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내정자의 미리보는 정책 기조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는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 정책에 거침없는 쓴소리를 내뱉어 왔다.“운하 만들 돈 있으면 등록금을 주는 게 낫지 않겠느냐(2008년 4월 청소년 교양특강).” “부동산 문제는 세금 부과나 금리 인상으로 결코 해결할 수 없다(2006년 11월 서울대 관악초청 강좌).”이런 발언에서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는 철학과 소신을 엿볼 수 있다. 정부 간섭은 줄이고 가급적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또 시장주의자이면서도 개혁 성향의 소유자로 평가된다. “사회 양극화 문제의 뒤에는 정부의 실패가 있다”며 대기업 위주의 경제 정책에 일침을 가했다.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이 같은 발언으로 미뤄보면 ‘작은 정부, 큰 시장’과 ‘중도실용’으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정 총리 내정자의 철학과 소신이 정부의 정책에 어떻게 스며들지 주목된다.지난 2006년 11월 참여정부가 종합부동산세, 대출 억제 조치로 부동산 시장을 잡으려 하자 정 내정자는 한 강좌에서 “세금으로 잡으려 하지 말고 공급 확대로 풀어라”고 꼬집었다.정 내정자는 또 2007년 2월 한국경제학회 정기총회에서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시장 논리로 접근해서도 안 되지만 시장 논리를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대표적 경제 문제”라며 “절박성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시장 논리를 무시한 정책을 펴는 성급한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주택난 해소와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금자리 주택 150만 호’ 건설 계획은 정 내정자가 주장해 온 공급 확대를 통한 부동산 시장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교육자이기도 한 정 내정자는 대학 교육 문제와 관련해 “교육부는 고등교육에서 손을 떼라”고 질타한다. 그는 2007년 3월 참여정부의 교육 정책을 평가하면서 “유치원부터 고3까지 주입식 공부에 내몰리고 있지만 대학이 평가하는 신입생 학력은 나날이 저하되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교육 분야의 기본적 명제들을 재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3불정책(기여입학제·본고사·고교등급제)’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기도 했다. 대학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 제도 전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대기업 정책 등에서는 개혁 성향에 가까운 ‘중도노선’을 읽을 수 있다. 우선 대기업 정책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2007년 4월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그는 “대기업들에 대한 규율의 공백 상태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폐지하는 문제와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제 체제를 만드는 문제는 별개라는 것.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질서를 강조하면서도 양극화 해결 방법으로 거론되는 소득 재분배 정책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소득 재분배에 너무 매달리면 기업이 의욕을 잃고 해외로 빠져나가 결국 양극화 해소는 실패할 것”이라고 밝혔다.때로는 정부 개입의 당위성도 역설한다. 그는 올해 4월 한국미래소비자포럼 강연에서 “우리 경제가 잘 되려면 그동안의 시장주의에서 다소 물러서야 하고 굉장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극단적 시장주의는 싫다. 시장을 믿지만 시장은 깨지기 쉽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논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과 연결 고리가 닿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행정중심복합도시 추진에 대해 그는 “경제학자의 눈으로 봤을 때 행복도시 사업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이미 계획이 발표됐고 지금까지 어느 정도 진행됐으니 원점으로 돌리긴 어려워졌다. 하지만 기존 원안대로 다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부분적으로 하되 충청도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을 정도로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