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②

이 주의 명작엘리자베스 워런, ‘맞벌이의 함정’국내에서도 몇 년 전부터 주택문제가 교육 문제와 깊은 함수관계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육과 주택문제는 미국에서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동시적이지는 않지만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 중산층의 경우 자녀들의 교육 문제와 결부된 교외의 고급 주택 구입이 중산층의 위기를 불렀다는 분석이 있다. 만약 가정들이 유명 브랜드 생수와 DVD에 정신 못 차리고 돈을 쓰는(과소비론) 게 아니라면, 어떻게 해서 중산층 가정들이 심각한 재정난에 처하게 된 것일까. 대답은 ‘집’에서 출발한다.엘리자베스 워런이 지은 ‘맞벌이의 함정(원제 The Two-income trap, 필맥 펴냄)’이 바로 그것이다. 워런에 따르면 미국 중산층의 교외 주택 구입이 심해진 것은 좋은 학군 내 주택에서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다. 학교 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교외 주택 구입 붐이 일어났다. 주택 가격은 상승했고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중산층의 파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워런은 그 이유를 바로 범죄 등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교외의 좋은 주택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모기지론 등 대출을 무리하게 이용해 주택을 구입하게 된 데서 찾고 있다. 최악의 재정난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놀라운 공통점이 있다. 자녀가 있는 부모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자녀가 있다는 것은 이제 여성이 재정 파탄을 맞을 것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고 지표다.이 책에서는 자녀가 있는 부부가 자녀가 없는 부부보다 두 배 이상 파산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유자녀 가정은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할 가능성이 무자녀 가정보다 75%나 더 높다.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파산 가정들의 대부분은 부부 양쪽이 다 직장에 다니는 가정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논리대로라면 부부가 다 직장에 나가면 그 가정은 재정적으로 더 안전해져야 할 것이다.전업 주부는 가정에서 재난에 대한 안전망, 다시 말해 만능 보험증서의 역할을 했다.아빠가 해고되면 엄마는 아빠가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직장에 나가 돈을 벌어올 수 있었다. 만약 부부가 이혼하면 가정 밖에서는 일하지 않던 엄마가 취직해 새로운 소득을 벌어 와 자녀를 부양할 수 있었다.만약 맞벌이 가정이 엄마가 번 ‘두 번째 봉급’을 저축했더라면 그들은 다른 종류의 안전망, 즉 많은 금액의 은행 예금을 보유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안전망을 갖췄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들은 두 번째 봉급을 저축하지 않았다.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일터로 나갔는데도 저축은 감소했다. 그 이유는 부부가 놀기 위해, 또는 자녀의 장난감을 사기 위해 그들의 봉급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는 대신 각 가정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놓고 서로 격렬하게 다투는 ‘입찰 전쟁’에 휩쓸려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란 좋은 학군 내 주택이다.학교 체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주택에 대한 입찰 전쟁이 격화됐고 부모들은 아이를 좋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또는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주택에 대한 입찰 전쟁에 나서 그 가격을 점차 높여갔다. 안성맞춤으로 엄마의 소득이 적시에 생겨나 입찰 전쟁에서 경합을 벌일 추가적 실탄을 각 가정에 주게 돼 그들 모두가 원하는 것들의 가격을 더욱 높였다.이렇게 해서 맞벌이의 함정이 교묘하게 생겨났다. 이제 엄마들은 집과 직장에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러고도 그들 손에 남는 돈은 더 적다. 엄마의 소득은 자녀를 중산층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본 비용으로 곧바로 투입돼 왔다.그렇다면 모든 엄마들이 황급히 가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법일까. 그것은 적절한 해결책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다. 오늘날 중산층 엄마는 함정에 빠져 있다. 그는 일을 계속할 수도 없고 그만둘 수도 없다.자녀를 둔 부부가 주택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로 귀착된다. ‘안전’과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각 가정은 이 쌍둥이 신화에 대한 제물로 엄마를 일터에 내보냈고, 가족의 경제적 예비 자원을 소진했으며, 엄청난 채무 부담을 졌다.대다수 중산층 부모에게 자녀의 버젓한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높은 품질의 교육과 학부모의 신뢰를 유지하면서 명성을 지켜 온 일부 소수 학군의 주택을 움켜잡는 것이다.일반적으로 주택은 차량 두 대분의 주차장, 직장이나 상가까지의 거리와 교통, 낮은 범죄율과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쾌적함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캘리포니아 중규모 도시에서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비슷한 주택일 경우 주민의 인종 구성, 통근 거리, 범죄율, 유해한 폐기장까지의 거리 등을 제치고 학교의 질이 집값에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었다. 보스턴 근교의 경우 4학년 수학과 읽기 과목 점수가 5% 높은 학교가 속한 교육구의 주택이 거의 4000달러가량 더 비쌌다.부동산 중개인은 주택 가격의 세 가지 중요한 결정 요인으로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라는 농담을 오래전부터 해 왔다. 오늘날 이 말은 “첫째도 학교, 둘째도 학교, 셋째도 학교”로 바뀌어 버렸다. 자녀를 사랑하는 수백만 명의 부모들에게 유일한 해결책은 비용이 얼마나 들건 간에 안전한 지역의 수준 높은 교육구로 이사하는 것이었다.그래서 미국 전역의 중산층 가정들이 전면전에 휘말려 들었다. 그들의 전쟁은 바로 좋은 학교가 있는 주택을 구입하려는 ‘입찰 전쟁’이었다. 부모들은 그들의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키우기에 좋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주택을 개별적으로 찾았다.많은 중산층 부부들이 입찰 전쟁에서 탈락해 체념하고 자녀를 좋지 않은 학교에 보내기보다는 꿈의 내 집을 장만하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것은 바로 더 많은 모기지 대출을 받는 것이다. 1980년에는 모기지 대출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됐다. 그 결과 평균적인 가정은 소득에 비해 더 많은 모기지 대출을 제공해 주겠다는 은행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됐다. 입찰 전쟁이 가열됨에 따라 가정들은 단지 뒤처지지 않고 현상 유지만이라도 하기 위해 점점 더 큰 금액의 모기지 대출을 받았다.엄마가 벌어 온 추가 소득과 은행의 추가 모기지 대출금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주택에 대한 수요가 통상적인 수준을 뛰어넘어 폭증하면서 전면적 입찰 전쟁으로 이어졌다.전업 주부는 남편의 실업이나 노동 능력 상실에 대한 가족 최후의 보험으로서 가정이 위기에 처할 때 소방수 역할을 했다. 명문 학교가 있는 지역에 주택을 구입하려는 입찰 전쟁의 가열로 전업 주부들이 직업전선에 나섬으로써 엄마라는 ‘다목적 안전망’은 사라졌다. 좋은 지역의 주택에 대한 경쟁은 항상 치열했고 더 좋은 주택을 사기 위해 과중한 모기지 채무를 안았다. 1990년대 준우량 모기지 대출업자(subprime mortgage lender)들이 생겨나 관리 불가능한 모기지 대출을 해 주는 것이 이제 다반사가 됐다. 이게 바로 미국의 금융 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의 시작이었다.명문 학교가 있는 주택의 입찰 전쟁 또한 우리의 자화상이며 최악의 출산율이라는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전업 주부는 전통적으로 다목적 안전망 역할을 해 왔다. 전업 주부가 주택 대출금 상환이나 교육비를 벌기 위해 노동력에 합류하면 위급한 시기에 가정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최효찬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