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위건 애슬레틱과 입단 계약을 체결한 조원희는 지난 2월 25일 인천공항에서 가진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후배 박주영(AS모나코), 선배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이전트 이동엽 텐플러스스포츠 대표가 큰 힘이 됐다”면서 “무엇보다 계약을 잘 마무리해 준 이 대표에게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조원희가 축구 종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초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르 샹피오나) AS모나코 입단에 입단할 예정이었던 조원희는 모나코 구단이 외국인 보유 한도를 초과하기 힘들다고 밝히면서 해외 진출이 물거품 될 뻔했다. 그러나 막판 텐플러스스포츠가 유럽 파트너인 제스 그룹 모나코를 통해 위건 쪽으로 이적을 급선회하면서 어렵사리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조원희의 유럽 진출은 스포츠 마케팅 시장에서 에이전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조원희는 위건 행을 성사시킨 이 대표에 대해 “어렵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게 해 준 한국의 제리 맥과이어(에이전트 세계를 그린 톰 크루즈 주연 영화)”라고 치켜세웠다.스포츠 마케팅 시장에서 에이전트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통한다. 슈퍼스타가 하나의 상품이라면 그 상품을 가공하고 포장하는 역할은 순전히 에이전트의 몫이다. 단순히 능력만 뛰어나다고 슈퍼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선수 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구단과 팬이 원하는 모습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바로 에이전트의 역할과 책임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에이전트는 스포츠 마케팅의 ‘연금술사’와 같다.해외 유명 스포츠 스타 뒤에는 늘 그를 관리하는 슈퍼 에이전트가 있게 마련이다. 스콧 보라스와 얀 텔렘은 미국 프로야구(MLB)를 대표하는 슈퍼 에이전트로, 종종 미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을 고평가시킨 ‘공적’으로 지적받는다. 미국 프로미식축구(NFL)의 드루 로젠하우스과 EPL의 피니 자 하비, 호세 멘데스, 브론제티 등도 연봉 수천만 달러의 스포츠 스타를 거느린 슈퍼 에이전트다. 이 중 호세 멘데스는 지난 6월 초 9300만 유로(약 1632억 원)라는 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내고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로 둥지를 옮긴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두의 에이전트다.현대 스포츠에서 에이전트의 업무는 굉장히 넓다. 쉽게 구단과 선수 간 가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해당 선수의 체력관리에서부터 이미지 메이킹, 스폰서 섭외, 언론 홍보는 물론 사생활까지도 모두 에이전트의 업무 영역이다. 연예인으로 치면 매니저와 같은 역할이다. 스포츠 마케팅이 발달된 외국은 에이전트의 역할이 스폰서 유치, 연봉 유치는 물론 △TV 중계권 판매 △캐릭터·로고 판매 사업 △이벤트 기획 △홍보, 관중 동원 전략 수립까지 광범위하다.마케팅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에이전트를 만나느냐에 따라 해당 선수의 운명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 스포츠 에이전트의 삶을 그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풋내기 NFL 선수 로드 티드웰(쿠바 구딩 주니어 분)이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에게 내던진 첫 마디가 바로 “Show me the money(돈을 벌게 해줘)”였다. 돈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는 냉혹한 현대 스포츠 사회에서 에이전트의 역할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국내 에이전트 문화가 활짝 꽃 핀 종목은 축구다. 지난 1991년 국제축구연맹(FIFA)이 에이전트 제도를 공식 도입하면서 에이전트라는 직업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지금도 협회 차원에서 에이전트 제도를 공식 채택하고 있는 경우는 사실상 축구가 유일하다.야구 농구 배구 등은 아직도 제3자 개입 금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오로지 구단과 선구 개인 간 협상만이 가능하다. 종종 용품이나 광고 출연 등 개인적인 스폰서 계약이 필요한 유명 선수들이 에이전트를 고용하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경우 수입은 대개 선수 7 대 에이전트 3 비율이다. 