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하철과 상권은 떼어 놓을 수 없다.1974년 8월 15일 서울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청량리~서울역 간 역사적 첫 운행을 시작으로 지하철 시대를 열었다. 이어 지방 대도시도 광역화되면서 주변 도시 간 연결 수단이 필요해졌고 1994년 부산지하철 개통을 시작으로 2000년 들어 대구·대전·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도 지하철이 속속 개통되고 노선 연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교통량의 4.1%만을 부담했던 지하철은 오늘날 교통 수요의 50% 이상을 흡수하며 터부시되던 지하 공간이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 되어 갔다.재미 있는 점은 지하철의 지상 운행 지역은 상권이 후퇴한다는 점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경우 지상철 구간인 한양대~성내역 구간, 그리고 신대방~신도림역 구간의 주변 상권은 다른 지하철역 상권에 비해 발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상철 구간의 상권은 지상철 구조물로 인해 상권의 발달을 저해하고 크게 위축시켰다.반면 지하철의 역사 내부와 그와 연결된 지하도상가는 지난 1980년대 냉전시대 대피소의 기능을 강조한 시설물에서 이제는 시장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주요 상권으로 변모했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인천·부산·대구·대전·광주 등 전국의 도심에 약 72개소의 지하상가에서 4만여 명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지난해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전국 지하도상가 실태 조사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전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조성된 지하도상가는 72개소에 이르며 전체 면적 60만6938㎡에 점포 수는 1만2779개로 나타났다. 전국 지하도상가의 총연장 길이는 3만2836m이며 출구 수는 774개, 지역별 소재로는 서울36.1%, 인천 20.8%다.주 이용 연령층으로는 20대 31.9%와 40대 33.3%로 학생, 젊은 층과 주부들이 주 고객이다. 월평균 관리비는 19만319원이었고 일평균 영업시간은 11시간 36분, 일평균 총매출액은 89억7200만 원에 달했다. 그리고 업종별로는 의류, 신발이 58%로 주를 이루고 있었다.전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역은 어딜까. 지하철 이용객 수에 따른 순위를 정한다면 서울지하철 2호선의 강남역이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강남역의 하루 승객 수는 20만4000명 이상으로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강남역 지하를 이동하는 사람 수를 감안한다면 유동인구수의 폭은 훨씬 커진다. 지하 상권 중 최고라고 할 수 있다.이어 서울 1, 4호선의 서울역(16만9000명) 잠실역(16만3000명) 고속터미널역(15만3000명) 삼성역(14만7000명) 사당역(14만2000명) 선릉역(14만1000명) 신림역(14만1000명) 순으로 나타났다. 2호선 역들은 이용객 수에서 상위에 올라 타 노선에 비해 월등히 좋은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지방 지하철에서는 부산 1, 2호선의 서면역이 11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전체 순위에서는 13위에 올랐다. 그리고 부산 1, 3호선 연산동역(5만3000명, 종합 68위), 대구 1, 2호선 반월당역(5만 명, 종합 74위), 대구 1호선 중앙로역(4만3000명, 94위)이 유동인구가 많은 역으로 나타났다.최근 개통된 9호선의 21개 역사에는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를 모두 집결한 ‘뷰티플렉스(Beautiplex)’ 상점이 모두 입점했다. 9호선 역사의 상점 분양을 맡은 GS리테일사를 통해 월세로 들어간 뷰티플렉스는 개찰구의 주변 목이 좋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뷰티플렉스의 9호선 고속터미널점의 최연호 지점장은 “지하철 9호선을 이용하는 유동인구는 큰 규모이기 때문에 역사에 입점한 매장은 매출뿐만 아니라 홍보의 기능도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상가뿐만 아니라 지하철의 공간은 거대 광고 시장이기도 하다.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역에 들어서면서 통로와 계단, 개찰구 양측에는 각종 전광판이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감각적인 사진과 문구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아우성이다. 그리고 승강장에 들어서면 플라즈마표시패널(PDP)과 멀티비전에서 뉴스와 생활 정보 사이사이에 광고가 흘러나온다. 최근 지하철 2호선에는 달리는 전동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열차의 속도와 착시 현상을 이용한 광고가 펼쳐지기도 한다. 과연 지하철 내에서 눈을 뜨고 있는 중에는 광고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하철 광고 시장은 대략 10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스크린도어 설치와 디지털 광고의 일반화로 옥외광고 중 침체돼 가던 지하철 광고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한편 운행 중인 지하철의 칸을 이동하며 장사를 하는 ‘기아바이’라고 불리는 불법 지하철 상인에게도 지하철은 소중한 공간이다. 지하철 유랑 상인은 1000원짜리 장난감, 1회용 반창고에서부터 3000원대 우산, 소형 라디오, 순간접착제, 그리고 1만 원짜리 영어 공부 팝송 CD까지 다양한 제품을 판매한다. 이들은 러시아워인 출퇴근 시간과 단속 시간을 피해 오전 10시 30분부터 1시 30분, 오후 3시 30분에서 5시까지 두 시간대에 주로 활동한다. 대부분 중국제 저가 상품들을 파는 이들은 판매가의 약 40~50%를 마진으로 남긴다. 지하철 2호선에서 햇볕 차단 토시를 판매하는 지하철 유랑 상인에 따르면 열심히 한다면 월수입 200만 원 정도를 무난히 올리고 베테랑의 경우 월 500만 원까지 벌기도 한다고 한다.지하철이란 공간은 대기업이 백화점, 쇼핑몰 등의 사업을 대규모를 벌이는 공간이자, 경제적 시련으로 쪽지를 돌리고 구걸하는 이들의 경제활동 공간이기도 하다.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인)인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이를 판매하고 또한 구입하는 경제 동물로서 지하철을 중심으로 한 지하에서도 수많은 경제활동을 영위하고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