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향수 선택법
회사 여직원들에게 물었다. “남자의 여름 향기라고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니?” 충격적이게도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땀 냄새”였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아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여성들이 플로럴 보디 젤로 샤워하고 평소 쓰는 향수에 맞춰 보디 미스트를 뿌리는 동안 도대체 우리 남성들은 어떤 향기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던 것일까. 필자는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남자의 여름 향기가 땀 냄새라니….무더운 여름의 어느 날 “무슨 향수 쓰세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여성들이 당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별 생각 없이 뿌린 그저 좋은 향기가 나는 물 몇 방울로 당신은 순식간에 깔끔하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다.향수 한 병으로 평소 조용하기만 하고 밋밋한 인상의 김 대리가 신비스럽고 멋있는 숨은 ‘매력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신기하도고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면 남성들은 곧 닥칠 무더운 여름에 대비해 어떤 향수를 어떻게 골라 써야 할까.요즘 남성 향수의 트렌드는 ‘유니섹스’라고 한다. 하지만 말이 좋아 유니섹스지 여성 향수에 주로 쓰였던 플로럴 향이 남성 향수에 많이 사용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기 때문에 남성 향수가 여성화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의 향기를 떠올릴 때 달콤하고 지나치게 로맨틱한 꽃향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시원하면서도 세련되고 섹시한 남자의 향기이니까.그리하여 필자는 특히 후텁지근한 날씨에 남자에게 걸맞은 향수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평소 향수를 즐겨 쓰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더운 날씨일수록 향수의 초이스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땀 냄새나 흡연의 흔적과 섞이면 더 이상 향기롭지 않기 때문이다. 더운 날 정체 모를 향으로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하지 말고 시원한 여름 향수에 눈을 돌려보자.대부분의 남성들이 향수 가판대 앞에 서면 판매원의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긁적긁적하다가 결국은 “요즘 제일 잘 팔리는 걸로 주세요”라는 무책임한 질문으로 향수를 사고 만다. 지금 이 말에 공감하는 남자는 그린(Green) 머스크(Musk) 진저(Ginger) 우디(Woody) 이 네 가지 단어만 기억하자. 이 4가지 성분들은 여름철 남자의 향기를 완성해 줄 수 있는 향수의 주요 성분(Key element)의 이름이다. 판매원의 자세한 성분 중 이 네 가지 단어가 당신의 귓가를 스쳤다면 당신의 센스 있는 여름 향기를 완성해 줄 제품으로 80% 성공적인 구매가 될 것이다.첫 번째, ‘그린(Green)’은 말 그대로 신선한 풀잎 향을 뜻한다. 자연 그대로의 내추럴한 향으로 무더운 날씨에도 상쾌하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그린 향을 가진 제품으로는 깔끔하고 간결한 병에 산뜻한 풀잎 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마크 제이콥스의 피그’ 제품을 추천한다. 은은한 그린 계열의 향은 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시원한 에어컨과 함께 실내에서 보내는 오피스 직종에 있는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마크 제이콥스 피그’는 차분하고 시원한 향을 줘서 보통 직장 남성들의 양복 차림에 잘 어울린다.자칫 딱딱해 보일 수 있는 슈트 차림의 젊은 남성들이 무겁고 중후한 향기를 풍기는 것은 자칫 상투적이며 ‘아저씨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에 여름철 깔끔한 타임 옴므의 화이트 셔츠와 잘 다려진 정장 바지, 그리고 화사한 컬러의 에르메스 넥타이를 매치한 룩에 그린 향의 ‘마크 제이콥스 피그’는 안성맞춤이다. 