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 달인에게 배운다 - CJ홈쇼핑 동지현 쇼호스트

10년은 강산이 변하는 시간이다? 아니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얼어붙었던 햇병아리 쇼호스트가 한 시간 동안 수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베테랑으로 변신하게 된 시간이다. 강산이 절로 변하지 않듯, 홈쇼핑 쇼호스트 동지현(36) 씨의 오늘은 비바람에 깎이고 더위와 추위 속에 얼녹으며 만들어졌다.홈쇼핑 쇼호스트는 대본 없이 생방송을 한다.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 동안 즉흥적으로 말하기, 그것도 사리에 맞고 간결하게 내용을 채워 말하기란 보통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최고의 품질입니다.” 최상급 표현은 사용할 수 없다. “당분간 이런 조건 만나기 힘듭니다.” 혹시 재방송이라도 있으면 큰일 난다. “정정합니다.” 상품 설명을 하러 나온 게스트가 돌발적으로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을 때, 얼른 알아채고 즉각 바로잡아야 한다.“심의가 아주 엄격해 표현을 조심해야 해요. 매출 상황이 실시간으로 뜨기 때문에 추이를 보면서 멘트에 반영해야 하고요. 고객 문의 사항이 많이 들어오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초창기에는 긴장해서 제품 설명을 빠뜨리거나 게스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엉뚱한 소리를 한 적도 있어요.”쇼호스트 10년차인 동지현 씨는 첫 방송에서 조명이 들어온 후 그대로 굳어버려 약 5초 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말 한마디로 고객의 지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자타 공인 최고의 쇼호스트지만 말이다.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패션, 속옷, 미용이다. 홈쇼핑의 주요 고객인 30대 후반에서 40대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제품군이고 쇼호스트의 설명에 좌지우지되는 이른바 ‘쇼호스트 고관여 제품’들이다. 야무진 여성들의 지갑이 활짝 열리는 순간, 그 순간을 창조하는 그녀만의 노하우를 물었다.“남녀노소에게 잘 맞는 상품이라고 하기보다 정확한 타깃을 정해 주는 게 더 높은 매출을 일으킵니다. ‘30대 이후 아이 낳으신 분들이 찾는 스타일’이라는 식으로 용도나 상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더 많이 찾으시더라고요.”TV를 흘려보던 시청자에게 지금 이 상품이 자신이 찾고 있던 그 물건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꽂는 멘트다. 똑같은 상품이라도 어떤 색상은 누구에게 잘 어울리겠다는 설명을 쇼호스트가 덧붙이면 그 색깔이 다른 것보다 더 많이 팔린다. 자신의 말과 매출이 직결되는 때, 쇼호스트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낀다.상품 설명도 타깃 설정과 비슷한 맥락이다. 흠잡을 데 없이 다 좋은 상품이라는 설명은 되도록 하지 않는다. 솔직하게 장단점을 밝히고 언제 어떻게 쓰면 효과적일지 대안을 제시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이불을 세탁할 때 주의하라든지, 신발이 치수가 크게 나왔다든지 하는 말을 덧붙인다. 이렇게 하면 반품이 확실히 줄어들어 실제 구매율이 높아진다.“최신 기능이 많지 않은 전자제품의 경우 오히려 그걸 강점으로 삼아 소개합니다. ‘기능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데 난 복잡한 건 싫어, 하시는 분들 있죠. 바로 이겁니다’라는 식이죠. 이런 멘트를 생각해 내려면 쇼호스트가 직접 이불을 덮고, 옷을 빨고, 화장품을 발라봐야 합니다.”제품에 대해 달변을 토해내기 위해서는 쇼호스트가 따로 공부해야 한다. 업체 측으로부터 설명도 듣고 담당 머천다이저(MD)와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도 두어 차례 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 모르는 제품의 공부는 당연하고, 잘 아는 제품도 맛깔 나는 단어를 찾기 위해 잡지나 강의를 찾는다.“신입일 때 400만 원짜리 벽걸이TV 방송을 맡았어요. 컴퓨터나 영상 제품 쪽에는 문외한이었죠. 누가 내 엉성한 설명을 믿고 400만 원이라는 거금을 쓸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많이들 사주셨어요. 그때 이후로는 제품을 공부하느라 새벽 3시 이전에 잠든 날이 거의 없어요.”쇼호스트의 또 다른 고충은 화면에 몸 전체가 다 클로즈업된다는 것이다. 화장품 방송에서는 얼굴을, 옷은 몸을, 신발은 발을 지나칠 정도로 가까이 잡아낸다. 손톱 하나까지 다 노출이 되므로 전신 관리를 받는다. 고객들은 전문 모델이 착용한 것보다 쇼호스트의 차림새를 더 신뢰하고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란다.