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디지털 서적 혁명

세계 최고의 명문 미국 하버드대의 중앙 도서관인 와이드너 도서관. 하버드생들은 수백만 권의 장서가 보관된 이 도서관을 ‘책들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백여 년간 각지에서 수집된 책들을 수용할 공간이 모자라자 도서관 지하를 계속 파내려 가며 책들을 보관할 공간을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와이드너 도서관이 이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도서 보관 공간을 넓히는 이유는 바로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사망한 해리 와이드너를 기리기 위해 대학에 도서관을 기부한 와이드너의 어머니가 도서관 건물의 구조를 바꾸지 말 것을 기부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확장에 제약이 걸린 대학 측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땅속으로 깊이깊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도서관이 보유한 장서가 늘면서 보유 서적 중 상당수는 독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는, 잊혀진 절판본의 운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책들의 물리적 보관 장소 문제와 어디 있는지, 어떤 내용인지를 검색하는 기술 부족으로 책이 제대로 읽히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은 조만간 근본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어디에 어떤 내용의 책이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었고, 혹여 책의 소재를 알더라도 읽기 어려웠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수많은 절판본 서적들이 전자화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서 읽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바로 인터넷 검색 업체 구글이 추진 중인 절판본 디지털화 계획이 출판 관련 업계를 비롯해 IT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고대 알렉산드리아에서 도서관이 최초로 건립된 것과 구텐베르크가 유럽에서 인쇄 혁명을 일으킨데 이은 제3의 서적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이와 관련, 구글은 지난해 10월 말 미국작가협회 및 미국출판사협회와 절판된 수백만 권의 도서 및 서면 자료를 스캐닝해 디지털화하고 구글 도서 검색에 참가하는 다수의 주요 미국 도서관에 소장된 서면 자료들을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열람권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이미 구글은 미국 주요 도서관에 있는 700만 권 이상의 책과 서면 자료를 스캐닝해 오고 있으며 이 사업이 본격화되면 일반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그러나 이 같은 구글의 움직임에 대한 견제와 우려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절판된 수백만 권의 책과 서면 자료에 대한 온라인상의 출판권과 이에 따른 막대한 이익을 구글에 독점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문제라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구글이 독점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허용한다면 향후 구글은 자사가 구축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대학 및 고등교육 기관들이 이용할 때 엄청난 이용료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인 셈이다.이에 따라 미국도서관협회와 뉴욕법과대학원의 정보화 법률·정책 연구소, 하버드 법과대학원의 찰스 네슨 교수 등은 연방법원이 이 합의안의 승인 여부에 대한 검토에 착수하기 전에 정식으로 소송을 제기, 구글의 사업을 저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들 비판론자들은 일반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구글의 해명에 공감하면서도 다른 회사도 절판된 책에 대한 온라인 출판을 위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이다.이 같은 반대론자들의 움직임에는 최근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야후 등 구글의 주요 경쟁 업체들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서적의 디지털화에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전통 출판업자들의 우려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출판그룹 아셰트의 아르노 누리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전자책(e북)이 기존 종이책을 위협하고 있다”며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과 구글을 비롯해 반스앤노블 등 전자책 소매 업체들이 가격을 일방적으로 낮춘다면 하드커버(양장본) 서적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하지만 이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서적의 디지털화는 시기의 문제이지 조만간 필연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유럽의 주요 도서관들은 당초 구글의 계획에 반감을 표해 왔지만, 최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구글과 손을 잡기로 결정하면서 반발이 수그러드는 추세다. 주요 출판 업체 CEO들도 “구글이 보다 합리적인 서비스를 제공했으면 한다”며 “구글과 협력할 계획이 있다”는 입장이라는 게 주요 외신들이 전하는 현실이다.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