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PGA 투어의 위기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미국의 경제 위기로 인해 대회 이름 앞에 붙는 ‘타이틀 스폰서’가 줄줄이 포기를 선언하고 LPGA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5월에 뉴욕에서 열리는 코닝 클래식이 올해 31번째 대회를 끝으로 대회 중단을 선언했고 역시 5월 초에 열리는 미켈롭 울트라 오픈도 올해를 끝으로 대회 후원 계약이 종료되지만 연장 여부가 불투명하다.7월에 열리는 스테이트 팜 클래식은 올해를 끝으로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 방송사인 SBS가 주최하던 SBS 오픈은 국내 LPGA 투어 방송 중계권 협상에서 J골프에 패함으로써 자동적으로 대회를 중단했다. 이로써 전반기에 열리는 12개 대회 가운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4개 대회가 내년부터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올해는 지난해 열렸던 대회 가운데 긴 오픈과 긴 트리뷰트, 필즈 오픈, 셈그룹 챔피언십, 숍라이트 클래식 등과 우승 상금 100만 달러를 내걸었던 시즌 최종전 ADT 챔피언십 등 6개 대회가 막을 내렸다. 최근 2년 사이에 무려 10개 대회가 사라진 셈이다.이뿐만 아니다. LPGA의 방송 중계권 협상마저 순조롭지 못하다. 내년에 전국 방송망을 가진 CBS, NBC 등 ‘메이저 방송사’에 LPGA 대회가 거의 중계되지 못할 지경이다.그동안 평균 8개 안팎의 LPGA 대회가 ‘메이저 방송사’의 전파를 탔다. 올해는 지난해 8개보다 줄어든 5개 대회가 ‘메이저 방송사’에 중계된다. 그나마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US 여자 오픈과 영국왕립골프협회(R&A)가 주최하는 브리티시 여자 오픈을 빼면 나비스코 챔피언십과 스테이트 팜 클래식, 투어 챔피언십 3개 대회만이 LPGA의 관할이다. 이마저 내년에는 US 여자 오픈과 나비스코 챔피언십, 투어 챔피언십 등 3개 대회로 축소될 전망이다.중계권은 보통 대회 주최 측이 직접 방송사와 협상을 벌여 중계 시간을 사는 것이 관행이었다. ‘메이저 방송사’ 중계권을 따내려면 대회당 평균 1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이는 일반 대회 총상금 규모와 맞먹는 액수다.LPGA는 안팎으로 닥쳐온 위기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듯하다. 부랴부랴 스폰서들을 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일단 대회 주최 측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방안도 찾고 있다. 대회 주최 측은 일반적으로 총상금의 2∼3배에 해당하는 운영 경비를 써야 한다. 여기에 대회 인증료(sanctioning fee) 10만 달러, 스코어링 시스템 운영비 5만 달러, 프로암 비용 1만 달러 등 LPGA 측에 내는 돈도 만만치 않다. LPGA는 당초 내년부터 스코어링 시스템 운영비를 5만 달러가량 올린다고 발표했다가 최근에 취소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대회 장소 곳곳에 설치하던 11개의 대형 스코어링 스크린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티박스와 그린 주변에 TV 크기의 자그마한 스크린만 설치할 방침이다.선수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마케팅 교육도 시작했다. LPGA는 미켈롭 울트라 오픈 대회 직전인 5월 2일 대회장인 버지니아 주 윌리엄스버그의 킹스밀 리조트&스파에서 ‘선수 간담회(mandatory player summit)’를 열었다.첫날에는 캐롤리 비벤스 커미셔너를 비롯해 돈 허드슨 이사회 의장과 미셸 엘리스 회장 등 LPGA 거물급 인사들이 총출동해 선수들에게 마케팅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LPGA 향후 계획을 전달했다.다음날에는 스포츠 산업 종사자들과 은퇴 선수들이 스포츠 마케팅 매니지먼트와 LPGA 역사에 대한 교육을 주제로 모임을 이끌었다.LPGA는 지난 2002년 가진 선수 간담회에서 ‘5대 실천 과제’를 선정한 바 있다. 당시 ‘실행(performance), 접근성(approachability), 열정(passion), 외양(appearance), 연관성(relevance)’ 등을 정해 LPGA 마케팅 전략의 시금석으로 삼았다.지난해 투어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 ‘영어 사용 의무화’라는 카드를 빼들었다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백기를 들었던 LPGA가 ‘경제 교육’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마이애미(미국)=한은구·한국경제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