골프 스케이팅 등 개인 종목은 에이전트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축구 에이전트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FIFA가 주관하는 공식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FIFA 산하 각국 축구협회가 주관해 치르는 인증 시험은 FIFA 국제 규정 15문항, 국내 규정, 민법과 관련해 5문항이 출제되는데 철저히 사례 위주다. 주로 선수 계약, 이적 규정, 분쟁 사례 등을 중심으로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 국내 민법과 관련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요한다. FIFA 관련 규정은 전부 영어로 출제된다.합격은 상당히 까다롭다. 올 3월 말 치러진 시험의 경우 총 139명이 응시해 단 1명이 합격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FIFA 공식 에이전트는 100여 명에 달하지만 실제로 활동하는 에이전트는 40~50명에 불과하다.축구 에이전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선수 관리다. 해당 선수의 경기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상품 가치를 최대한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채널로 구단과 접촉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유망 신인을 발굴하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업무다. 선수의 상품성을 부각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슈퍼 에이전트의 능력은 사실상 여기서 판가름 난다. 당장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소속 선수의 잠재 능력을 끌어올려 일약 스타로 만드는 것은 축구 에이전트라면 누구나 꿈꾸게 마련이다. IB스포츠 추연구 부장은 “고교 축구는 물론 유소년 축구 경기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관람하고 있다”며 “협회 등 축구 관계자들과 긴밀한 협조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에이전트의 중요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한국 축구의 간판 스타 박지성은 에이전트에 발굴된 ‘진흙 속 진주’다. 이철호 FS코퍼레이션 대표는 동네 헬스클럽을 다니면서 알게 된 박지성이 대학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자 일본 진출을 추진했다. 선수 출신이었던 이 대표의 눈에 비친 박지성은 미완의 기대주였던 것. 그는 2000년 연봉 5억 원에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시킨데 이어 2003년 47억 원에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2005년 70억 원에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잇따라 계약을 체결하면서 박지성을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 스타로 키워냈다. 현재 박지성이 에이전트를 JS리미티드로 바꾸면서 헤어졌지만 박지성은 지금도 유망주 발굴의 ‘바이블’로 꼽힌다.슈퍼스타를 관리하기 때문에 겉은 화려하겠지만 대부분의 스포츠 에이전트는 소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JS리미티드만 해도 전체 직원은 4명으로 이 중 1명은 영국 현지에서 박지성을 전담 관리하고 나머지 3명만 국내에서 머무르며 스폰서 관리 등에 주력하고 있다. 안정환 김용대 양동현 등은 아예 개인이 에이전트 업무를 맡고 있다.소속 선수의 해외 진출을 위해 글로벌 스포츠 에이전트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프랑스리그로 진출한 이근호와 러시아리그 김동진 등이 좋은 예다. 이 같은 해외 네트워크 확충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앞두고 더욱 중요시되는 모습이다. 반대로 해외 용병을 국내 구단과 연결해 주는 것도 에이전트의 몫이다. 이 때문에 축구 에이전트는 수시로 유럽과 남미 현지를 찾아 현지 네트워크를 활용, 우수 선수를 발굴해야 하는 고충이 뒤따르기도 한다.개인 종목에서도 에이전트의 업무 영역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최고의 스포츠 스타인 피겨 여왕 김연아는 국내 체류 기간 일정을 모두 에이전트가 좌지우지한다. 심지어 개인 훈련과 경기 참가 여부까지 브라이언 오셔 코치와 협의해 결정할 정도로 에이전트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골프, 피겨스케이팅 등 개인 종목 역시 유망주 발굴과 메인 스폰서 관리가 가장 중요한 업무로 개인 종목이 팀 종목 에이전트와 다른 점은 선수 옷과 모자 등에 새겨질 메인 스폰서를 구하는데 사활을 건다는 점이다. 