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주가 1400, 환율 1250원.’최근 우리나라 경제가 머무르고 있는 ‘대략적인’ 위치다. 작년 9월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코스피지수는 938.75까지 내려갔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표들로 경기 회복으로 돌아섰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최소한 경기하강지표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우리 경제가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 중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 정책이다. 실제 정부가 올해 연간 경기 부양을 위해 투입하는 집행관리예산(인건비 등 기본 경비를 뺀 주요 사업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총 272조7000억 원이다. 이 가운데 올 상반기(1~6월)에만 본예산 156조1000억 원, 추경예산 4조7000억 원 등 160조8000억 원이 투입된다. 이에 따라 4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고 경기선행지수도 4개월 연속 상승함에 따라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다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문제는 재정지출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글로벌 재정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재정적자가 올해 GDP 대비 3.2%에서 2010년에 4.7%까지 커질 것이고 G20 회원국 가운데 재정적자 확대 폭도 가장 클 것으로 예상했다.올해 국가 채무는 지난해보다 58조6000억 원 늘어난 366조9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GDP에서 차지하는 국가 채무는 19.5%에 불과했던 지난 2002년에 비해 올해는 35.6%로 대폭 올라간다. 그렇다고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기도 힘들다. 소비 감소와 금리 상승의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조기 집행으로 이미 상반기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다. 하반기 정부의 집행관리예산은 본예산 101조6000억 원, 추경예산 10조4000억 원을 포함해 112조 원가량으로 지난해 하반기(109조 원)에 비해 불과 3조 원 정도 많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아이디어가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는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비과세·감면 제도 86개 가운데 연장할 필요가 없는 제도를 골라내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비과세·감면 제도는 되도록 폐지한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금융회사가 채권, 수익증권 등에 투자해 이자를 받을 때 법인세를 원천 징수하는 제도도 부활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금융업 활성화를 위해 이 제도를 폐지했지만 내년도 세입 여건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1년 만에 재도입을 검토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내년부터 에너지 효율이 낮은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 가전제품에 개별 소비세를 매겨 이렇게 거둔 세금을 고(高)효율 제품 소비 촉진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정부는 또 광역·지역 발전 특별회계 사업 중 지난해 집행 실적이 50%에 못 미치는 부진 사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10% 감액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어도 정부가 재정 긴축으로 선회하기는 더더욱 힘들어 보인다. 경기 회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긴축은 일본식 장기 불황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1990년대 초반 경기 침체기로 접어들었던 일본은 경기 부양책과 정책금리 인하에 힘입어 경기가 상당 폭 좋아졌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불어나는 것에 불안을 느낀 일본 정부가 긴축 재정 정책을 펴면서 장기 불황에 접어들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최근 들어 공식석상에서 계속해 “확장적 재정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실제 아직까지 민간 부문은 홀로 설 수 있는 여력이 없다. 5월 들어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21만9000명 감소해 4월(마이너스 18만8000명)에 비해 감소 폭이 늘어났고 소비 및 설비 투자는 작년 4분기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들이 요즘 들어 “이젠 더 이상 꺼내들 카드가 없다”는 말을 부쩍 많이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박신영·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