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정부 부처들이 요구한 내년 예산·기금 총지출액이 300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획재정부는 7월 9일 정부 부처들이 내년에 쓰겠다며 재정부에 요구한 금액이 298조5000억 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추가경정예산을 합한 총예산 301조8000억 원에 비해서는 1.1% 줄었지만 본예산인 284조5000억 원보다 4.9% 늘어난 수치다. 증가율이 5% 이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위해 강력한 세출 구조조정 지침을 사전에 내린 만큼 각 부처가 알아서 무리한 요구를 줄인 데 따른 것이다.분야별로는 보건·복지·노동 분야가 82조1000억 원으로 지난해 본예산 대비 가장 높은 증가율인 10.1%를 기록했다. 이 외에도 국방 분야가 30조8000억 원으로 7.9%,공공질서·안전 분야는 13조1000억 원으로 6.5%,사회간접자본(SOC)은 26조2000억 원으로 5.7%의 증가율을 보였다.특히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연구·개발(R&D)과 녹색 성장 분야는 정부가 경기 회복과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실제 R&D 분야는 16조6000억 원으로 책정돼 지난해 대비 9.7%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국책 과제에서는 4대강 살리기를 포함한 녹색 성장 분야에서 6조9000억 원, 혁신·행복도시 지원에 8000억 원 등 요구액이 총 8조 원 정도 늘었다. 지출이 고정된 경직성 분야에서는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등에서 요구액이 4조5000억 원쯤 증가했다.반면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는 13조60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 16.2%나 줄었고 교육 분야는 35조7000억 원으로 6.9%가 감소했다. 문화·체육·관광 분야도 3조3000억 원으로 4.2%가 줄었으며 환경은 5조 원으로 2.0%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일반 공공 행정과 통일·외교 등 2개 분야는 올해 본예산 수준이었다.이색적인 예산 요구 사항으로는 60세 이상 저소득 노인에게 치매 진단 및 감별 검사 등을 무료로 실시해 주자는 사업이다. 13억 원이 요청됐다. 시청각 장애인 부모의 만 18세 미만 아동에 대한 언어 발달을 돕기 위해 월 20만 원씩 바우처(voucher) 형태로 지급하는 예산도 10억 원 요청됐다. 녹색 기술과 청정에너지로 신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저탄소 녹색 시범단지 조성을 위한 표본도시 설계비로 10억 원이 요구됐다.하지만 이번 예산 요구안대로라면 우리나라가 내년에 갚아야 할 국채 이자의 규모는 20조2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무려 3조8000억 원 늘어난다. 국채 이자 규모가 매년 2조 원 정도씩 늘어왔던 것에 비해 곱절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국채 이자가 이처럼 급증하는 것은 올해 추경예산을 위한 국고채 발행으로 전체 국가 빚이 2008년 308조3000억 원에서 올해 366조9000억 원으로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32.5% 수준이었던 국가 채무는 올해 38.5%로 뛰어올랐다.재정부는 이번 요구안을 토대로 오는 9월까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정부안을 확정한 뒤 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류성걸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앞으로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분야 간 자원 배분과 전체 예산 규모를 결정할 것”이라며 “각 부처의 ‘요구안’을 바탕으로 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분야 예산 신청이 줄어든 것에 대해 류 실장은 “내년 경기가 일정 부분 정상화한다는 전제 아래 소관 부처에서 올해 추경 출자가 많았던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금융회사 출자, 정책자금 예산을 올해보다 줄였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교육 분야의 경우 올해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교육재정 교부금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이라고 류 실장은 설명했다.한편 연도별 예산 요구 증가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2005년 9.4%에서 2008년 8.4%, 2009년 7.4%로 내려갔으며 이번에 이례적으로 5% 아래로 떨어졌다. 예산 당국이 예산 한도를 정해 주면 그 안에서 각 부처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 제도를 2005년에 도입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제도 도입 전인 2002년에는 24.5%, 2003년 28.6%, 2004년 24.9% 등 20% 이상 예산 증가를 요구하는 사례가 관행화돼 있었다.김선명 기자 kim069@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