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유럽 중소기업
유럽 중소기업들의 보수적인 경영 방식이 전 세계 불황에 돋보이고 있다. 중소기업들도 경기 침체와 은행들의 대출 축소에 타격을 받고 있지만 대기업들에 비하면 ‘선방’하고 있다. 향후 전망도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다.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400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중소기업연합회는 올해 회원사들의 매출이 2%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 경제가 전체적으로 6% 위축이 예상되는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프랑스에서 지난 5월 80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선 절반 이상의 기업이 올해 매출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프랑스 중소기업들을 대변하는 로비 그룹의 장 프랑수아 루보드 대표는 설문 결과에서처럼 현장에서도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인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중소기업연합회가 실시한 최근 설문에서도 응답 기업의 60%가 지난해보다 상황이 비슷하거나 더 나아졌다고 답했다.중소기업들도 물론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은행의 대출 축소에 힘들어 하고 있다. 프랑스의 한 공기압축기 생산 업체는 HSBC와 소시에떼제네랄 두 은행에 당좌대월(overdraft) 한도를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이 회사는 신용 등급이 업종 내 최고이고 올해 매출 전망도 좋은 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2년 전만 하더라도 목에 찰 때까지 대출을 받아가라던 은행들이 달라졌다”며 씁쓸해 했다.이 같은 힘든 상황에서도 유럽의 중소기업들은 아직까지 잘 버티고 있다. 독일에서 지난 1월과 2월 부도난 회사 수는 1년 전과 비교해 별 변화가 없었다. 저축률이 높은 독일의 경우 국내 소비가 받쳐주고 있어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들은 선전하고 있다. 기계장비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은 해외시장에서의 급격한 수요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숙련공 위주의 일자리는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올해 1분기 기업 부도율이 21% 늘었지만 부도 기업의 70% 이상이 1∼2명만으로 운영되는 영세업체(자영업)이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았다.중소기업은 유럽 경제의 핵심 축이다. 통상 250인 이하의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회사를 뜻하는 중소기업은 유럽 전체적으로 8800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민간 분야 고용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특히 대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해외로 생산 시설 등을 옮기면서 고용 측면에서 중소기업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유럽 중소기업들이 불황을 잘 견뎌낼 수 있는 것은 평소 위기에 대비해 보수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고객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첨단 제조업 중심의 미텔슈탄트(Mittelstand:중소기업)들은 ‘위험관리’를 최우선 경영 전략으로 내세운다. 또한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고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독일의 유명 전자저울 업체 죈레(Soehnle)의 미하엘 슐래거 대표는 “섣부른 투자 확대를 경계하고 항상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를 위험 상황에 대처하는 데 매우 익숙해져 있다”며 “지역의 상업은행 및 협동조합과 수십년간 거래를 지속해 오면서 단 한 번도 납기일을 어긴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급 수공 식자재를 생산하는 ‘쾨니크리헤 포르첼란 마뉴팩투어(왕립도자기제조회사)’도 180명의 직원들이 불황을 꿋꿋이 버텨내고 있다. 250년 역사를 가진 이 회사의 제품은 컵이나 접시 1개에 80유로(110달러)에 달할 정도로 비싸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객들은 여전히 이 제품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열고 있다. ‘품질’에 관한 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식자재에 문양을 새겨 넣는 직원들은 3년 반 동안의 훈련을 거쳐야 실제 작업에 투입된다. 경기가 좋을 때 투자와 고용에 신중했던 것도 도움이 되고 있다.프랑스 인시아드(INSEAD:유럽경영대학원)의 루도 반 데르 헤이든 교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불황에 더 취약하지만 불황을 극복해 나가는 데는 더 유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대기업처럼 무조건 무차별적으로 비용을 삭감하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기 때문에 훨씬 빨리 회복할 수 있다”는 게 헤이든 교수의 설명이다. 몸집이 작아 민첩한 대응이 가능하고 경영진과 종업원들 사이의 신뢰가 탄탄한 점도 중소기업의 장점으로 꼽힌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