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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 개정의 계절이 됐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정부의 세법 개정 내용이 8월 중·하순부터 하나하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반복되는 세제실의 1년 농사다. 정부와 여당 간 당정 협의가 있고, 민간의 자문단이 대거 참여하는 세제발전심의위원회 등도 열린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주재의 회의라며 서민들에게, 혹은 기업과 사업자에게 생색낼 만한 내용을 별도로 추려서 발표되기도 한다.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지난주부터 이런 절차가 진행돼 왔다. ‘친서민 세제지원방안’이라고 청와대의 비상경제대책회의 안건으로 별도 정리됐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섰다.이런 과정을 통해 정부의 세제안이 종합 정리되면 각 부문별 세법 개정안은 국회로 간다. 세법안 처리는 9월 정기국회에 주어지는 두 가지 기본 업무 중 하나가 될 것이다.통상 9월 국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안 짜기가 중요하다. 정기국회를 예산국회라고도 하는 이유다. 법률안 중에서는 세법안 처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도 있다. 당정 간 협의 체제가 확고했을 때는 정부안이 곧 법안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국회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 손질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정부와 국회의 위상 변화를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점에서도 올해 정기국회는 주목될 수밖에 없다.이런 일련의 흐름에서 정부가 저소득자층에 대한 세제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저소득층 지원안이라지만 일련의 세법 정비안에 들어있는 부분으로 보면 된다. 크게 봐서 영세 자영업자 지원, 저소득 근로자·농어민 지원, 중소기업 지원 등 3가지다.폐업한 영세 자영업자가 내년 말까지 재개업할 경우 500만 원까지 체납 세금을 면제해 주고, 신용 정보기관에 세금 체납 사실을 통보하는 대상도 현행 500만 원 이상에서 향후 2년간 한시적으로 1000만 원 이상으로 완화하는 것 등이다. 월세 사는 총급여 3000만 원 이하 무주택 근로 가구주에 대해 월세 지급액의 40%를 소득공제하고, 주택청약종합저축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중도 실용과 함께 청와대가 역점을 둬 온 친서민 행보가 세제 측면에서 가시화된 셈이다.영세 자영업자와 저소득 근로자들에 대한 세제 지원은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납득할만한 일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 대책도 많지 않은 마당에 세금제도상 혜택을 통해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재기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불황기 때 당연한 정책이다. 이를 통해 전체 경기를 살리는 효과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500만 원까지 체납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만으로도 총 80만 명이 1조 원가량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니 당사자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경제적 약자인 서민을 보호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는 것은 시비할 일이 못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도 없지 않다. 크게 봐서 두 가지가 주목된다.무엇보다 멀리 보면서 경제 살리기의 가장 실질적인 수단으로 삼아야 할 세정이 지나치게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체납 세금을 면제하고 신용 정보기관 통보 대상도 완화하기로 한 것이 그런 사례다.연장선상에서 세수(稅收)도 걱정이다. 이번 조치로 줄어드는 세금 3조6000억 원을 어떻게 보전할 것이냐가 현실적인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예정된 소득세·법인세를 인하하는 것만으로도 3조7000억 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되는 마당이니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일은 아니다.결국 세원(稅源) 확대 차원에서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과표 양성화, 대기업 및 고소득자에 대한 비과세·감면 축소 등의 조치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의사 변호사 변리사 등 전문직과 고소득 개인 사업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런 정책은 실제 세수로 거둬들이는 것 이상으로 유권자들의 표심에 다가갈 수 있는 전형적인 보완책이다.서민 지원을 추진하되 가능한 한 세수도 늘려 재정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방안, 나아가 이런 정책으로 인해 전체 경제에 미칠 부작용까지 막는 방안은 없을까. 관건은 바로 이것인데 현실적으로 모두 성취하기는 어렵다. 결국 선택할 것이면 분명히 해야 하고 그 대가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