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그야말로 몸조심, 술조심하고 있다. 소주 한잔도 제대로 못하는 분위기다.”청와대 한 참모의 말이다. 요즘 청와대는 초긴장 상태다. 친한 친구들과 소주, 맥주 한잔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다.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100일간 전방위 감찰 활동이 진행 중이다.이유는 최근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에 전·현직 참모들이 잇달아 연루되면서부터다. 이른바 ‘박연차 파문’으로 추부길 전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된데 이어 이종찬 전 민정수석이 구설에 올랐고 박병원 전 경제수석도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직 시 컨설팅 용역 업체를 부당하게 선정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여기에 청와대 직원의 성매매 혐의까지 겹쳤다. 이러다간 자칫 기업으로부터 돈 한 푼 받지 않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란 이명박 대통령의 자부심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집권 2년차 비리증후군’에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와대가 뒤늦게 강력한 기강 다잡기에 나선 것은 이 때문이다. 일선 정부 부처에도 부적절한 처신을 강력하게 조치하겠다는 지침이 내려가면서 공무원들의 골프장 유흥주점 출입이 금지됐다.청와대는 특히 도덕성에 치명상을 안긴 성매매 혐의 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저녁 청와대 행정관 A 씨와 B 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방송통신위원회 직원, 업계 관계자와 술자리에 동석하면서 발단이 됐다. A 행정관은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받은 뒤 모텔에서 2차 성 접대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 행정관은 술만 마신 후 성 접대는 받지 않고 집으로 갔다.이 사실이 청와대에 보고되면서 내부적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 대통령은 3월 27일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강력한 질타를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근무자는 앞선 능력과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며 윤리·도덕적 측면에서도 한 점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여러분은) 다른 부처의 모범이 돼야 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자세가 업무 수행의 구심점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이때까지만 해도 청와대 직원의 성매매 사실이 외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터라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이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정확히 꿰뚫지 못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로비 사건에 현 정부에서 청와대 참모를 지낸 인사들이 연루된 것과 관련해 정신무장을 촉구한 것 정도로 파악했다.청와대는 수차례 대책회의를 가졌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국민 여러분께 실망과 참담함을 안겨드린 점, 깊이 사과 드린다”고 한데 이어 고강도 자정 조치에 들어갔다. 정동기 민정수석은 “집권 2년차에 나타날 수 있는 기강 해이를 막기 위해 청와대 직원들의 근무 윤리 기준을 강화하고 일정 기간 내부 윤리 감찰도 병행하겠다”고 고삐를 조였다. 룸살롱 출입 금지는 물론 여성이 나오는 술자리엔 가지 말라는 조치로 이어졌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감찰은 7월까지 계속된다. 정정길 실장의 지시에 따라 민정수석실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감찰팀도 기존 인원의 3배 수준인 20여 명으로 늘렸다. 감찰 범위는 기본적인 복무 태도는 물론 부적절한 민원과 청탁, 업무와 관련 있는 일선 공무원 및 업자들과의 술자리, 금품 수수 가능성 등 공직자 윤리강령에 위반되는 모든 비위 행위다. 특히 감찰팀 일부는 청와대 외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집권 2년차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대체적으로 집권 1년차에 국정 운영 청사진을 마련하느라 숨 가쁘게 보내고 나면 2년차에 다소 맥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집권 2년차엔 권력의 맛을 알아갈 때다.1년간의 국정 운영 경험으로 돈줄과 권력의 흐름이 파악되는 시기라는 얘기다. 권력을 악용해 이익을 취하려는 ‘유혹’의 텃밭이 형성되는 셈이다. 주변에서는 권력을 활용하려는 세력들이 붙는 게 과거의 예다.역대 정부마다 부패 척결을 외쳤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정황 때문이다. ‘문민정부와 개혁’을 내세웠던 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 비리를 경계해 온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은 집권 2년차 때 측근들의 비리로 곤욕을 치렀다. 이것이 조기 레임덕에 빠지는 한 요인이 된 것은 물론이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