더욱이 그린 향은 향기가 강하지 않아 지속력이 짧기 때문에 책상 한쪽에 두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자주 뿌려주면 회사에서의 당신의 호감도는 급상승할 것이다.두 번째, ‘머스크(Musk)’는 일반적으로 사향노루의 생식선에서 채취한 향을 뜻한다. 다른 원료에 비해 향이 진하기 때문에 잔향이 오래 남고 남성적이며 강한 인상을 준다. 돌체 앤 가바나의 ‘라이트 블루 뿌르 옴므’는 ‘지중해의 에너지’라는 모티브로 탄생된 향수로 해변에서 태닝을 즐기는 남자의 여유로움과 섹시한 남성미를 담아낸 제품이다. 머스크 향을 베이스로 싱그러운 만다린을 가미해 산뜻하면서도 깊이감을 주는 향이다.가볍고 은은한 시트러스나 그린 계열 향에 비해 중후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30~40대 남자들에게 더 잘 어울린다. 아내와 함께 떠난 이국적인 여름 여행지에서 여름철 남성들의 필수 아이템인 랄프 로렌의 화이트 반소매 피케 셔츠와 토미 힐 피거의 블루 계열 치노팬츠, 그리고 두세 방울의 머스크 베이스의 향수를 가미한다면 당신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길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그 다음 ‘진저(Ginger)’는 생강을 지칭하는 단어다. 생강이라고 해서 고약한 냄새를 떠올리지 말자. 생강은 강한 남성용 향수의 대표적 원료로 프레시하면서도 강한 향기를 부여해 남성 특유의 섹시한 느낌을 더해 준다. 휴고 보스의 ‘휴고 엘리먼트’는 생강과 고수 잎 성분의 결합으로 탄생한 강한 남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향수다. 야외에서 다이내믹하고 활력적인 업무가 많은 남성들에게 어울린다. 애프터 셰이브처럼 시원한 향을 즐기는 당신이라면 아주 굿 초이스가 될 것이다.이런 진저 향과 어울리는 남자의 아웃도어 룩은 굳이 지나치게 스포티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편하게 입을 수 있지만 핏도 좋은 유니클로의 반소매 티셔츠에 경쾌해 보이는 토미 힐피거의 면 반바지와 화이트나 코발트블루 계열의 화사한 컬러의 탐스(TOM)를 센스 있게 신어주자. 그리고 휴고 보스의 ‘휴고 엘리먼트’로 섹시하게 마무리한다면 당신은 최고의 여름 남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마지막 성분인 ‘우디(Woody)’는 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향으로 향수의 주원료로 사용되기보다 진저나 그린 계열 향수와 조합을 이뤄 차분하면서도 은은하게 향을 지속시키는 보조 역할을 한다. 노타이(no-tie)에 깔끔한 셔츠의 편안한 정장 차림으로 저녁식사를 동반한 미팅이 많은 남성들의 경우 아주 세련되고 효과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최근 출시된 랄프 로렌의 남성 향수 ‘폴로’의 30주년 기념 에디션 ‘폴로 모던 리저브(Polo Modern Reserve)’는 필자가 근래 구입해 즐겨 쓰고 있는 여름 향수다. 그린 우디 계열의 다분히 남성적인 폴로의 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게감은 살짝 줄이고 상쾌함을 약간 더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물론 플로럴 향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고, 30년 전 폴로의 골드와 그린의 보틀을 그대로 유지해 여름에도 클래식한 남자의 향을 가질 수 있게 해 준 ‘완소(완전 소중한)’ 제품이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2000개의 한정 수량에 일련번호까지 새겨진 고급스러운 캐멀(camel) 컬러의 가죽 케이스로 출시돼 소장 가치도 있다.흔히 스타일링을 논할 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은 것들까지 신경을 써야 진정한 멋쟁이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슈트에 멋들어진 브리오니의 가죽 구두와 보일 듯 말 듯한 셔츠의 끝자락에 이니셜을 새길 정도의 안목이 있는 당신일지라도 그 스타일링과 맞지 않는 불쾌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당신의 스타일링은 실패작이다.향기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것이 당신의 공든 스타일링을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황의건·오피스에이치 대표이사 h@office-h.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