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홍종구
최근 시청률 상한가를 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내조의 여왕’.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에 맞춰 드라마 분위기를 한층 돋우는 삽입곡들도 톡톡한 인기 몰이를 하는 중이다. 그 가운데 유독 반가운 곡이 있으니 바로 1990년대 초반 거리의 스피커를 뜨겁게 달군 그룹 ‘노이즈’의 ‘너에게 원한 것’이 그것. 삽입곡과의 해후로 ‘노이즈’ 멤버들의 현재가 궁금해졌다. 그룹의 보컬을 담당했던 홍종구가 미용 사업으로 중국에 도전장을 던질 것이란 소식에 그를 먼저 만났다.1998년 6집 앨범을 끝으로 가수로서는 마침표를 찍었던 ‘노이즈’. 보컬로 활동했던 홍종구(38)는 ‘은퇴’했다지만 연예계와의 인연을 끊지 않고 있었다. 연예 기획사인 ‘메이저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지난 11년간 ‘전공 분야’인 가수 음반 제작과 함께 연기자 매니지먼트 구력이 상당하다.“사실은 가수 활동할 때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했어요. 1995년에 ‘아이엠’이라는 기획사를 차렸는데 당시 3~4명의 신인 연기자가 소속돼 있었죠. 그 당시 가수들은 그나마 기획사의 매니지먼트가 체계화돼 가고 있는 시점이어서 어느 정도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어요. 하지만 연기자들에 대한 매니지먼트는 거의 체계화돼 있지 못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연기자 기획사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1년 반 만에 문을 닫았죠.(웃음)”하지만 그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1998년 은퇴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 메이저엔터테인먼트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 두 번째 라운드에 진입하게 된다. 당시 자본금은 1억 원. 톱스타 고수를 배출해 내기도 했다. 연기자 황수정과 뮤지컬 남경주 등도 ‘메이저’를 거쳐 간 스타들이다.“처음에는 조그만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어 신인 연기자들을 위한 연기 수업 위주로 했어요. 가수 한 팀도 데뷔 준비 중이었는데, 그 음반은 성공하지 못했어요. 가장 두각을 나타낸 연기자가 고수였는데 2006년에 군에 입대하면서 계약 관계가 정리됐죠.(웃음) 주변에서는 잘하는 것 놔두고 왜 연기자를 데리고 모험을 하느냐고 했지만 사실 음반은 어려서부터 해 오던 일이고 자다 일어나서도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거든요. 언제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었죠.”메이저엔터테인먼트의 역사도 어느새 11년. ‘잘나가던’ 가수 홍종구의 지난 11년간 손익분기점은 언제였을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몇이나 잡았을지 궁금했다.“은퇴 후 제작한 음반이 6장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절반은 출시도 못하고 접었어요. 예술성과 대중성을 두고 스스로에게 채우는 족쇄 때문이죠. 음악을 만들어 놓고 너무 대중적이어도 버리고, 너무 예술적이어도 버리게 되거든요.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통한 경험으로 또 다른 용기를 낼 수 있었죠.”스타를 만들어도 봤지만 그보다 더 혹독한 실패가 거듭되면서 그가 눈을 돌린 곳은 공연 및 영화 제작이었다. 2006년 이후 꾸준히 제작 분야에 집중한 결과 CJ엔터테인먼트의 투자를 받아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뮤지컬 1호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여자생활백서’라는 작품을 뮤지컬로 각색 중이에요. 소극장용 작품인데 8월쯤에 캐스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우연히 선물 받은 책을 읽고 난 뒤 ‘20~40대 여자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철학이 남자들과 어떻게 다를까’ 하는 호기심에서 출발했어요. 이 공연을 통해 여성 관객들이 ‘이게 여자다’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장자연 사건’으로 연예계가 떠들썩해지면서 최근 홍종구 대표의 스케줄은 빽빽해졌다. 