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세금 폭탄

유럽 축구 최고의 잔치라는 챔피언스 리그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소속팀이 4강에 3팀이나 올랐다. 박지성 선수가 속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올해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세계 축구계에 프리미어 리그 대세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한때 영국 금융 산업이 규제 완화와 고액 연봉을 무기로 세계 금융 허브가 되었듯 축구계에서도 영국이 시장 개방과 고액 연봉을 미끼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긁어모은 결과인 것. 하지만 경제 위기의 여파와 프리미어 리그 운영에 대한 영국 내 규제 움직임이 늘어나면서 프리미어 리그의 ‘잘나가는 시절’에 찬바람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내년 중 연봉 15만 파운드(3억 원) 이상인 고소득자에 대해 최고 50%의 소득세율을 물리기로 결정, 프리미어 리그에 때 아닌 세금 한파가 불게 됐다. 노동당 정부가 지난해 11월 예산 초안을 발표하면서 최고 소득세율을 현재 40%보다 5%포인트 높인 45%로 적용할 방침이었지만 최근 다시 50%로 높인 것. 적용 시기도 당초 2011년 4월에서 2010년 4월로 앞당겼다. 이에 따라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은 선수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연봉 인상을 준비하고 있다.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해외 출신 축구 선수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를 비롯해 440명에 이르고 있다. 주요 클럽의 구단주들은 이번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연봉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액 연봉을 받는 축구 선수에게 50% 세금 충격은 엄청난 실소득의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주요 선수들은 주급 5만∼7만 파운드를 받고 있다. 주급 7만 파운드의 경우 선수들이 물어야 할 세금은 연간 170만 파운드로 올해보다 32만 파운드가량 늘어난다. 박지성 선수는 주급 5만 파운드(1억 원, 연봉 260만 파운드)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새로 고쳐지는 영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독일(45%) 이탈리아(43%) 프랑스(40%) 스페인(25%)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던 세율 덕에 우수 선수들을 흡수했던 프리미어 리그의 경쟁력에 근본적인 걸림돌이 생긴 것이다.여기에다 경제 위기 여파로 파운드화까지 하락하면서 프리미어 리그 클럽의 해외 선수 유치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아르센 웽거 아스널 감독은 최근 “세금 인상과 파운드의 가치 하락이 영국의 모든 축구 클럽에 재정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이 같은 경제적 요인 외에 각종 정부 규제도 프리미어 리그의 고공비행에 발목을 잡을 태세다. 영국 일간 더타임즈에 따르면 앤디 번햄 영국 문화부장관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리버풀, 아스널 등 ‘빅4’가 독식하고 있는 막강한 축구 자본의 집중을 해체해 수익을 보다 균등하게 나눌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프리미어 리그 에버턴의 팬이기도 한 번햄 장관은 “‘빅4’ 구단들이 챔피언스 리그 등 유럽 무대에서 획득한 막대한 부를 다른 팀들과 나눌 필요가 있다”며 다양한 부의 재분배 수단을 소개하며 프리미어 리그 개혁에 발 벗고 나선 것.우선 10억 파운드에 달하는 TV 중계권료와 스폰서십 수익을 프리미어 리그 20개 구단들에 보다 균등하게 분배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영국 정부가 이처럼 축구 경기라는 사적 영역의 ‘게임의 룰’에까지 간섭하고 나선 명분은 지나친 자본집중으로 ‘경쟁의 균형’이 깨졌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거금이 걸린 주요 대회를 휩쓰는 소수의 강팀들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고액의 해외 축구 스타들을 대거 영입하고 선수단 규모를 키우면서 약팀과의 격차가 지나치게 넓어졌다는 것. 이에 따라 강팀군과 약팀군, 중간 그룹의 구분이 너무 확연해져 하위팀이 상위팀으로 ‘신분 상승’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이와 관련, 번햄 장관은 “축구 자체는 정부가 다룰 업무가 아니지만 공공의 이해관계가 얽힌 게임에 대해선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어떻든 간에 프리미어 리그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 잘나가는 시절은 끝나가고 있는 형국이다.김동욱·한국경제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