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베른의 대표작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는 ‘지구공동설’이란 가설에 모티브를 둔 소설이다. 지구공동설은 지구의 속이 비어 있고 남극과 북극에 그 비어 있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는 주장이다.‘땅속’ 세계에서의 삶을 꿈꾸는 인간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이 가설은 20세기 중반에 현실이 돼 가고 있다. 물론 지구의 속이 텅텅 비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대규모 ‘지하 공간 개발’을 통해서다.지하 공간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건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혁명 선진국, 즉 영국 프랑스 등의 도시화가 급격히 이뤄지면서 대규모의 지하 터널과 지하 하수 처리 시설 등이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이후 지하 공간 개발은 ‘지하 도시 개발’의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시화가 가속되면서 토지 공급이 점점 한계에 다다랐고 지가 상승과 도시의 평면적 확산, 이에 따른 녹지 잠식 등과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이에 대한 대안이 지하 공간 확보”라고 설명했다.가장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 파리의 라데팡스다. 라데팡스는 지하 공간을 활용한 ‘복층 구조’로 계획된 도시다. 도로·지하철·철도·주차장 모든 교통 관련 시설을 지하에 설치했으며 그 위에 인공으로 상판을 덧대 보행자 전용 공간을 만들었다.743만㎡ 규모의 도심 전체를 뒤덮은 광장과 녹지는 지하 공간 개발에서 얻어진 수혜물이다. 또 토론토 유니온역 역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곳은 토론토의 추운 기후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고 지하철역과의 긴밀한 연계를 위해 유니온역을 중심으로 5개역을 네트워크화하고 토론토 시외버스터미널과도 연결되도록 했다.규모는 총길이 27km에 2787ha. 5개의 지하철역과 30개 이상의 오피스 건축물, 20개소의 주차장, 3개의 호텔, 1200여 개의 소매점, 2개의 백화점, 시청사 등과 연결돼 있다.이 밖에도 영국 런던의 커네리워프, 일본 오사카의 크리스타 나가호리 복합 지하상가와 도쿄의 야에스 지하, 싱가포르의 오차드로드 인근 등이 대표적인 ‘지하 도시’들이다.최근 국내에서도 이들 사례와 같이 지하 공간을 활용한 개발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재 지하 공간 활용을 위해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서울이다.서울시는 지하 공간의 체계적인 개발 방안으로 용산과 영등포, 동대문 일대를 시험구역으로 지정했으며 지상이 복잡한 다른 도심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또 문정지구와 마곡지구는 설계 단계부터 새로운 개념의 지하 공간으로 꾸민다는 계획을 세웠다.서울시 관계자는 “관련 법안이 제정되면 서울시가 마련한 지하 공간 종합기본계획과 시너지효과를 내면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캐나다와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도시 지하 공간 개발 모범 사례를 취합해 이를 벤치마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처럼 지하 공간 활용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사실 대규모 개발은 사업비도 사업비지만 보상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된다. 하지만 대심도(大深度)의 땅속을 개발할 때는 보상 의무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아직 관련법이 갖춰지지 않아 지자체의 조례로 대심도를 규정하고 있다.현재 서울시의 대심도는 고층 시가지 40m, 중층 시가지 35m, 저층과 주택지 30m, 농지와 임지 20m 깊이 이상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땅속 개발 시 20m 이내는 땅값의 0.5~1%, 20~40m는 0.2~0.5%를 주고 있다. 40m 이하는 이보다 낮다. 아예 일정 깊이 이하의 지하 공간은 전혀 보상하지 않는 나라도 많다.이와 함께 지상 개발과 연계하면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지상에는 다양한 높이의 고층 빌딩을 건립해 사무실이나 호텔들을 사용하고 지하에는 교통망, 대형 쇼핑 공간, 주차장, 공공 시설을 설치한 ‘압축 개발’이 가능하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이 대표적인 시설이다.정부 차원에서도 지하 개발은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으로 활용하기 좋은 카드다. 한국은 물론 세계 각국이 경제 위기 극복 방안 중 하나로 건설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하 개발과 같이 막대한 재원이 드는 사업은 이 같은 목적과 잘 맞아떨어진다.특히 지하 공간 개발은 주로 도심권에 이뤄지기 때문에 SOC 사업의 함정 중 하나인 ‘갈 곳 없는 다리(Bridge to nowhere)’처럼 목적 없이 그저 돈을 쓰기 위한 사업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일례로 경기도가 추진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의 경우 지난 4월 서울과 인천 거주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한 결과 76.6%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지하 공간 개발에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말한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인데다 바위층이 개발하기 적합한 화강암 등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건설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와 있다.물론 문제점도 있다. 가장 큰 과제 중 하나가 공기와 조명이다. 햇빛에 준하는 조명을 찾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자연 채광이 전혀 안 되는 지하 생활공간에서 조명은 쾌적한 거주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면서 “만약 지하 공간 내부의 조명이 적절하지 않을 경우에는 불안감을 초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또 전문가들은 지하 공간이 폐쇄적인 느낌을 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지상 생활에 익숙한 인간에게 자연스럽지 못하다며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제한된 출입구 때문에 불안감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