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말 크라이슬러에 이어 6월 1일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마침내 미국 ‘빅3 시대’가 막을 내렸다. GM과 크라이슬러가 몰락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핵심적인 요인은 시대와 시장이 요구하는 자동차를 제때 내놓지 못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무엇보다 빅3는 유가 상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08년 초의 급격한 유가 상승으로 소비자들이 연비가 좋은 소형 승용차를 찾았지만 빅3는 팔만한 물건이 없었다. 빅3 제품은 대부분이 기름 먹는 하마로 불리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위주였기 때문이다.여기에는 SUV에 대한 관세를 승용차보다 높게 유지한 미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 미국 자동차 기업들이 대형 SUV의 개발과 생산에 경쟁력이 있는데다 관세로 시장을 보호해 주자 빅3는 SUV 시장에서 높은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굳이 경쟁력이 약하고 수익률도 높지 않은 소형 승용차를 개발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2008년 9월 이후의 경제 위기 본격화로 향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결정지을 요인 가운데 하나는 경쟁력 있는 소형차의 개발과 생산 능력이다. 특히 소형차를 만들어 팔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경쟁력 있는 소형차의 개발과 생산 능력을 뒷받침하는 노사관계와 부품 업체와의 협력 관계, 생산 유연성 등이 필요하다.두 번째로 빅3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부족했다. 이른바 친환경 자동차의 개발과 판매에 늦은 것이다. 현재 상용화된 친환경 자동차로는 하이브리드카가 있는데, 이 시장은 도요타와 혼다와 같은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미국의 빅3는 하이브리드를 과도기 기술로 보고 연료전지 개발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데, 연료전지는 가격과 인프라 건설에서 상용화가 여전히 요원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영원한 유망 분야’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다.그동안 친환경차는 매출과 수익보다 자동차 기업의 이미지나 기술력을 과시하는 용도로 활용돼 왔다. 소비층도 유명 연예인 등 친환경 이미지를 과시하려는 사람들로 한정돼 왔다.하지만 최근 혼다가 하이브리드카 ‘인사이트’의 가격을 200만 엔 이하로 내리고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대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4월 인사이트는 일본 시장 판매 1위 모델로 부상했다. 게다가 최근 미국 정부가 연비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친환경 자동차를 개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또 다른 생존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친환경차 개발, 생산에는 정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친환경차의 기술 개발과 시장 형성에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친환경차의 개발과 보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특히 미국은 하이브리드카를 뛰어넘기 위해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카(plug-in hybrid car)의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관련 인프라 구축 및 보급을 촉진하고 있다.향후 전개될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경쟁 화두는 ‘친환경 소형차’로 요약된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친환경 소형차를 제때에 적절한 가격으로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업체들은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빅3의 전철을 되밟을 우려가 높다.나아가 전 세계 자동차 업체와 각국 정부가 모두 ‘친환경 소형차’의 개발에 나서고 있어 단순한 친환경 소형차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정보기술(IT)의 접목이나 인접 거대 시장인 중국을 활용해 친환경차의 표준을 설정하는 등의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약력: 1982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88년 동 대학원 석사, 94년 박사, 2001년 펜실베니아대 객원연구원, ‘도요타 DNA’, ‘창조적 전환’, ‘R&D Interplay’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