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첫 ‘우주 발사체’ 쏘아올릴 나로우주센터

‘나로우주센터 35km.’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고흥군으로 이어지는 15번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이색적인 이정표가 눈길을 잡아끈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회관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앙증맞은 우주선 그림과 그 밑에 써놓은 글귀는 국내 첫 자력 위성 발사를 앞두고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주민들이 직접 그렸을 것이 분명한 ‘벽화’에는 고흥 주민의 흥분과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게 우주로 통한다. 휴게소도 ‘우주휴게소’, PC방도 ‘우주PC방’이다.나로우주센터는 반도 형태로 툭 튀어나온 고흥에서도 남쪽 끝자락에 있다. 먼저 연륙교인 나로1대교를 통과해 내나로도로 들어간 다음 연도교인 나로2대교를 또 한 번 건너야 비로소 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닿는다. 고흥읍에서 우주센터까지 차로 40여 분 거리다. 내나로도와 외나로도를 연결하는 나로2대교에는 양쪽 난간에 만국기가 게양돼 있다. 자세히 보니 지금까지 인공위성 자력 발사에 성공한 9개 나라의 깃발을 차례대로 걸어 놓은 것이다. 맨 끝에는 태극기가 당당하게 휘날리고 있다.오는 7월 말 나로우주센터에서 국내 첫 우주 발사체(KSLV-Ⅰ)가 과학기술위성2호를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리면 한국은 10번째 ‘스페이스 클럽’ 국가가 된다. 지난 4월 초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발사체 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더욱 뜨겁다. 하지만 첫 우주 발사체 발사의 성공 확률은 30%에 못 미친다. 일본도 4번에 걸친 도전 끝에 성공했을 정도다.우주센터는 외나로도 남단 마치산과 봉래산 뒤쪽에 숨은 듯 자리해 있다. 495만7500㎡(옛 150만 평) 부지에 발사대와 발사통제동, 조립시험동, 추적레이더동 등 7개 시설이 흩어져 있어 250명이 넘는 연구진이 일하고 있어도 좀처럼 마주치기 어렵다. 우주센터의 핵심 시설은 발사대다. 해발 380m 마치산 중턱을 깎아 만든 발사대에 서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탁 트인 풍광이 발밑에 펼쳐진다.발사대에는 이미 높이 33.5m인 KSLV-Ⅰ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발사 전 지상 장비와 발사 준비 과정을 인증하는데 쓰이는 실제 발사체와 똑같은 지상검증용기체(GTV, Ground Test Vehicle)다. 실제 발사할 비행 모델(FM, Flight Model)은 6월 초 러시아에서 들여온다. 항공기로 김해까지 수송한 다음 김해항에서 바지선에 발사체 운반용 차량까지 통째로 싣고 외나로도로 옮겨 온다.우주센터를 방문한 4월 29일, 발사대에서는 연료 주입 시험이 한창이다. 이철형 한국항공우준연구원 나로우주센터 체계관리팀장은 “발사 14시간 전부터 연료와 산화제 주입이 시작된다”며 “기상 악화로 발사가 연기되면 다시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넣고 빼는 시험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사체의 주연료는 등유의 일종인 ‘케로신’이다. 여기에 산화제로 액체산소가 추가된다. 지상 100km를 넘으면 산소가 없어 따로 산화제를 공급해 줘야만 연소가 이뤄진다. 발사체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게 바로 이 산화제다. KSLV-Ⅰ의 경우 산화제 탱크가 발사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발사대는 발사체 ‘맞춤형’이다. 발사체별 특성에 맞춰 건설되기 때문에 한 번 발사하면 재사용이 어렵다. 발사대 지하에는 총 140km 길이의 각종 통신케이블이 지나고 연료와 산화제 주입 설비, 화염 냉각 시스템 등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다. 