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해고 시스템

세계적 HRM(Human Resource Management) 회사인 왓슨 와이어트 월드와이드(Watson Wyatt Worldwide)가 지난해 10월 미국 내 248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이 경영 위기를 타개하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선택하는 조치가 대량 해고나 채용 동결(hiring freeze)과 같은 인원수 조정임을 보여준다. 이 조사에 응한 기업들 중 총 19%는 이미 해고를 단행했고 26%에 달하는 기업들은 올해 내로 인원 감축에 들어갈 것이라고 응답했다. 역시 비슷한 숫자인 약 25%의 기업들은 채용 동결을 실시하겠다고 응답했다.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경기 침체와 경제 위기의 여파로 신음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러한 위기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상황은 더더욱 심각하다. 이미 각종 언론 매체에 보도된 바와 같이 지난 2월의 미국 실직자 수는 12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실업률은 8.2%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이는 10%가 넘는 실업률을 기록했던 1982년 이후 최고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고용의 위기 상황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이런 실업대란은 한편으론 고도로 발달된 HR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는 유수의 미국 기업들 역시 경제 위기에 봉착해서는 해고라는 수단 외의 특별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아무리 해고가 쉽다는 미국에서도 직원을 내보내는 일은 HR 담당자 입장에서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특히 해고하는 절차가 매끄럽게 처리되지 못해 자칫 떠나는 사람에게 직장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소송이나 정보의 유출 등과 같은 보복 행위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무리 없이 해고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HR의 이슈로 대두된다.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인적 자원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조성준 씨가 소개한 미국의 사무실에서 해고할 때 어떤 풍경이 연출되는지를 소개한다.첫째, 해고를 통보하는 공식적인 미팅, 즉 세퍼레이션 미팅(separation meeting)을 마련한다. 미팅 장소는 해고자가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멀리 벗어난 곳으로 잡는다. 미팅 시간은 10~15분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둘째, 해고 통보는 분명하고(clearly), 간명하게(succinctly) 한다. 어떻게 해고 사실을 알릴 것인지 미리 계획하고 연습한다. 또한 이 해고 통보는 확정적(definite)이면서 최종적(final)이며 번복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필요하다면 이 사실을 반복해 주고 왜 해고되는지에 대한 이유도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한다.셋째, 이제 이야기의 주제는 퇴직금 패키지로 넘어간다. 퇴직금 및 퇴직 후에도 유지되는 각종 혜택(benefit)과 전직 지원 서비스와 같은 내용들을 설명하고 이러한 모든 내용과 담당자의 연락처가 기재된 문서를 전달한다.넷째, 이제 해고자가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사람이 하는 말투나 행동, 그리고 표정 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 감정을 이해하도록 한다. 질문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 최대한의 도움을 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회사의 방침 내에서만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며 해고의 결정은 절대로 뒤집어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다섯째, 가능하다면 전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아니면 전직 관리(outplacement management) 서비스 회사의 컨설턴트를 연결해 준다. 해고 통보를 받는 사람을 마주대하는 일은 HR 담당자들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것이다. 수년, 혹은 수십 년을 위해 일해 온 회사로부터 뜻밖의 해고 통보를 받아야 하는 이들의 마음을 감정적으로 이해하고 최대한 그들을 돕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최대한 냉정하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해고 사실을 통보해야 하는 이중적인 얼굴을 가져야 하는 것은 HR가 떠안아야 할 시대의 무게다.약력: 1959년생. 연세대 대학원 졸업. 83년 쌍용그룹 입사. 2002년 위드스탭스홀딩스 대표이사(현). 2006년 HR아웃소싱협의회 회장(현). 2009년 한국 HR서비스 산업협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