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이북에서 월남하셨다. 함경남도에서 제법 괜찮았던 유지의 풍요로움을 등지고 이미 광복 전에 서울에 내려오셨다. 이후 아버지는 6·25전쟁과 동시에 군에 입대, 이후 30여 년간 복무하면서 자식은 물론 처가까지 두루 챙기면서 가정을 꾸려내셨다. 외할머니가 지어준 ‘차돌’이라는 별명답게 아버지는 해야 할 일 앞에서 몸을 사리는 법이 없었던 분이다. 게다가 고지식하기 이를 데 없어 공짜로 남에게서 뭔가를 받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하셨다. 덕분에 군에서 진급도 늦었고 크게 재산을 불릴 줄도 몰랐다. 1970년대 초 월남전에 다녀오고서야 번듯한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었으니 그분의 고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버지는 자신과 가족에게는 그토록 엄격했지만 타인에게 베푸는 것에 대해서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었다. 군 복무 기간 동안에도 수시로 군 주변의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방문해 작은 정성을 나누셨고 군복무 기간 이후 식품회사의 공장장을 맡으셨을 때는 조금이라도 손상돼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통조림을 모두 모아 인근의 양로원과 고아원에 가져다주셨다. 항시 용돈이 아쉬웠던 자식 입장에서 보면 서운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냥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또 어깨를 어루만져 주는 것이 바로 당신이 할 줄 아는 자식에 대한 격려와 사랑을 표시하는 방법의 전부였다.일이 곧 취미였던 당신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는 역시 술이었다. 한번 시작하면 고주망태가 되어서야 끝나는 술버릇 때문에 때로는 어머니와 식구들이 싫어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술만 취하면 참 희한한 장기를 보여주시곤 하셨다. 손으로 휘파람 소리를 멋지게 내는데, 그 소리가 거의 대금 소리와 흡사해 듣는 사람들이 감탄하곤 했었다. ‘신라의 달밤’이 18번이었지만 다양한 유행가나 타령들도 멋들어지게 이 휘파람으로 연주하곤 하셨다.아버지는 험난한 인생 역정 가운데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시지도 못했고 음악 교육과는 더 더욱 멀었던 분이었지만 월남전에 참전하시는 동안 당시 릴 테이프로 엄청난 분량의 클래식 곡들을 녹음해 귀국할 때 그 녹음기와 같이 가져오셨다. 자식들에게 명곡을 들려주시겠다는 일념으로 귀중한 휴식 시간을 쪼개어 녹음하셨을 것이 분명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 형제는 그 릴 테이프로 세계의 클래식 명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 아무런 전문 지식도 없으면서, 특별히 공연을 즐길 기회도 없었으면서 어떻게 그런 클래식 명곡들을 녹음하고 그 녹음한 기록들을 빼곡하게 기록할 수 있었는지 참으로 놀랍고 또 신기하기조차하다. 당신은 폭음이 교차하는 월남에서 그 곡들을 녹음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어떤 가치를 그 녹음 안에 같이 녹여 놓으셨을지, 아직도 저미는 가슴이 절절한 궁금증으로 차 있다.그렇게 강건하셨던 분도 퇴직하신 지 딱 1년 만에 병이 드셨고 이후 5년간 병마와 싸우다 다른 세상으로 떠나셨다. 당시 형과 누나가 모두 외국에 가 있어 내가 마지막 5년을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병마는 사람의 모양을 변하게 하고 또 나약하게 한다. 전신이 마비돼 가고 나중에는 음식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는 병마에 맞서 끝까지 의연하셨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아버지의 눈가에 언뜻언뜻 번지는 물기를 통해 당신의 고통과 회한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당신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고통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셨다. 참 대단한 고집이 아닐 수 없었다. 참으로 후회되는 것은 왜 진작 아버지의 그 많은 아픔과 담담하게 속으로만 삭이셨던 많은 것들을 알려고, 또 나누려고 하지 못했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당신을 더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더 사랑하고 더 존경하고 그 마음을 더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말이다.아버지는 참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려주셨다. 가족에 대한 무지할 정도의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 자신의 일에 대한 결벽스러울 정도의 완벽함, 그리고 조금이라도 가진 것을 나누려 하셨던 그 마음, 그리고 결코 크지 않았던 당신의 그 풍류 속의 고결함,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또 받아들이며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상대가 자식이라고 해도 늘 존중하고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셨던 그 모든 것들을. 지금도 가끔 꿈에서 아버지를 만난다.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서양사 석사, 언론학 석사, 경영대 MBA 학위를 받았다. 풀무원 홍보팀장과 옥시 마케팅 팀장, 해태제과 홍보 수석부장, 보광그룹 PDS 기획이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