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아 반갑다’ - 온라인 중고장터

지난해 세계적 경제 위기 이후 온라인 중고 숍이 전환점을 맞았다. 불황이 닥치면 중고 시장이 커지는 것은 늘 있어 왔던 일이다.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지역적 한계가 있었던 반면 온라인에서는 전국적으로 구매자와 판매자가 연결되면서 급속히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 온라인 중고 숍 중에서 ‘소리바다’ ‘디씨인사이드’ 같은 새로운 ‘스타 기업’이 탄생할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국내 대형 은행 본점 인사부에 다니는 김모 대리는 네이버 카페 ‘중고나라’와 ‘SLR클럽’의 단골손님이다. 그는 지난해 이들 사이트에서 40건 가까이 중고 물품을 거래했다. 가장 최근의 거래품은 시계. 정가 13만 원대의 D&G 손목시계를 8만 원에 샀다. “한두 번 찬 흔적은 있었지만 그리 오래 사용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김 대리의 말이다. 그는 최근에 중고나라를 통해 정가 5만5000원짜리 무선 공유기를 5만 원에 팔기도 했다.“잘만 보면 새것이나 다름없는 중고품이 많습니다. 선물로 받았는데 이미 있는 물건이거나 카드로 ‘질렀는데’ 막상 물건을 받은 뒤 쓸모가 없는 경우 신품이 올라오기도 합니다. 새것인데 포장을 뜯기만 한 것은 정가에서 1만 원이 빠지고요.” 김 대리가 귀띔하는 구매 노하우다.김 대리와 같은 부서의 이모 과장은 온라인 중고 숍을 통해 1년 된 UMPC(Ultra Mini PC)를 판매했다. 이 과장은 80만 원에 구매한 이 제품을 55만 원에 팔 수 있었다. 물론 곱게 쓰고 상태가 양호했기 때문에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다.“교육팀에 발령받아 휴대용 컴퓨터를 쓸 일이 많을 줄 알고 샀는데 생각보다 사용할 일이 적었고 또 UMPC가 일반 노트북 PC에 비해 사용하기가 불편해 고민하던 차에 온라인 중고 숍을 알게 됐다”고 이 과장은 설명했다.김 대리는 “경우에 따라서는 구매한 가격보다 비싸게 되파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공급이 제한된 희귀한 제품일 때 이것을 꼭 사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이다.최근 김 대리처럼 온라인 중고 숍을 찾는 이용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온라인 중고 숍이 유망한 인터넷 사업 아이템으로 뜨고 있다. 위의 이 과장처럼 주변의 권유로 한 번 중고 숍의 유용성을 확인한 이용자는 다시 주위 사람들을 끌어들이면서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중고나라(www.joonggonara.co.kr)’는 2003년 10월 네이버 카페로 문을 연 뒤, 지금은 국내 최대의 온라인 중고 숍이 됐다. 중고나라 카페지기 ‘burst9’은 “4월 말 가입자는 365만 명으로 4월 한 달 동안 18만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7월에 400만 명을 충분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중고나라는 회원들끼리 직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수수료 수입이 없다. 그렇다면 카페 주인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일까. 중고나라를 꾸준히 찾는 한 이용자는 “눈에 보이는 수익은 없을지라도 회원 수가 많고 거래 총액이 상당하기 때문에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며 “안전 거래 시스템(에스크로) 수수료가 있을 테고 또 광고 수입, 공동 구매 커미션 등이 상당할 것”이라고 얘기했다.이에 대해 중고나라 개설자인 ‘족장(대화명)’은 “중고나라는 비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대안적 성격의 거래 사이트로, 에스크로의 대가는 마스킥(www.maskic.com)이라는 비영리 불량거래 정보공유사이트의 유지관리에 이용된다. 그리고 공동구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전액 어려운 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다”고 반론을 전해왔다.온라인 중고 숍은 ‘카드깡의 온상’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포장을 뜯지 않은 신제품은 구매 가격에서 1만~2만 원을 빼고 재판매된다. 현금이 필요할 때 카드로 물품을 구매한 뒤 중고 숍을 통해 되팔면 즉시 현금이 주어지는 것이다. 카드 이용자는 카드 결제일까지 최대 45일 동안 이자와 수수료를 들이지 않고 현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카드깡’과 똑같은 시스템이지만 온라인에서는 전문 업자가 아닌 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카드깡을 하려면 환금성이 좋아야 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고르게 된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중고 숍을 잘만 이용하면 신제품과 다름없는 제품을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길이 생기는 것이다. 한 이용자는 “지난해 11월 출시된 ‘캐논 EOS 5D 마크2’는 초기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얼리어답터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300만 원대의 가격에도 불구하고 중고 숍에서 신제품과 같은 가격에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흔히 생각하는 중고 시장의 낡고 오래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과는 정반대다.온라인 중고 숍이 확대되면서 기존 온라인 상거래 업체들도 중고품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은 설립 초기부터 중고 거래가 가능했지만 중고품 거래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11월 ‘옥션 중고장터’를 새로운 카테고리로 메인 화면에 추가했다.또 지난 2월에는 중고장터 거래 수수료를 대폭 낮추면서 거래 활성화를 유도하고 있다. 옥션 측은 “옥션 중고장터 거래 성사 수수료는 1.5(현금 거래)~3%(카드 거래)로 책정돼 다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2~3%(현금 거래), 4~5%(카드 거래)보다 저렴하다. 특히 옥션 중고장터는 다른 사이트와 달리 에스크로 수수료 1000원가량을 따로 받지 않고서도 안전 거래 시스템을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이런 노력 때문인지 4월 옥션 중고장터의 거래액은 전년 4월 대비 354%로 증가했다. 방문자 수도 186% 늘어났다.‘인터파크’도 올해 1월 ‘중고 숍’을 별도의 카테고리로 오픈했다. 인터파크 측은 “중고 숍 붐이 일면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고 이를 프로모션 차원에서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품도 많지만 리퍼브 제품(반품)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대량으로 등록하는 경우보다 개인 판매자들이 우선 노출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인터파크 측은 설명했다. 인터파크 중고 숍은 올 1월 이후 매월 10~15%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옥션, 인터파크 같은 마켓플레이스보다 먼저 움직인 곳은 사실 온라인 서점들이다. 2008년 2월 ‘중고 숍’을 오픈한 알라딘은 “구매자들끼리 물품을 거래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혼선이 있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알라딘의 중고품 거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34%, 9월에는 24%의 성장세를 보였다. 올해도 10%대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새 책을 판매하는 온라인 서점에서 중고 책 판매를 할 경우 기존 서적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알라딘 측은 “출판사들의 우려가 있긴 했지만 고객들이 새 책을 읽고 팔 수 있으면 책을 구매하는 부담이 줄어들어 판매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예스24, 인터파크 도서, 인터넷 교보에 이어 업계 4위인 알라딘이 중고 숍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업계 1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고 숍을 통해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크다. 그러나 중고 숍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업계 1위인 예스24도 올해 안으로 중고 숍을 오픈할 예정이다. 예스24는 “고객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검토하고 있으며 하반기 중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온라인 서점으로는 업계 5위인 리브로는 아예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중고 책 판매를 들고 나왔다. 현재 을지로 본점을 포함한 6개 지점에서 ‘숍인숍’ 형태로 헌책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리브로 측은 “훼손 정도가 심하지 않은 책을 골라 살짝 재단해 거의 새 책이나 다름없는 제품을 절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는 ‘헌책방’과 전혀 다르다”고 설명한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