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법칙①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인간의 신체 가운데 눈이 가장 사치스럽다는 말이 있다. 명품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눈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덧없어지고 새로운 욕망을 다시 찾아 나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을 ‘잉여쾌락’이라고 한다.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에너지이자 현대 소비사회를 유지하는 기제라고 한다. 세계적인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분석이다. 대박 상품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눈을 만족시켜야 한다.요즘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아내가 예전 남편과 간통하고 복수하고 남편의 가정을 철저하게 파탄 내 버린다’는 게 이 드라마의 요지라고 소개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충격적 일탈이다. 이 드라마에서 불륜의 시작은 역시 ‘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본다’는 의미는 다름 아닌 ‘눈으로 범한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임철규 전 연세대 교수가 쓴 ‘눈의 역사 눈의 미학’을 보면 남성의 눈은 욕망을 추구하는 힘 그 자체라고 한다. ‘눈으로 음욕을 충족한다’라는 말도 있다. 남성의 시선이 권력을 상징한다고 하는 이유다. 눈은 남성적, 폭력적, 제국주의적이라고 한다. 눈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면 그 대상을 소유해야 한다. 강간의 역사, 제국주의 역사도 여기서 비롯된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멸한 것도 금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리스신화에서는 주로 ‘눈’에 벌을 줬다. 소포클레스가 쓴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는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자라 나중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 그 죄악에 대해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자신의 눈을 뽑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신의 죄를 벌한다. 이 비극은 ‘알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결국은 파멸하게 되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 아가멤논의 아내 클라임네스트라는 남편이 그리스군 총사령관으로 트로이 전쟁에 출전한 사이 정부인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난다. 남편이 귀국하자 정부와 짜고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자 아들인 오레스테스가 누나 엘렉트라와 공모해 어머니와 그 정부를 살해해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여기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가 나왔다. 전자는 아들이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에 대해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뜻하고, 후자는 딸이 무의식적으로 어머니를 미워하고 아버지를 좋아하는 경향을 의미하게 됐다.그리스신화와 비극에는 눈과 눈의 죄악, 단죄가 자주 나온다. 오늘날 문학의 소재로 눈에서 비롯된 죄악이 많이 다뤄지고 있는 것도 그리스 비극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신화는 오비디우스(BC 43~AD 17)의 ‘변신이야기(민음사 펴냄)’로 집대성된다. 이 책은 서구 문화의 ‘바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중세 문화는 성경(기독교)과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변신이야기’는 이렇게 소개되고 있다. 그만큼 ‘변신이야기’가 서구의 원형이라는 그리스 로마시대를 총정리한 최고의 텍스트라는 얘기다. 이 책은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서구의 문학작품과 문화에 무궁한 상상과 창작의 샘을 제공해 왔다.드링크제 ‘박카스’로 우리에게 익숙한 로마어 ‘바쿠스’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주신(酒神)에 해당한다. 디오니소스에 반기를 들었다가 자신의 어머니 손에 죽임을 당한 이가 테바이의 왕 펜테우스다. 펜테우스의 비극도 다름 아닌 눈에서 비롯됐다.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을 때 제우스 편을 든 탓에 헤라에 의해 눈이 머는 형벌을 받았다. 그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펜테우스가 그의 아내의 사촌 동생인 바쿠스(그리스어로 디오니소스)신을 숭배하지 않자 어머니의 손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펜테우스는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을 믿지 않고 조롱하면서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축제 현장으로 간다.결국 그곳에서 실성한 어머니 아가베에 의해 사지를 찢기면서 죽임을 당한다. 어머니 손에 죽어가면서 펜테우스는 차라리 장님이었더라면 바쿠스의 거룩한 축제 현장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면서 자신의 눈을 원망한다. 결국 펜테우스의 ‘보고자 하는 욕망’이 파멸을 부른 것이다.= 이제 내 일은 끝났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쓴 글은 이처럼 하늘을 찌를 정도로 자부심이 가득하다. 그만큼 역사의 승자인 로마의 입장을 담았다는 자부심의 표현이 아닐까.‘변신이야기’를 보면 신화와 전설 역시 승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신화는 역사와 닮아 있다. 그리스 비극에 나오는 신화적 인물들은 대부분 소아시아에서 시작해 그리스로 넘어갔고, 다시 로마로 이어져 서양문화의 원류가 됐다. 고대 제국의 패권이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 페르시아 등 소아시아(동양)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계기로 그리스(서양)로 넘어갔다. 신화나 전설의 인물도 패권의 이동에 따라 역시 아시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갔고 다시 로마로 넘어간 것이다.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눈이 번쩍 띄는 부분이 나온다. 시리아의 전설인 티스베와 퓌라모스의 이야기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퓌라모스는 동방에서 가장 잘 생긴 총각이고 티스베는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로, 이 둘은 앞뒷집에 이웃해 살았다. 처음에는 우정이 싹트다 점차 사랑으로 변해갔다. 양가 부모들은 이들이 사귀는 것을 반대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밤에 몰래 성을 빠져나가 바빌로니아 왕의 왕릉이 있는 곳의 뽕나무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티스베가 몰래 와 기다렸다. 그런데 그만 사자 한 마리가 짐승을 잡아먹고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그곳에 나타났다. 티스베는 급히 동굴로 몸을 피하려다 너무 놀란 나머지 너울(여자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던 일종의 스카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사자는 이 너울을 보자 피로 묻은 입으로 갈가리 찢어버렸다.뒤늦게 도착한 퓌라모스는 피가 묻은 너울을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자신이 늦게 오는 바람에 티스베가 사자에게 잡혀 먹었을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리고 사자의 이빨에 물려 죽었을 티스베의 심정을 생각하고 자신도 죽어 티스베의 곁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옆구리를 찌르고 말았다. 티스베는 사자가 사라지자 동굴에서 나와 애인을 찾았다.그런데 애인이 피 묻은 너울을 잡고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티스베는 그제야 전후사정을 알아채고 울부짖었다. “당신의 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죽였군요. 죽음이 당신이 내게서 떼어 놓았지만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어요.” 티스베는 퓌라모스의 체온이 남아 있는 칼을 가슴에 안고 고꾸라졌다.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퓌라모스와 티스베의 전설과 너무도 흡사하다. 마지막 장면이 칼이 독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라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시리아의 전설에서 플롯을 훔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토마스 칼라일은 인도와 셰익스피어 둘 중에 무엇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셰익스피어는 인도와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말했다.흔히 말하는 ‘원조’로 이야기해 보면 영국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셰익스피어는 어쩌면 고대 아시아의 전설을 ‘창조적’으로 표절해 완성했기 때문이다.= 해 아래 새 것이 없나니(전도서 1:9)성경에도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는데, 비약하자면 모방하고 훔쳐 자신의 것으로 우기는 게 서구의 역사가 아닐는지. 그게 눈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은지. 힘이 있으면 자신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클린턴식 화법을 빌려 약자들에게 말한다면 “문제는 힘이야, 바보야.”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