고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지 못해 철저히 광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보니 메인 스폰서와의 계약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체력 관리와 훈련 스케줄 역시 코치진과 협의해 결정하는 것도 일반적인 모습이다.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3승으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유소연은 에이전트가 제공한 정신 집중 강화 프로그램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후문이다.걸어 다니는 광고판답게 이미지 컨설팅도 중요한 과제로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지부터 액세서리 착용 여부까지 꼼꼼히 살핀 뒤 결정한다. 예를 들어 ‘타이거 우즈는 PGA투어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꼭 빨간색 나이키 티셔츠를 입어야 우승한다’든지, ‘LPGA 스타 폴라 크리머는 핑크색 옷을 입어야 힘을 낸다’는 것은 에이전트와 메인 스폰서의 이미지 컨설팅 합작품이다. 또 유망주 발굴을 위해 2, 3부 골프 투어를 돌면서 아마추어 선수들과 접촉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 일과 중 하나다.에이전트 수입은 종목마다 다소 차이가 있다. 축구 에이전트는 FIFA 규정에 따라 계약 연봉의 10%만을 받고 있으며 광고 등 별도 수입은 선수와 협의하에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단 우승 시 별도로 지급되는 보너스는 순전히 선수 몫이다. 골프의 경우 에이전트 수수료는 메인 스폰서가 부담하는 것이 관례다. 수수료는 대략 계약 금액의 20% 선이다.돋보기│김연아와 에이전트의 만남피겨 여왕 김연아는 스포츠 에이전트 업계에서 유망주 발굴의 교본으로 꼽힌다. 지난 2007년 초반 처음 국제대회 주니어 부문에서 우승했을 때만 하더라도 김연아는 가능성 있는 그저 그런 유망주에 불과했다. 지금의 에이전트인 IB스포츠와 인연을 맺은 것도 입상 직후인 2007년 초반이다.IB스포츠는 일본 내 네트워크를 가동해 시장조사부터 벌였다.“일본은 이미 피겨 시장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큰 상태였습니다. 라이벌인 아사다 마오가 일본 내에서 이미 슈퍼스타 반열에 오른 것도 참고했습니다.”(IB스포츠 김원민 대리)김연아는 현재 전담 인력만 5명이다. 이들은 훈련 체크, 국제 대회 참석 여부, 광고 계약, 국내 체류 시 일정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최근 IB스포츠가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이미지 메이킹이다. ‘요정에서 여왕’, ‘귀여움에서 우아함’으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고심 중이다. 지난해 김연아가 벌어들인 광고 수입은 35억~40억 원으로 올해는 50억 원이 목표다.인터뷰│추연구 IB스포츠 부장(아침 9시) 출근, e메일 확인, (오전)구단 관계자 미팅, 계약 관계 협의, (오후)소속 선수 미팅, 해외 이적 선수 체크, 해외 에이전트와 통화, (저녁)선수·구단 관계자와 저녁식사, (새벽 2시)해외 에이전트와 통화.IB스포츠 추연구 부장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하루 일과다. 이처럼 슈퍼 에이전트일수록 하루 일과는 빡빡하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스포츠조선 체육부 축구담당 기자로 활동한 추 부장이 스포츠 에이전트로 변신한 것은 체계적인 선수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해외 유명 에이전트들의 체계적인 선수 관리를 지켜본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그는 “스포츠 에이전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무대 뒤의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인내와 묵묵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절정기에 이른 선수의 계약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미래의 수익원인 유망주를 발굴하는데 10배 이상의 수고를 들여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소속 선수의 은퇴 이후까지 걱정해야 하는 ‘인생의 선배’ 역할이 주어지기도 한다.그는 선수와 에이전트 관계를 ‘부부사이’로 비유해 설명한다. 종이 한 장으로 가까워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종이 한 장 때문에 ‘남남’이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스포츠 인구가 늘었지만 취미나 관람 수준으로 에이전트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스포츠가 곧 삶이 돼야 합니다. 외국어 능력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얼마나 대인관계가 원만한지가 에이전트로서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인적 네트워크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