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지금

장난감을 1주일 동안 빌려주고 다시 가져오면 다른 것으로 바꿔 주는 장난감 도서관. 최근 이곳에는 주말과 퇴근 시간 무렵이면 10세 미만의 아이들과 부모들로 문전성시다. 현재 미국 LA카운티 공공복지서비스국이 운영 중인 이 프로그램은 전년 동기보다 찾는 이들이 30% 증가했다. 최근 경기 불황으로 육아비 부담이 많아진 주민들의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장난감 도서관은 현재 LA카운티 내에 51곳이 있고 한 곳당 약 4만5000개의 장난감을 보유하고 있다. 기부 받은 장난감으로 운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영리 추구는 아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황을 맞은 요즘 가장 바빠졌다고 LA타임스가 5월 4일자로 보도했다.전 세계에 불어 닥친 불황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른바 ‘대박 불황 아이템’ 사업들을 살펴보면 시기적절하고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미국 일본 대만 등에서 불황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사업들을 통해 지갑이 얇아진 소비자들이 그래도 어디에 지출하고 있는지 방향을 잡을 수 있다.최근 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U.S. News & Report)는 10대 호황 분야를 정하고 ‘불황 속 10대 승자(10 Winners in the Recession)’라고 칭했다. 10대 호황 분야를 통해 살펴본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콘셉트는 3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첫째, 가정에서 소소한 만족을 추구하는 ‘소박한 행복’. 비싼 정원 유지비와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집 앞뜰에 채소를 가꾸고 스타벅스 커피 대신 집에서 직접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들어 마신다. 둘째, 자기 계발을 위한 ‘새로운 도전’. 이력서 감수 업체와 경력 개발 웹사이트에는 최근 급증한 실직자와 취업 준비생들이 몰리고 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한 저비용의 오락 ‘현실 도피적 환상’이다. 미국인들은 비용이 들지 않고 즐거움의 효용이 큰 ‘부부 성관계’를 불황기 최고의 여가 생활로 꼽았다. 하지만 육아비 부담으로 산아제한을 하다 보니 콘돔의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증가했다. 그리고 초콜릿, 할리우드 영화와 로맨스 및 공상소설 등으로 손쉽고 값싼 즐거움을 찾는다.한편 미국인들은 불황을 맞아 외식 횟수를 줄이고 대신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거나 저렴한 즉석 냉동식품을 구매하고 있다. 금융 위기로 불황이 시작된 지난해 4분기에 미국인의 식품에 대한 소비는 3분기에 비해 3.9% 줄어 62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에 따라 식품 업체들은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크래프트사(Kraft Foods)는 ‘아이푸드 도우미(iFood assistant)’라는 이름으로 애플의 아이폰으로 사용할 수 있는 조리법과 식재료 쇼핑 리스트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리고 네슬레SA는 인기 냉동제품인 ‘린퀴진(Lean quisine: 전자레인지에 바로 데워 먹을 수 있는 반 조리 식품)’의 판매에 주력, 어느 상점이든 10달러에 5개 묶음으로 평소보다 값싸게 제공해 매출을 늘리고 있다. 그리고 캠벨(Campbell)사는 ‘파를 곁들인 쇠고기 찜’ 등 레스토랑의 메뉴를 캔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다.장기 불황을 겪어 온 일본에서는 ‘불황 아이템’들이 이미 다양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일본식 표현으로 ‘생활방위소비’라고 불리며 생활비 절약 제품들이 새로운 소비 패턴으로 등장했다. 자동차와 에어컨 등을 대체하는 자전거, 선풍기, 냉각 침구 시트 등 제품의 매출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직접 집에서 요리하거나 스스로 만드는 ‘셀프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절약 상품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정미기다. 종합 쇼핑몰 코메리에서 정미기는 전년 대비 300%나 매출이 증가했다. 시골에서 직접 쌀을 가져오거나 인터넷 숍에서 현미를 산 후 집에서 정미해 먹는다. 식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는 쌀보다 맛있고 건강에도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화장품도 직접 만들어 쓴다. 화장품 제조 업체인 이사자야연구소의 ‘내추럴 라보라도리즈(Natural Laboratories)’는 화장품의 원재료들을 판매한다. 몇 가지 원재료를 조합해 동영상을 보며 화장수, 핸드 크림, 립 크림, 마사지 팩, 젤 등을 제조할 수 있다. 만드는 방법은 웹사이트에 마치 요리 강좌처럼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제품군은 지난해부터 판매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구두를 오래 신을 수 있도록 한 굽의 재생 세트인 ‘슈즈 닥터’는 DIY 용품 전문 백화점인 토큐한즈(Tokyu-hands) 신주쿠점의 구두 보수 용품 판매장에서 많이 팔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곳에서 팔린 슈즈 닥터의 판매액은 전년 동월 대비 16.8% 증가했다.중고차를 이용한 렌터카 서비스도 파격적인 가격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니코니코렌터카’에서 소형차를 12시간 빌리는 데 불과 2525엔(3만3000원)이 든다. 주말 쇼핑이나 병원에 갈 때 잠깐 이용하는 용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니코니코렌터카는 성장세에 힘입어 올해 6월까지 점포를 전국 100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대만인들은 불황에 대한 대처 방식으로 칩거를 택했다. 외출형 소비를 자제하고 집에서 모든 것을 구매하는 재택형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교통비 절약과 편리함을 내세우는 인터넷 쇼핑이 대세를 이루면서 도·소매업, 요식업의 매출이 모두 감소하고 있는 반면 인터넷 쇼핑 업체는 급성장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 업체의 월평균 영업 수입은 서비스 개시 당시 100만 대만 달러(약 3800만 원) 수준에서 억 단위로 급성장했다.대만 인터넷 쇼핑의 특징은 샴푸 화장지 세제 등 저가의 일상생활 용품이 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만의 대표 인터넷 쇼핑몰인 PCHome의 경우 영업 수입의 절반 비중이 일상생활 용품으로 화장품이 인기 품목 1위, 여성 위생 용품이 2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인터넷 쇼핑몰인 야후에서도 화장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음료가 그 뒤를 이었다.대만의 인터넷 쇼핑 붐으로 인해 2008년 인터넷 쇼핑 시장 규모는 2430억 대만 달러(9조2655억 원)로 전년 대비 32.3% 성장했고 올해는 3208억 대만 달러(12조5066억 원)로 예상돼 다시 한 번 전년 대비 3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불황을 맞이한 전 세계 소비자들의 경향을 살펴보면 한마디로 ‘집 나가면 돈 나간다’다.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고 웬만하면 직접 만들어 충당하고 집에서 여가 생활을 보내자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는 재정적 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겠지만 상품의 대체효과와 관련 업종의 매출 감소로 이어져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불황기에는 소비자이건 기업이건 최대 지상 과제는 ‘살아남는 것’이다. 서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가운데 사람들은 위축된 소비 심리를 읽어내고 그에 합당하게 제안하는 기업들은 위의 예처럼 불황을 이겨낼 수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