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의 국제화 성공 조건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경영대 국제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저 “대안적인 세계경제 체제가 보이지 않는 이상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며 “한국이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개방화와 글로벌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업구조 역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변화돼 가고 있다”며 “제조업의 경우 ‘좋은 물건’을 ‘잘 만들어’ 팔기만 하면 되지만 서비스업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장 학장은 경영대 국제화의 필요성 중 하나로 ‘기업의 다국적화’를 지목했다. 해외 다국적기업들이 국내 현지화를 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 역시 다국적화되고 해외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매출 중 내수 비중이 61.7% 수준이었지만 2008년에는 81.5%의 매출을 해외서 올렸다. 현대자동차는 이보다 더 극적이다. 1996년 33.6%의 매출만 해외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2008년 현재 현대자동차는 61.8%의 매출을 해외시장에서 기록했다. 10년도 안돼는 새 수출이 내수를 뒤집은 것이다.장 학장은 “지금까지 국내의 인재들은 다국적기업의 채용 시스템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따라 그는 “경영대에서 길러내는 인재상도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제는 국내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인재가 아닌 다국적기업에서도 일할 수 있는 ‘수출형 인재’를 경영대가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장 학장은 “꼭 한국인 학생들만을 수출형 인재로 길러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 모국에 돌아가 좋은 대우를 받고 취업할 수 있는 외국인 인재도 한국의 경영대가 길러낼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 발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을 위해 제조업형 인재가 아닌 서비스형 인재, 지식형 인재를 넘어 리더십을 갖춘 ‘지식+리더십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학장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있는 만큼 각 대학별로 길러내는 인재도 똑같은 재능을 갖춘 인재가 아닌 차별화된 인재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장 학장은 경영대학의 국제화가 이뤄지고 있지 못하는 이유로 크게 네 가지를 꼽았다.그가 꼽은 경영대 국제화의 필수 요건은 교육 내용, 학생, 교수, 지배 구조 등이다.먼저 교육 내용은 ‘언어’, 즉 영어 강의의 도입이 최우선 과제다. 장 학장은 “한국 사람끼리 꼭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경영학처럼 영미권에서 발전 속도가 빠른 학문은 영어를 한국어로 바꿔 배우는 것보다 개념 자체를 영어로 배우면 생각과 실행의 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장 학장은 “현재 고려대는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경영대 수업의 60%를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며 “앞으로 모든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강의 내용의 측면에선 장 학장은 ‘한국화’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 교수진의 수준은 매우 높다”며 “하지만 우리가 해외에서 배워 온 것을 별다른 고민 없이 학생들에게 단순히 전달하고만 있지 않은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는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사건이었다”며 “경제 위기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논문들은 외국 학자들이 내고 있다는 사실은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한국화해 강의하는 것은 물론 한국적 경영, 그리고 아시아적 경영을 글로벌화하는데 한국의 경영대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장 학장은 교육의 국제화 방법론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오랜 기간동안 이뤄진 고려대의 국제화 경험을 직접 소개했다. 고려대는 해외 대학과의 교류 초반 구미권에 교환학생을 보내는 것에 ‘아웃바운드’ 국제화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이는 곧 학생 개인의 ‘국제화’일뿐 대학 전체의 국제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외국의 학생을 고려대로 데려오는 ‘인바운드’ 국제화에 주력하고 있다. 외국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이 국제화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편 장 학장은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외에 해외 유명 대학의 브랜드를 활용하는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이 있지만 중국 등의 학교에서 보듯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일견 마케팅 측면에선 유용한 듯 보이지만 비용과 노력을 따져볼 때 별다른 메리트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또 다른 국제화 방식으로 최근 여러 경영대학들이 힘을 쏟는 AACSB(미국), EQUIS(유럽) 등 ‘경영대 국제인증’을 소개했다. 하지만 장 학장은 “따지고 보면 국내의 웬만한 경영대학중 이 인증을 받지 못할 수준의 대학은 없다”면서 “솔직히 미국이나 유럽의 경영대 국제인증은 대학본부나 타 대학과의 협의 과정에서 경영대를 위해 사용되는 ‘방패막이’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장 학장은 참석한 경영대학장들에게 “유럽과 미국의 국제인증보다 아시아의 실정에 맞는 국제인증 제도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떤가”라고 제안하기도 했다.장 학장은 경영대 국제화를 위한 ‘학생’ 측면에서는 ‘숫자의 증가’에서 ‘질의 향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올가을에 입학할 학생들을 합치면 고려대 경영대는 해외 파견 학생과 외국인 학생이 똑같아졌다”며 “실제로 영어 강의의 경우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50%까지 외국인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특히 외국인 정규입학생보다 교환학생 등이 국제화에 더 큰 도움이 되는 듯하다”며 “외국인 정규 입학생들의 경우 주로 아시아권에 편중돼 있으며 언어의 문제로 인해 수학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장 학장은 경영대 학생들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언어의 장벽이 덜한 ‘유럽 학생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장 학장은 또 “외국인 교수들 역시 단순한 ‘영어 강의 제공’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솔직히 국내 외국인 교수 중 대다수는 한국인 교수에 비해 연구 역량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그런데도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는 이유는 영어 강의뿐만 아니라 이들을 통해 한국적 경영 사례를 세계에 알리고 뒤떨어진 교육 행정을 국제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례로 이들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봉급 체계, 교수 지원 체계 등을 정비해야 한다”며 “교수회의만 봐도 외국인 교수들 때문에 영어로 해야 하므로 ‘생활 속의 국제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아울러 그는 대학본부 및 경영대의 지배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경영대학장이 2년 임기로 끝이 난다”며 “2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학장이 어떻게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가지고 글로벌화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때문에 ‘경영대학’임에도 불구하고 경험과 능력을 가진 ‘경영인’이 대학을 이끌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장 학장은 국내 경영대가 성장하지 못하는 큰 이유로 ‘내부의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경영대학장이 되고 나서 하는 일의 절반이 대학본부와 협상하는 일”이라면서 “대학별로 자율권이 없어 ‘변화’가 핵심이 돼야 하는 경영대가 세계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다”고 말했다. 장 학장은 또 교육행정 전문가가 전무해 교수들의 경험만으로 국제화를 추진한다는 부담, 지나친 교육부의 규제로 인해 대학들이 차별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실 등도 한국 경영대가 세계적 수준으로 오르는 데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들로 지적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