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위협하는 LCD·조선산업

중국이 세계 1위인 한국의 LCD와 조선 산업에 잇따라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중국은 대만과 일본 기술을 등에 업고 한국의 LCD 산업 추격에 나섰다. 이미 세계 3위로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조선에선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첨단 선박 위주로 산업을 재편하기로 했다. 한국 업체들에 고수익을 안겨주던 해양 플랜트 시장에까지 뛰어들기로 했다. 한국의 캐시 카우 업종인 LCD와 조선에 중국발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중국 LCD 패널 업체들은 대만과 일본의 기술을 활용해 6세대에서 8세대로 직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징둥팡(BOE)은 300억 위안(약 5조4000억 원)을 투자해 8세대 패널을 생산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평가가 막바지 단계에 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징둥팡은 지난 6월 9일 6세대 패널 생산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위해 120억 위안(약 2조1600억 원)의 유상증자를 마치자마자 8세대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징둥팡은 앞서 지난 4월 중국 기업으로는 처음 안후이성 허페이시에서 6세대 패널 공장 착공식을 가졌다.징둥팡은 한국 하이닉스의 LCD 자회사인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기술을 이전받고 나서 철수해 비난을 받았던 기업으로 8세대 투자에는 대만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현재 자국 기업의 중국 내 LCD 조립 생산만 허용하고 있는 대만 정부는 8세대 패널 일관 생산 체제까지 중국에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7월 중 발표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10대 산업 육성책의 하나로 발표한 ‘전자산업진흥책’에서 양안(兩岸:대만과 중국) 협력을 강화해 중국의 취약한 LCD 기술에 돌파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기술을 이용해 중국 LCD 산업을 키우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다.중국은 이를 위해 대만 업체로부터 연말까지 44억 달러어치의 LCD 패널을 구매하기로 하는 등 구매력을 이용해 기술을 이전받는 이른바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최근 들어 중국의 하이얼 창홍 TCL 등 9개 가전 업체를 이끌고 대만을 방문한 바이웨이민 중국비디오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올해 중국에서 구매할 LCD 패널의 절반 이상을 대만에서 조달할 것”이라면서 “중국 내 8세대 생산을 위해 대만과의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양안 간 LCD 패널 표준을 만들어 차세대 LCD 패널 생산에 공동 투자한다는 방침이다.일본 NEC와 합작해 상하이에서 5세대 LCD를 생산하고 있는 상하이광뎬(SVA)은 일본 샤프와 공동으로 6세대와 8세대 패널 생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양사가 합작사를 세우는 안과 샤프의 생산 설비를 이전받는 안 두 가지를 놓고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앞서 샤프의 가타야마 미키오 사장은 “중국에서 LCD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샤프가 해외에서 LCD를 생산하기 위해 처음으로 중국을 택한 것은 엔고에 따른 투자비용 상승과 글로벌 경기 위축 속에서도 중국 내 LCD TV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중국 정부는 대륙에 LCD 모듈 공장 등 조립 생산라인만 가동하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도 핵심 라인을 포함한 일관 생산 체제를 갖춰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LCD 생산에 필요한 장비 수입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LCD 산업 육성책의 하나다.중국에서는 현재 징둥팡 상하이광뎬 롱텅 톈마 차이홍 등이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LCD 생산라인 투자 규모가 1000억 위안(18조 원)을 웃돈다. 우리투자증권의 박영주 애널리스트는 “중국이 6세대 생산에 들어간다는 것은 TV용에 쓰이는 37인치급 LCD도 공급한다는 의미지만 현재 시장의 주류는 7세대이고 한국은 8세대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의 세계 LCD 시장 수급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은 중국 기업이 8세대에 조기 투자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볼 때 공급과잉 현상이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업체들은 중국보다 기술 우위에 있어 큰 문제없다고 장담하고 있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현지 토종 기업에 내줘야 할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6월 초 세계 첨단 선박 시장의 점유율을 오는 2011년까지 현재의 2배가 넘는 20%로 끌어올리기로 하는 등 조선 산업을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재편하는 내용의 조선 공업 조정 및 진흥 계획 시행 세칙을 발표했다.중국 공업·정보화부가 내놓은 이 시행 세칙에 따르면 중국의 연간 선박 생산 규모를 5000만DWT(선박에 적재 가능한 화물 무게 척도)로 확대해 세계 시장점유율을 35% 이상으로 끌어 올리고 LNG선과 같은 첨단 선박과 해양 플랜트 점유율도 각각 20%와 10%로 높일 계획이다.지난해 중국의 세계 선박 시장점유율은 29.5%를 기록했으며 첨단 선박의 경우 10%가 채 안 된다고 중국 경제일보가 전했다.중국은 이를 위해 선박산업투자기금을 서둘러 조성하고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기술 경쟁력이 있는 외국 기업 인수도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또 환보하이만과 창장 및 주장 등 3개 지역에 세계 수준의 조선 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중국선박그룹과 중국선박중공그룹 등 양대 조선 업체 주도로 업계를 구조조정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향후 3년간 신규 조선소 설립을 불허해 저부가가치 선박 양산에 따른 과잉공급 문제도 해소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중국 조선 업체들이 수주한 해외 물량 가운데 취소된 물량에 대해서는 중국 해운 업체와 금융 리스 회사 등이 인수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낙후된 선박을 조기에 퇴출해 선박 시장을 키우기로 했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 신조선 발주를 싹쓸이하다시피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이후부터 이뤄졌던 수주 취소, 인도 지연 등으로 2011년 인도 물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이 공백과 건조량을 채우기 위해 적극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 중국 중소 조선사인 진링조선소, 다롄선박중공업 등은 최근 자국에서 발주된 벌크선 8척 등을 대거 수주했다.이에 대해 한국의 조선협회 관계자는 “중국 정부 주도의 조선 산업 육성책에 따른 거센 추격은 분명 신경이 쓰이지만 기술 경쟁력의 척도인 납기일 준수가 안 될 정도로 국내 조선 업계와 격차를 보이고 있어 위기감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조선 산업 경쟁력에서 국내 80% 수준에 와 있는 중국과의 격차가 쉽게 좁혀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등 부가가치가 높은 대형 선박에서 기술 격차는 더욱 크다. 중국은 주로 철광석과 유연탄 등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중심의 건조 체제를 갖추고 있다.하지만 중국이 해양 플랜트 제조 기지를 육성, 이 시장에도 적극 진출하기로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올 하반기 대규모 발주가 잇따라 예정된 세계 해양 플랜트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한국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중국은 2013년까지 원유 시추선 등 420억 달러 규모의 발주 계획을 발표한 브라질의 석유 회사 페트로브라스에 최근 100억 달러를 대출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차이나머니 공세까지 펴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브라질 외에도 호주의 고르곤 가스 개발 프로젝트(320억 달러 규모), 네덜란드 로열더치셸의 LNG 선박 프로젝트(50억 달러)도 대기 중이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