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식 그래텍 대표이사

“한국을 ‘정보의 운하’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곰플레이어’와 ‘곰TV’로 유명한 그래텍의 배인식(41) 사장은 “발달된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우리나라를 전 세계의 정보가 오가는 ‘정보의 운하’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배 사장은 “온라인 세계에선 국가 개념이 희박하다”며 “곰TV가 진행하는 게임 중계방송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주 및 유럽에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미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국가 연동망’을 보다 강화하면 굳이 미국에 서버를 두지 않더라도 원활한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무역의 자유화가 이뤄졌으니 국가 연동망의 속도만 확보된다면 해외 지사를 두지 않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쇼핑몰을 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소프트웨어 업체로 출발해 이제 뉴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그래텍의 배인식 사장을 만났다.1999년 그래텍이 출범했으니 벌써 10년이 됐네요. 사실 창사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지만 최근 3~4년은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로 실적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바로 곰플레이어를 활용한 인터넷 방송인 ‘곰TV’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 8월, 혹은 늦어도 9월에는 손익분기점을 넘을 듯합니다.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것을 스스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사실 곰TV의 시작 당시만 해도 고생이 많았습니다. 일단 콘텐츠를 제공하는 곳도 인터넷 방송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으며 광고주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이젠 무엇보다 광고주들이 적극적입니다. 같은 동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는 TV 광고보다 가격이 매우 저렴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타깃 마케팅이 가능하며 실제 효과도 큰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최근 IT 관련 글로벌 기업들은 기존 매체 대 인터넷 광고 비율을 1 대 9까지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TV를 보거나 신문 등을 읽는 시간보다 PC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콘텐츠를 제공하는 곳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뮤직비디오와 같은 콘텐츠를 제공받기 위해 연예기획사 등에 찾아가면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유명 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처음 공개하는 곳이 바로 곰TV가 됐어요. 얼마 전 인기 아이돌 가수 G드래곤의 뮤직비디오가 곰TV에서 첫 공개돼 하루 만에 150만 조회 수를 기록했죠.거기에 대해선 서운한 마음도 있습니다. 곰TV가 훌루닷컴보다 1년 이상 빨리 서비스를 시작했는 걸요. 그들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뛰어난 기술력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이라는 차이점이었겠죠.(훌루닷컴은 일반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올리는 대신 영화나 TV쇼 등 전문가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제공해 단기간에 성공을 거둔 미국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회사다. 현재 미국 내 모든 거의 주요 TV 프로그램 제작사들이 훌루닷컴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특히 유튜브가 올해 전 세계에서 2억 달러의 매출을 예상하는 데 비해 훌루닷컴은 미국에서의 활동만으로 9000만 달러의 매출을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유튜브 매출의 약 50%가 미국에서 창출되는 점을 감안할 때 훌루닷컴은 유튜브의 50분의 1에 해당하는 트래픽으로 유튜브의 미국 내 매출과 맞먹는 실적을 올렸다.)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E스포츠는 문화적 충격이 전혀 없이 글로벌화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워크래프트’ 게임 중계방송의 경우 실시간으로 미국이나 중국 일본은 물론 북유럽, 심지어 아프리카까지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접속해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낮과 밤이 완전 반대인 미국 동부 지역에서의 접속자도 1000여 명에 달해요.또 우리가 후원했던 MBC 게임의 ‘MSL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경우엔 3~4개월 동안 이뤄지는 리그 경기의 인터넷 동영상 조회 수가 1000만 건이 넘어갑니다. 임요환 같은 유명 선수는 100만 건에 달합니다.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제외하고 전 세계인들이 이렇듯 동시에 즐기는 미디어 콘텐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그 1000분의 1도 안 되는 투자비용을 가지고 말이죠.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DJ 정부 이후로 IT 업종이 정부 정책에서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IT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잘 활용했던 것이지 정부 차원에서 별다른 지원책이나 육성책을 냈던 건 아니에요. 물론 지금도 그 상황은 마찬가지고요. 이 때문에 저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됐다거나 지원이 없다거나 하는데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기업이 스스로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초기 벤처 단계, 즉 ‘얼리 벤처’에 대한 지원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저도 그렇지만 DJ정부 시절에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회사를 차릴 수 있었어요. 물론 그중에 얼마나 성공했느냐는 알 수 없겠지만 그들이 만든 기술과 노하우들이 IT 강국의 씨앗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벤처 투자는 상장 과정 등 이른바 ‘뻥튀기’ 단계에만 관심이 많은 듯해요. 국가 차원에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는 단계’에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면 돼요.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곰플레이어 개발 당시부터 이런 비전을 가지고 있었죠. 곰플레이어 이전까지 우리는 휴대전화용 게임의 최강자였어요. 하지만 이 사업을 뒤로하고 곰플레이어의 제작과 배포에 집중하자 주주들의 반발이 컸어요. 하지만 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설득했죠.현재 곰플레이어를 PC상에서 활용하는 사람은 하루 400만 명에 이릅니다. 확실한 데이터는 없지만 아마도 윈도에 내장된 윈도 미디어플레이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동영상 보기 소프트웨어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미디어의 힘은 ‘소비자의 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 방송은 기존 미디어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격하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기존 미디어 관계자들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리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방송국들이 논란 끝에 웹디스크 업체에 콘텐츠를 제공하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기존 미디어들도 인터넷을 활용한 서비스가 윈-윈 관계, 즉 시장을 빼앗기는 게 아닌 유통 채널을 넓혀 시장의 파이를 더욱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듯싶습니다.전 그래텍이 ‘즐거운 회사’가 됐으면 합니다. 어차피 직장 생활이란 ‘그게 그거’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서 좀 더 보람을 찾고 이 일을 통해 내가 다음 단계로 나가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회사 생활이 즐겁겠지요. 사실 저도 삼성에 있을 때 내 일이 아닌 광고·홍보·영업 등의 일까지 함께 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벤처기업을 차릴 때 큰 도움이 되더군요. 이처럼 우리 회사를 거쳐 가는 사람들이 ‘성공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합니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직원들은 “일 더 시키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라고 묻기도 합니다. (웃음)1968년생. 93년 국민대 금속공학과 졸업. 93년 삼성전자 멀티미디어 제품 기획담당. 97년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97년 지오인터랙티브 이사. 99년 그래텍 부사장. 2002년 그래텍 대표이사 사장(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