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속 진주 ‘가치주 펀드’

바야흐로 하반기에 들어섰다. 6월은 주가, 원자재 가격 등 자산 가격이 동반 상승하며 리플레이션(Reflation: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으나 심한 인플레이션까지는 이르지 않은 상태) 정책 효과가 완연해진 것은 긍정적 흐름이었지만 속도가 문제가 됐다. 실물경기가 아직 정상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인플레이션 기대 및 재정적자 우려가 커진 것이다.7월은 상반기 랠리의 정당성을 검증하는 구간이 될 것이다. 정부 주도의 강력한 리플레이션 정책은 시작부터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내재돼 있었고 자산 가격 상승만큼 실물경기 회복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조정은 불가피한 수순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경기가 실제로 회복되고 있느냐다. 다가오는 실적 시즌과 경기지표 발표를 통해 추세적 경기 회복에 대한 신뢰는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지난 연말 글로벌 각국이 유례없는 재정지출과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았을 때부터 리플레이션 정책의 반작용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갖고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서고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4%에 근접하면서부터다. 따라서 이로 인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완화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국채 발행을 순조롭게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리플레이션 정책의 반작용은 언제나 있었던 것이지만 이번에는 자산 시장과 실물경제와의 시차가 크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 경제가 올해 하반기에 겨우 바닥을 확인하고 내년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회복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전제하면 출구 전략의 시기는 내년 하반기 또는 2010년 상반기부터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70달러대의 유가와 4%대의 장기 국채 금리가 장기 균형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보지만 상승 속도가 워낙 빨랐고 투기 세력을 억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이제 정책 당국은 리플레이션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기대와 재정적자 우려를 일정 수준에서 억제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하지만 적어도 하반기 동안에 풀기 어려운 난제는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무엇보다 수요 측 인플레이션 압력은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가지표를 고려해 봤을 때 디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기대는 유동성 확대 정책에 대한 불안과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서 비롯됐는데 정책 당국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지만 대응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만으로 투기 세력에 경계감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6월 24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원자재 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고용과 설비 등 자원 활용도와의 간극으로 인해 비용 상승 압력이 억제될 것이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억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반기 FRB의 목표가 인플레이션이 될 가능성이 낮음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시그널만으로도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를 낮출 수 있다.다음으로 현실적으로 미국 국채를 대신할 자산이 아직 없다. 물론 막대한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등 브릭스(BRICs) 국가가 미국의 재정적자를 빌미로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국제통화기금(IMF) 채권을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더군다나 실제로 4월 중국의 국채 보유액은 7635억 달러를 기록하며 전월 7679억 달러에 비해 44억 달러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고 러시아와 브라질 역시 미국채의 보유액을 줄이면서 변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브릭스 국가의 미 국채 대규모 매도에 따른 달러화 폭락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외화보유액 대부분을 달러화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개도국이 달러화 가치를 급락시킨다면 자신들의 대외지급능력을 훼손시키는, 즉 자승자박 형태가 돼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나머지 국채 발행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주식형 펀드 시장이 조정 압력에 직면한 것은 맞지만 리플레이션 정책에 내재돼 있었던 속도 조절 압력이 작용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주가, 금리, 상품 가격 간의 괴리가 균형 수준으로 재조정되면서 긴축 우려는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중국 등 일부를 제외하면 선진국 경제의 바닥 시그널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상승이 부담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의 턴어라운드에 대한 신뢰가 조정 국면에서 하방경직성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미국 경기선행지수가 2개월 연속 반등하면서 선진국 경제의 턴어라운드 기대가 높아졌는데, 선행지수 구성 항목 중 실물지표 항목 반등이 상대적으로 더디기 때문에 신뢰성에 의구심을 가지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과거 1960년대 이후 미국 선행지수 반등 패턴을 보면 대개 3~6개월 시차를 두고 비실물지표(금융·심리지표)에 뒤이어 실물지표가 반등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동행지수도 1~3개 분기 시차를 두고 선행지수를 따라가는 흐름을 보인다. 미국 경제는 이르면 3분기, 늦어도 4분기에 경기 사이클 바닥을 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2분기 실적 발표 시즌도 하방경직성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환율과 원자재 가격이 1분기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우호적 영업 환경을 조성했고 주요 산업의 제품 가격이 반등하면서 지난 1분기에 이어 영업이익 증가세가 지속됐을 것이다. 따라서 7월 주식형 펀드는 조정 압력을 거친 후 기업 실적 호조에 따라 반등하는 흐름이 예상된다.이런 시기일수록 가치주 펀드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가치주 펀드란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순자산배율(PBR)이 낮거나 배당을 많이 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즉,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 그 종목의 본래 가치 수준에 근접하면 매도함으로써 수익을 내는 펀드다. 이런 펀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주식시장이 조정을 보일 때 가치주 펀드는 성장형 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성장형 펀드는 향후 기업 실적이 크게 개선될 전망을 보이는 주식에 투자하기 때문에 경기에 대한 주가 변동성이 크게 나타난다. 반면 가치주 펀드는 저평가된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정장에서의 방어력이 우수하다. 따라서 현재 조정장에서 주가의 변동성, 즉 위험을 최대한 낮출 수 있으면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가져다줄 수 있는 가치주 펀드가 재부각될 수 있다. 둘째, 가치주 펀드는 짧은 기간 동안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치주 펀드가 2007년 상승장에서는 인기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투자자들의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간 적은 없다.강세장에서 일반 주식형 펀드보다 수익을 덜 낸다는 점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강력하게 어필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한 수익률을 보이면서 최대한 위험을 회피해 안정된 수익률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받았다.그러나 가치주 펀드 역시 주식형 펀드이므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인내심을 가지고 투자 전략을 세워야 한다. 주가가 낮게 형성된 주식을 매수해 적정 가치에 도달했을 때 매도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이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예로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이라는 펀드가 있는데, 이 펀드는 ‘1년 이내 환매 시 이익금의 70%, 2년 이내 환매 시 이익금의 50%, 3년 이내 환매 시 이익금의 30%’라는 규정을 두면서 정말 펀드를 10년 이상 가져갈 투자자에게만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 있는 투자자도 있겠지만 이 같은 운용 방식은 가치주 펀드의 목적상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단기적인 수익에 연연하지 말고 긴 안목을 가지고 장기 투자를 설계하며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안정균·SK증권 펀드 애널리스트 jkahn@sk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