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달인에게 배운다 - 현대자동차 이종인 차장

달인에게는 불황을 피해가는 노하우가 있는 것일까. 결과만 놓고 말하면 누구도 불황을 피해갈 수 없지만 평균적인 판매 감소에 비해 훨씬 뛰어난 성적을 보여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력 15년차의 이종인 차장(42·현대자동차 주엽지점)은 매년 10명씩 선정하는 전국판매왕을 2002년, 2005년, 2007년, 2008년에 걸쳐 받을 정도로 달인이지만 지난해엔 판매 감소를 겪어야 했다. 2007년 281대를 팔았는데 2008년에는 240대에 그친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가 겪는 수요 감소와 감산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이번 커버스토리의 의도와 달리 불황이라고 해서 특별하게 영업 방식이 바뀐 것이 없다는 이 차장의 설명에 약간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의 영업 원칙은 불황에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영업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나’를 파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어제도 한 업체 직원의 조부상에 갔다 왔다”는 그에게 영업 사원이 고객의 상가(喪家)에 가는 일이 너무 속보이는 일은 아닐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2~3개월의 짧은 기간이라면 몰라도 2~3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계가 되면 또 다릅니다. 고객과 판매원의 관계를 넘어서면 하나의 가족이자 사업 파트너가 됩니다.” 이렇게 장기적인 관계가 되면 자연스럽게 구매로 연결된다. 개인적으로 차가 필요하거나 업무용 차량을 구매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가장 편안하고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다만 고객이 차를 계약하는 ‘접점’에서는 나름의 스킬이 필요하지만 일단 자신에게 문의가 오도록 하는 데는 이런 영업 원칙이 기본이라는 것.영업과 관련해 ‘지인 마케팅’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흔히 가족 친구 선후배 등 친분을 이용한 영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입사 때 선배가 한 말이 있습니다. ‘연고 판매’는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연고 판매에 의존하다 보면 고객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에 소홀해지기 때문에 생명력이 짧아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라리 일반 고객에게 명함 한 장, 전단지 한 장을 더 돌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 선배의 충고였다.불황이지만 그의 영업 방식은 지금도 그대로다. 그는 “1 대 10 대 100의 원칙이 있다”며 “100번 DM(Direct Mail: 우편으로 보내는 광고)이나 e메일을 보내는 것보다 10번 전화하는 것이 낫고 10번 전화하는 것보다 1번 만나는 것이 더 낫다”고 노하우를 밝혔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박근혜 후보가 다친 손목에 붕대를 감고 한 명이라도 더 악수하려고 하던 모습이 겹쳐졌다.돌발 질문을 던져보았다. “만약 차를 사 주고 또 고객 몇 명을 더 소개해 준 친척이 돈을 빌려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잠깐 망설이던 그는 “돈을 빌려주면 사이가 더 멀어집니다. 다만 대답할 때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느냐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영업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평소 ‘형님 동생’ 하며 지내던 고객이 법인용 차량을 대량 구입한 뒤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는 참 곤란했다며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때는 원칙에 입각하되 상황에 맞게 해결할 수밖에 없다.무작정 가격을 깎아 달라는 고객은 어떻게 응대해야 할까. “워킹 고객은 보통 3~4군데 영업점에서 견적을 뽑아 본 뒤 무작정 할인해 달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지점에서는 100만 원을 할인해 주기로 했다고도 하는데, 사실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사가 책정한 가격은 영업 사원이 조절할 수 없습니다. 무작정 할인을 요구하는 고객은 설득해도 듣지 않습니다. 설득이 가능한 경우에는 회사가 준 가격표와 판매 수당 조견표를 아예 보여 줍니다. 보통 세 번은 깎아 달라고 얘기하는데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종이에 인쇄된 것을 보여주면 효과가 큽니다. 