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역설
장자의 ‘장자’서양 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라고 화이트헤드는 말했다.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은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의 각주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플라톤이나 공자, 장자가 다 말해버렸다. 그 이후에는 다만 이들의 기록에 다시 주석을 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다시 지혜를 얻고 깨닫는다. 고전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장자’를 읽으면 무엇보다 속 좁은 인간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견성(見性)일까. ‘메추라기만한 사람’ ‘쑥 같은 마음(蓬之心)’ ‘송나라 모자 장수’ ‘송나라의 손 트는데 쓰는 약을 만드는 사람’ 등은 모두 속이 좁은 사람이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 그릇이 작은 사람을 일컫는다. 이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장자가 본 세상의 풍경은 지금의 풍경이기도 하다.장자는 사람이 이를 수 있는 자유의 단계를 ‘상식인-송영자-열자-지인’의 순으로 분류한다. 첫째가 상식인이다. 메추라기처럼 시야가 좁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기껏해야 과장이나 부장, 이사 혹은 장관 따위 사다리를 하나하나 오르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표로 삼고 일로매진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인간의 한계 밖을 넘보는 것은 부질없는 짓으로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자기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그런 가능성을 말하는 사람이나 실현하려는 사람들, 실현한 사람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처럼 고위직에 오르지만 돌연 병에 걸려 죽기도 한다.둘째는 송영자(宋榮子)같은 사람이다. 송영자는 송나라 사상가로, 평화주의자이며 칭찬이나 모욕에 개의치 않고 초연했다고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이 단계는 아직도 칭찬 받으려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분별의 마음이 있는 상태다(장자는 분별심보다 초월심을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본다). 이 단계까지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다.셋째는 열자(列子)와 같은 사람이다. 바람을 타고 올라가 마음대로 노닐다가 열닷새가 지나 돌아왔다. 행복에 연연하지 않고 초연하다. 그러나 아직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을 만큼 초연하지 못하다. 자유자재로 노닐다가 15일이 지나 돌아오기 위해서는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지인(至人), 신인, 성인의 단계다. 자신에 집착하지 않고 공적에 무관하고 명예를 탐내지 않는다. 즉, 망기(忘己) 망공(忘功) 망명(忘名)을 경험하는 절대 자유의 단계다.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식인’의 단계에 머무르고 극히 일부만이 그나마 ‘송영자’나 ‘열자’ 단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밥벌이를 하다 보면 누구나 메추리 같은 시야와 쑥 같은 마음을 지닐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인, 신인은 ‘자칭’은 많지만 그 누가 도달할 수 있을까.다음은 ‘장자(오강남 옮김, 현암사 편)’에서 인상 깊은 원문 ‘베스트 10(호접지몽은 너무도 유명해 제외)’을 그대로 옮긴다. 주석(註釋)은 때로 자유로운 해석을 방해하므로.=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虛舟) 하나가 떠내려 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다. 그 사람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떠내려 오던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가지 못하겠느냐고 한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결국 세 번째 소리치는데, 그땐 반드시 욕설이 따르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는가?= 송나라 사람이 예식 때 쓰는 모자를 잔뜩 가지고 월나라로 갔다. 월나라 사람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몸에는 문신을 해서 모자가 필요 없었다.=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나라 임금이 준 큰 박씨를 심었더니 다섯 섬들이 박이 열렸다. 물을 채웠더니 무거워서 들 수 없었다. 쪼개서 바가지를 만들었더니 깊이가 없이 납작해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고 달리 쓸모가 없어 깨뜨려버렸다.장자가 대답했다. “자네는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약을 손에 바르고 무명을 빨아서 바래는 일을 대대로 했다. 지나가던 길손이 그 말을 듣고 금 백 냥을 줄 테니 그 비방을 팔라고 했다. 그 사람은 가족을 모아놓고 ‘우리가 대대로 무명을 빨아 바래 왔지만 기껏 금 몇 냥밖에 만져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약의 비방을 백 냥에 사겠다고 하니 팝시다’고 했다.길손은 오나라 왕에게 가 그 약의 효험을 설명했다. 마침 월왕이 싸움을 걸어오자 오왕은 그 길손으로 수군대장을 삼았다. 그 약으로 수군들의 손이 트지 않도록 할 수 있었기에 겨울에 수전을 벌여 월나라를 대패시켰다. 왕은 그 사람에게 땅을 떼어 주고 영주로 삼았다.”손이 트는 것을 막는 약은 한 가지인데, 한쪽은 그것으로 영주가 되고 다른 쪽은 무명 빠는 일밖에 못했으니 똑같은 것을 가지고도 쓰기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는 게 아닌가. 자네는 다섯 섬들이 박으로 큰 술통을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놓고 즐길 생각을 하지 못하고 깊이가 너무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고 걱정했단 말인가. 자넨 아직도 작은 일만 생각하는 ‘쑥 같은 마음(蓬之心: 좀생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네 그려.= 가까운 숲으로 놀러 가는 사람은 세끼 먹을 것만 가지고 가도 돌아올 때까지 배고픈 줄 모르지만, 백리 길을 가는 사람은 하룻밤 지낼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석 달 먹을 양식을 준비해야 한다.= 큰 꾀는 느긋하고 작은 꾀는 좀스럽고, 큰 말은 담백하고 작은 말은 시끄럽다.= 제(포정)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삼년이 지나자 통째인 소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神)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은 쉬고, 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하늘이 낸 결을 따라 큰 틈바귀에 칼을 밀어 넣고 큰 구멍에 칼을 댑니다. 이렇게 정말 본래의 모습에 따를 뿐 아직 인대나 건(腱)을 베어 본 일이 없습니다.훌륭한 요리사는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요리사는 달마다 칼을 바꿉니다.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19년 동안 이 칼로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 칼날은 이제 막 숫돌에 갈려 나온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뼈마디에 들어가니 텅 빈 것처럼 넓어 칼이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귀히 여기는 것은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광주리로 말똥을 받고 대합 껍데기로 말 오줌을 받을 정도였다. 말 등에 모기가 앉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말 등을 때렸다. 놀란 말이 재갈을 벗고 야단하는 바람에 말을 사랑하던 사람의 머리를 깨고 가슴을 받았다.= 미녀 여희(麗姬)는 애(艾)라는 변경지기 딸이었네. 진(晋)나라로 데려올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착하다는 일 하더라도 이름이 날 정도로는 하지 말고, 나쁘다는 일 하더라도 벌 받을 정도로는 하지 마십시오. 오직 중도를 따라 그것을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몸을 보전할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어버이를 공양할 수 있고. 주어진 나이를 다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장자가 가난하여 감하후에게 양식을 꾸러 갔다. 감하후가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봉토에서 세금을 걷을 터인데 그러면 거기서 돈 삼백을 꾸어 드리겠습니다. 괜찮겠습니까?”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