몇 해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X-파일’ 유출 사건 이후 연기자들의 제대로 된 권리 보호를 위해 2년 전 발족된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협회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일들이 그의 스케줄에 추가됐기 때문. 현재 활동 중인 20~30대 A급 배우를 소속 연예인으로 두고 있는 기획사 50여 곳이 등록된 협회의 부회장으로, 그는 요즘 기획사와 연예인 간의 표준계약서 작성,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과 공동 주관으로 매니저 교육과정 이수자들에게 발급될 매니저 ID 카드 준비 작업 등으로 분주하다.그런데 동분서주하는 홍 대표의 스케줄에 중국행 출장이 잦다는 얘기가 있었다. 한류의 바람이 아직도 잦아들지 않은 것일까.“중국 산둥성과 칭다오, 옌타이 지역을 주축으로 미용실 프랜차이즈 사업과 화장품 브랜드 론칭을 준비 중이에요. 옌타이에서 사업하는 친구가 상하이나 베이징에 미용 사업이 붐을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제안했죠. 사실 저도 미용 사업 쪽으로 관심이 있던 차에 4~5개월가량 직접 중국과 서울을 오가며 시장조사를 한 결과 확신이 섰죠.”베이징과 상하이에 상주, 성공한 한국의 미용 브랜드들의 파워를 실감했고 대도시의 열풍이 곧 지방이랄 수 있는 산둥성과 칭다오, 옌타이로 옮겨갈 것을 짐작했다. 이제 막 펌(파마)을 하기 시작한 옌타이 지역의 여성들은 그에게 둘도 없는 미래의 고객들이다.“옌타이 지역 여성 노동자들 급여가 15만~20만 원 정도인데 10만~15만 원 하는 펌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업을 제안한 친구 역시 옌타이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직원만 300명이 넘어요. 제가 직접 가서 물어봤는데 미용 관련 소비에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했더라고요. 제가 본 옌타이는 미용 사업 측면으로 볼 때 태동기에 놓여 있어요. 압구정이나 청담동 미용실에서 공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생각입니다.”미용실 1호점은 이르면 올해 말 옌타이 지역에서 자리를 틀 예정. 230㎡(옛 70여 평) 규모로 웨딩 사업을 겸하게 된다. 서비스의 퀄리티를 위해 수석 디자이너는 한국에서 ‘모셔 갈’ 것이라고. 미용실 프랜차이즈 추진과 함께 그는 화장품 브랜드 중국 론칭을 준비 중이다. “미용실과 같은 브랜드명을 가져가는 전략이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No”라고 답변했다.“한국 미용실 프랜차이즈들이 중국에 들어가 같은 브랜드명으로 화장품을 판매하면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예를 들어 미용실 이름이 ‘노이즈’인데 그걸 화장품 이름으로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소비자 마음속에 ‘노이즈’는 ‘헤어’로 각인돼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화장품은 다른 이름으로 전문화된 브랜드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 맞는다고 봅니다. 저가 화장품으로 중국 전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한국 사람이 만든 ‘카라카라’라는 브랜드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중이에요.”그는 현재 한국에 성공적으로 론칭한 홍콩 화장품 브랜드와 중국 진출을 구상 중이다. 다음달에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산둥성을 출발로 시장을 개척해 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중국에서 떼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어요.(웃음) 최선을 다하고 나서도 안 되는 일은 과감히 포기하는 편이거든요. 실패한 과거와 목표가 있는 현재가 잘 어우러지면 밝은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궁극적인 목표는 아트스쿨 설립이다. 연기자와 뮤지션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의 성공적인 출발을 위해 사업가 홍종구의 오늘은 어제까지와는 또 다른 경험과 목표로 채워지고 있다.약력: 1971년생. 1993년 4인조 그룹 ‘노이즈’ 로 데뷔. 1집 ‘너에게 원한 건’이 큰 인기를 모으면서 1990년대 초반 아이돌 스타로 부상. 6집 앨범을 끝으로 1998년 그룹 해체와 동시에 은퇴. 이후 연예 기획사 메이저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며 사업가로 변신. 현재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부회장.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