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성공 신화의 비밀
“요즘 초등학생들이 닌텐도 게임기를 많이 가지고 있더라. 우리도 이런 것들을 개발해 볼 수 없겠나.”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 2일 지식경제부 회의에서 발언한 이 한마디로 일본의 게임 회사 닌텐도가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닌텐도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회사 중 하나다. 세계 동시 불황으로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죽을 쑤고 있는 가운데 유독 닌텐도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닌텐도는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매출액 1조8200억 엔(약 27조3000억 원), 영업이익 5300억 엔을 달성할 전망이다. 전년보다 각각 10%씩 늘어난 규모다. 예상대로라면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일본 상장사 중 이익 규모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닌텐도는 2004년 이후 3년간도 매출액은 3.2배, 영업이익은 4.4배로 불어날 정도로 성장 가도를 질주했다.이 회사가 세계 동시 불황에도 불구하고 성공 신화를 일굴 수 있었던 건 2004년 내놓은 게임기 닌텐도DS와 2006년 선보인 비디오 게임기 위(Wii)가 대히트했기 때문이다. DS와 위는 작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각각 9622만 대와 4496만 대가 팔렸다. 불황으로 소비가 위축됐던 작년 4~12월 중에도 위는 전 세계에서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한 2052만 대, DS는 5% 늘어난 2562만 대가 팔렸다. 하루에 위는 7만6000대, DS는 9만5000대씩 판매된 셈이다.닌텐도가 DS나 위와 같은 세계적 히트 상품을 연달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얼까. 교토 본사에서 만난 닌텐도 개발본부장 미야모토 시게루(56) 전무는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의 결과”라고 말했다. “10여 년 전부터 게임 인구가 줄면서 회사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위기감에 휩싸여 그동안 게임을 하지 않던 어른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탄생한 게 터치펜으로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 DS, 온가족이 거실에서 즐길 수 있는 위다.”그는 “게임기는 생필품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며 “그런 위기의식이 혁신적 제품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객으로부터 버림 받지 않기 위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 세계적 히트 상품의 배경이란 얘기다.이 때문에 닌텐도에선 혁신의 출발점인 게임 개발자가 늘 중심이다. 이와타 사토루(50) 사장을 포함해 경영진 6명 중 4명이 게임 개발자 출신. 본사 직원 1465명 중 1000여 명이 개발 인력이다. 20년 이상 게임만 개발해 온 40~50대의 ‘게임 장인(匠人)’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철저한 도제 방식으로 젊은 개발자들에게 경륜에 녹아 있는 노하우를 전수한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지식이 창의적 발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닌텐도는 앞으로도 ‘가족 영화’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전략이다. “닌텐도의 고객은 5세부터 95세까지의 모든 사람이다. 지금같은 불황에도 사지 않을 수 없는 게임을 만들 것이다.” 닌텐도DS와 위의 개발 주역으로 ‘게임계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미야모토 전무의 목표다. 미야모토 전무와의 인터뷰를 정리한다.창업자 3세인 야마우치 히로시 상담역은 ‘닌텐도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따라서 수익은 모두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투자한다’고 말해 왔다. 그는 또 ‘엔터테인먼트는 독특한 분야이기 때문에 다른 회사를 쫓아가서는 안 되고 독창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닌텐도의 게임 개발자들은 그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따라왔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경영자의 요구가 사원들의 창의력을 키웠다. 이걸 ‘혁신’이라고 표현해도 괜찮다.무엇보다 닌텐도의 현재 경영진 6명 중 사장을 포함해 4명이 게임 개발자 출신이다. 이 때문에 회사의 의사결정이 개발자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영진이 개발자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현장감 있고 신속한 판단도 가능하다. 신입 개발자들에 대한 특별한 교육 시스템 같은 것은 없다. 닌텐도에서 개발자 선후배 간 관계는 기본적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다. 후배는 선배로부터 일을 조금씩 배우고 익히면서 경력을 쌓고, 자기가 선배가 되면 후배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도록 돼 있다.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게임 개발 분야에서 경쟁력이 높아진 것이다.그렇지 않다. 조직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굉장히 원만하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고객들에게 제대로 된 게임을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은 엄격하지만 인간적 관계는 친밀하다. 모두가 게임을 개발할 때 ‘고객의 눈으로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약 1500명 사원 중 1000명 정도가 개발자다. 금년 신입 사원 102명 중에서는 80명 정도가 개발 인원이다. 전체 사원의 70% 정도가 개발자라고 보면 된다. 닌테도는 본사 이외에도 외부 협력사 직원 1000명 정도가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따라서 모두 2000명 정도가 게임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셈이다.40~50대의 개발자들도 많다. 본사의 개발 인력 중 40대는 30명 정도다. 나는 1977년에 입사했는데, 당시 나와 함께 입사해 현재 50대인 개발자 10명도 모두 닌텐도에 근무하고 있다.“10년 전까지만 해도 닌텐도는 온라인 게임에 소극적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닌텐도가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시엔 비즈니스로서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라인 게임 등에 진출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다만 닌텐도는 PC를 통한 인터넷상에서의 가상현실 게임과 같은 좁은 의미의 온라인 게임에 관심 있는 게 아니다. 닌텐도가 흥미를 가진 부분은 네트워크 게임이다. 예컨대 위와 DS도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러면 재미가 배가된다.한국의 인구를 감안할 때 최근 닌텐도DS 등의 판매량에 무척 만족하고 있다. PC를 통한 온라인 게임이 유행해 DS와 같은 휴대용 게임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DS는 발매 1년 만에 100만 대, 2년째에 200만 대 판매 기록을 세웠다.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놀이’는 나라에 관계없이 통할 수 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즐겁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제품을 만든다면 세계 어디에도 팔 수 있다. 특히 교토의 기업들은 다른 곳의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하게 제품을 만든다. 그러면 세계적인 상품이 된다고 믿는다.보통 새로운 게임기를 하나 만드는 데 5년 정도 걸린다. 지금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지만 아직 대외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DS와 위는 게임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경우인데, 그런 패러다임 시프트가 또 언제 필요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닌텐도는 1889년 교토에서 출발한 화투 제작사를 모태로 1947년 창업된 게임기 회사다. 1980년대 슈퍼패미콤 게임보이 등을 개발해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을 주도하다 1996년 닌텐도64가 실패해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전기를 맞은 건 협력 업체의 게임 개발자 출신인 이와타 사토루 사장을 2000년 영입하면서부터다. 그는 천재적인 게임 개발자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와 함께 닌텐도DS, 위(Wii) 등을 잇달아 개발해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을 평정했다. 이 덕분에 닌텐도의 창업자 3세인 야마우치 히로시(81) 상담역은 지난해 78억 달러의 재산을 모아 일본 최고 부자가 됐다.차병석·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