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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꿎은 돼지가 주범인 것처럼 속단됐다. 전 세계를 한바탕 뒤흔든 신종 인플루엔자의 공포는 그렇게 시작됐다. 가뜩이나 경제도 어려운 판에 국내외 돼지 축산 농가와 유통업, 항공 여행업 등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다. 이 바이러스의 파장으로 세계경제가 본격적으로 위축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정부 고위직 공무원들도 잇달아 우려를 표시했다. 제약과 바이오산업 주가가 상승세를 타기도 했던 것은 작은 반사이익이었던 셈이다. 각국의 비상 대응으로 한풀 꺾인 상황에서도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무총장까지 나서 “수개월 내 강력하고 위협적인 재난이 낙칠 수도 있다”며 거듭 경고했다. 홍콩에서는 의심 환자가 나오자 호텔 건물을 통째로 출입 차단했고 영국에서는 감염된 학생이 나오자 해당 학교를 폐쇄한 일도 있었다. 결코 작지 않은 혼란이었다.신종 인플루엔자는 발병 지역도 다양했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를 바로 휩쓸었고 유럽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환자가 나왔다. 한국과 홍콩에서 환자가 나왔으니 아시아도 해당됐고 뉴질랜드 중동 지역에서도 발병했다. 가히 전 세계적이라고 할 만하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위험도가 통상적인 독감 수준이라든가, 미국의 경우만 해도 따로 통계를 내지 않아서 그렇지 각종 바이러스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이번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보다 훨씬 많다든가 하는 분석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나쁜 세계경제에 미친 신종 인플루엔자의 영향은 작다고 보기 어려웠다.말 그대로 지구촌이 된 현대 세계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건이다. 불과 하루면 지구촌 어디라도 도달하고 대륙 간에도 주요 도시끼리는 하루에도 수십 편 이상의 항공기가 수시로 여행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고 있으니 전염성 있는 질환이라면 순식간에 퍼질 수밖에 없다.WHO와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도 작지 않았지만 각국이 같은 대응 매뉴얼에 따라 착착 조치를 해나가는 것도 이런 추세에 맞춰보면 당연한 일이다.문제는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질병에 따른 경제 영향 보고서는 인용하기에도 무섭다. 2003년 홍콩에서 발생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발생 때도 아시아 지역의 경제 피해는 400억 달러에 달했다는 집계가 있다.이번에는 피해가 얼마나 될 것인가. 조만간 분석치가 나올 것이다. 2003년 4월 국제 항공 여객이 전년 동기에 비해 19%가량 줄었고 홍콩은 당시 방문자가 절반으로 떨어졌었다. 이번에는? 이 모든 게 세계화의 덫인가. 국가 간 국경이 높고 세계가 단일 시장이 아니라면 일어나지 않을 현상일지 모른다. 국경선이 없어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시사점은 세계경제가 이런 돌발 변수에 어떤 충격을 받는가이다.이런 와중에 훤히 열린 세계시장을 향해 적극 달려 나간 일도 있다. 악성 인플루엔자의 기승과 반대로 지구촌 단일경제의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한식 산업의 세계화를 위해 정부와 민간 공동으로 발족한 ‘한식 세계화 추진단’이 그런 사례다. 우리 고유의 음식을 세계시장에 내놓고 상업화해 보자는 한식의 세계화 운동이 처음 시도된 일은 아니다. 수없는 논의와 시도가 있었지만 유야무야된 것이 이런 유의 운동이요, 주장이다.최근에는 떡볶이를 세계인의 입맛에 선보여 한국의 대표적 ‘맛거리’로 성장시키자는 논의가 있었고 연구소까지 세워졌다. 성공하자면 우리 문화를 팔아야 한다.맥도날드와 같은 햄버거 유만 해도 이제 우리 청소년들에겐 파전이나 빈대떡보다 더 친근하고 편한 음식이 됐다. 예전에는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신분이 달랐다. 인종의 구별과 민족의 차별성도 먹는 것과 먹는 방식에 따라 크게 나누어졌다. 그런데 지금은 대개 비슷한 음식을 먹고 그 과정에서 다양함을 추구한다. 이 때문에 신분도, 국적도 희미해져 가고 인종과 민족의 차이점도 대수롭지 않아지는 것은 지구촌 시대 우리의 자화상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에 함께 두려워하고 공동 대응책을 세우는 것, 그 와중에 세계시장에 보급형 한식을 내놓는 것, 그 밑의 큰 맥락은 같다. 세계화에는 덕이 있으니 이를 최대한 추구하되 화도 있으니 그를 조심할 일이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