나로우주센터는 ‘러시아식 발사대’를 채택하고 있다. 조립된 발사체를 운반해 와 이렉터(Erector)로 세워 발사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 북한은 철골 구조 발사대를 먼저 세워 놓고 거기에서 조립까지 하는 방식이다. 실제 발사 때 연료 주입이 끝나면 발사대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이후 모든 과정은 통제실에서 원격으로 이뤄진다. 발사체의 ‘탯줄’과 같은 케이블 마스트가 마지막으로 분리되면서 KSLV-Ⅰ은 하늘로 치솟게 된다.이 팀장은 “발사 성공의 가장 큰 변수는 기상”이라고 말했다. 첫 발사체 성공 확률은 30% 미만이지만 이는 과거 우주개발 초기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요즘 상용화된 우주 발사체의 성공률은 90%가 넘는다. 이 팀장은 “전체 연구진이 성공을 위해 밤잠을 잊고 있다”고 전했다.현재 KSLV-Ⅰ의 발사 예정일은 7월 30일 ±5일이다. 기상 등을 고려해 최적의 날짜를 결정하게 된다. 우선 바람은 순간 초속 12m이하여야 한다. 또 발사대를 기준으로 반경 18km 내에 낙뢰가 없어야 한다. 남해안은 유난히 여름철 낙뢰가 많은 곳이라 해남에서 보성까지 낙뢰 감시 시스템 설치했으며 신축한 고흥 기상 레이더도 가동에 들어갔다.발사대를 떠난 KSLV-Ⅰ은 수직 상승 후 정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가게 된다. 일본 오키나와를 지나 필리핀 인근까지 접근한다. 발사 3분 48초가 지나면 발사체 1단이 분리돼 필리핀과 남태평양 키리바시공화국 사이 공해상에 떨어지게 된다. 궤도에 진입한 과학기술위성2호는 발사 13시간 후 대전 위성국과 첫 교신한다.발사의 전 과정은 발사대에서 직선으로 2km 떨어진 발사통제동(지하 1층, 지상 3층)에서 원격으로 조종된다. 이 건물 1층에는 182㎡(옛 55평) 넓이의 발사통제지휘소가 들어서 있다. 발사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미션 상태 전시 시스템(MSOS)’에 집중돼 돌아가는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위성을 실은 발사체는 나로우주센터 추적 레이더와 제주 추적소, 필리핀 해상에 파견되는 해경 ‘3002함’을 통해 3각 추적을 하게 된다.KSLV-Ⅰ은 한국형 발사체로는 아직 ‘미완’이다. 2단으로 구성된 발사체 가운데 위성을 탑재하는 2단은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했지만 1단은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우주센터는 러시아서 받은 설계도를 토대로 국내 기술로 건설했다. 박정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체계사업단장은 “발사장 등 인프라 구축에서 실제 발사까지 직접 경험을 통해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라며 “우주개발에 필요한 체계 기술을 대부분 확보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KSLV-Ⅰ 발사는 두 차례 이뤄진다. 7월 말 발사에 성공하면 9개월 후 똑같은 형태로 또 한 번 발사가 이뤄진다. 경험 축적과 기술 확보를 위한 것이다.100% 한국형 발사체(KSLV-Ⅱ) 개발을 위한 연구도 이미 시작됐다. 대전 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시험동에는 KSLV-Ⅰ과 똑같은 형태의 발사체가 보관돼 있다. 1단을 구성하는 연료탱크와 산화제 탱크까지 외형상 큰 차이가 없다. 위성을 우주 궤도에 올려야 하는 발사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가속도를 낼 수 있느냐다. 발사체 탱크의 경우 알루미늄합금을 뼈대만 남기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정교하게 파내는 기술로 무게를 줄인다. 국내 업체인 두원중공업이 이런 방식으로 발사체 연료탱크와 산화제 탱크를 만들어냈다. 박 단장은 “2017년까지 예정된 KSLV-Ⅱ 개발을 위한 선행 연구”라며 “독자 기술 확보는 자력으로 우주개발에 나서려면 어렵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전”이라고 말했다.고흥·대전=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