보통 영업 사원이 굉장히 많은 수당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만약 제가 차량 한 대당 100만 원을 받는다면 지난해 제 실적을 곱하면 1년에 아파트 한 채씩은 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격을 할인해 주는 것보다 판매 후 관리를 잘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그의 자동차 판매 노하우 중 눈여겨볼만한 것이 있었다. 차를 사려는 고객은 이미 마음속에 차종·사양·색상을 정해 놓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객이 얘기하는 차를 파는 것이 사실은 제일 쉬워요.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다른 영업 사원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는 고객이 정한 것과 다른 사양을 설명해 주고 다른 컬러를 권유해 보기도 한다. 그러면 고객은 같은 차종이라도 길에서 보이는 다른 색상의 차들을 보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권유한 영업 사원을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평범한 영업 사원이 아닌 기억에 남는 영업 사원이 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것이 포인트다.자동차 영업 사원이 가장 곤란을 겪을 때는 신차에 대한 컴플레인(제품에 대한 불만 제기)이 들어올 때다. 보통 신차에 결함이 있으면 고객은 교환·환불을 원하지만 업체 측이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영업 사원이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한 고객이 차를 받기도 전에 광택약을 사서 차를 받은 뒤 광택해 주는 곳에 차를 맡겼습니다. 이 정도면 차를 진짜 아끼는 사람인데, 광택 집에서 미세한 도장 불량을 발견했습니다. 영업소의 자체 정비사가 2번 방문했고 저도 해결 방법을 찾았는데 결국 추가 가격 할인과 무료 광택 서비스를 약속하고 마무리됐습니다. 결국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고객은 ‘차를 만든데서 잘못한 거지, 판 사람이 뭔 죄냐’고 얘기하며 받아들입니다.”자동차 영업 사원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 있다.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정비소를 소개해 주는 것이다. “정비소 전화번호만 알려주면 아마추어고요, 직접 전화해 ‘잘 봐 달라’고 얘기한 뒤 고객에게도 제 소개로 왔다고 얘기하라고 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정비소에서도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됩니다.” 정비소들도 영업 사원들의 소개가 중요하기 때문에 상부상조하는 관계다.나아가 고객의 영업을 도와 준 일도 있다. 한 생수 대리점에 트럭을 판 적이 있는데 가끔씩 생수가 필요한 관리 고객에게 그 생수 대리점을 연결해 준 것이다. 생수뿐만 아니라 TV까지 팔기도 했다. “심지어 중매도 서 준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자동차 영업 사원을 넘어 고객들에게 ‘삶의 윤활유’ 역할도 많이 하고 있다. 중매를 섰던 그 집에서는 본인들 차량뿐만 아니라 지인들을 소개해 줘 24대를 팔 수 있었다.지금까지 그를 거쳐 간 고객은 1500여 명. 그는 고객 명함에 구멍을 뚫어 고리에 연결해 200여 장을 늘 들고 다니며 짬 날 때마다 들여다본다. 그러면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또 고객과 통화한 내용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는 출장·휴가·여행 갈 때도 늘 손에서 떼지 않는다. 새벽 2시에도 고객의 전화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 시간에 전화했겠어요. 그러니 받지 않을 수 없지요.” 이종인 차장은 “여우처럼 냉철한 머리, 곰처럼 넉넉한 가슴, 오리의 물갈퀴처럼 보이지 않는 부지런함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영업의 자세를 늘 유지하고 은퇴할 때까지 영업에서 승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물건이 아닌 ‘나’를 팔아라.▷연고 판매를 피하라. 일반 고객에게 명함 한 장이라도 더 돌려라.▷메일 100통보다 전화 10통이, 전화보다 1번 직접 만나는 것이 훨씬 낫다.(1 대 10대 100의 법칙)▷무리한 가격 할인을 요구하면, 활자화된 가격과 수당을 보여줘라.▷고객이 정한 것과 다른 사양·색상을 한 번 더 권유해야 기억에 남는다.▷정비소와 고객이 모두 만족하도록 잘 연결해 줘라.▷차만 팔지 말고, 고객이 필요한 것을 채워줘라.▷불량 제품에 대해서는 교환이 불가능해도 판매한 사람으로서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라.▷밤 늦게 전화 해도 친절하게 응대하라. 오죽 답답했으면 했겠는가.▷선물은 금방 치워버리는 화환보다는 책상 위에 오래 둘 수 있는 분재가 낫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