“체중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써요. 제가 옷을 입은 모양이 흉해서 제품이 팔리지 않으면 어떡해요. 홈쇼핑 회사만이 아니라 물건을 만든 업체 직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잖아요. 제가 관리를 잘못해 그분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죠.”철저한 자기 관리 덕인지 그녀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다섯 살배기 아들이 있는 엄마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대한항공 승무원 출신으로 몸에 밴 꼿꼿한 자세 역시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 ‘동안’이라는 것은 쇼호스트에게 양날의 검일 수 있다. 또래인 주고객층 주부들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일부러 방송에서 제 나이를 밝혀요. ‘저도 결혼했어요. 저도 애 있습니다. 애 낳고 20kg 찌고 나서 아직 다 안 빠졌습니다. 이번 연말연시와 설 연휴 지나고 더 쪘습니다. 우리 이런 다이어트 제품이 필요하잖아요.’ 동질감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이죠.”그녀는 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해 고객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최고의 판매 전략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서 고객과 완전히 똑같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에게 닮고 싶은 ‘워너비(Wanna-Be)’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주부들의 평균 체형과 비슷한 모델을 써본 적이 있었는데, 전문 모델에 비해 매출이 떨어졌어요. 또 30대가 주요 타깃일 때는 오히려 20대에게 말하듯이 해야 잘 팔리고요. 이렇게 잘났으니 따라오라는 분위기가 아니라 당신도 노력하면 이 정도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내야 하죠.”그녀와 방송을 함께하거나 지켜본 사람들은 참 편안하다는 말을 한다. 자신이 할 말을 아끼는 대신 게스트에게 기회를 주고 친구와 수다 떠는 것처럼 카메라를 향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제품이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다’는 신조로 방송을 한 결과가 높은 매출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저는 스튜어디스를 하면서 기내에서 무릎을 꿇고 서비스를 해 본 사람이잖아요. 친절이 그냥 습관이 되었어요. 이것도 모르냐는 듯이 고객을 가르치기보다 상냥하게 알려주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저만의 무기일 거예요.”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는 친절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한 사람이다. 최장기 무이자 할부, 자동 주문 전화 이용처럼 판에 박힌 말도 남과 다르게 표현하려고 머릿속을 달달 볶는다. 10년차인 지금도 다른 쇼호스트의 방송을 거의 보지 않고 자신의 방송만 꾸준하게 점검한다.“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방송 중 다급해지면 남이 썼던 말을 그대로 가져오더라고요. 홈쇼핑 4개사 채널을 틀어 놓은 분장실에서는 소리를 줄여 달라고 부탁해요. 제 방송을 보는 이유는 저도 모르게 새로 생긴 잘못된 습관들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잠깐 채널을 돌리는 사이에 봐도 주목성 높은 멘트 말하기, 화면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내기 등등 좋은 쇼호스트가 되기 위해 그녀가 개발한 노하우들이 많다. 꾸준히 매출을 올리는 쇼호스트로서 그녀가 가진 최고의 노하우는, 노하우 하나를 쌓았다고 해서 거기에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콕 집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가라.▷솔직하게 장단점을 밝히고 대안을 제시한다.▷전문가처럼 공부하고 연예인처럼 관리한다.▷고객과 공감대를 형성해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고객이 닮고 싶은 ‘워너비(wanna-be)’가 돼라.▷남을 먼저 배려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라.▷가르치지 말고 상냥하게 알려준다.▷남들과 다른 나만의 표현을 개발한다.김희연·객원기자 foolf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