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퇴백, 삼초땡, 에스컬레이터족, 웰빈족, 실업예정자, 인턴세대….경기 침체로 인해 신조어도 진화하고 있다.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는 이제 옛말이 된 지 오래고,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이태백’에 이어 이십대에 퇴직한 백수라는 뜻의 ‘이퇴백’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저임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 세대를 뜻하는 ‘88만 원 세대’는 정규직으로 되기 어렵고 공공근로나 단기 비정규직에 그치는 청년 구직자들을 이르는 ‘인턴 세대’로 변화했다. 삼초땡은 ‘삼십대 초반이면 땡’, 웰빈족(well貧족)은 ‘잘 빌붙는 사람’을 뜻한다. ‘졸업예정자’는 졸업 후 대부분 백수가 되는 현실을 반영해 ‘백수예정자’로 이름이 바뀌었다.경제 현실을 반영한 이 신조어들의 바닥에 깔린 공통분모는 ‘마이너스 성장’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마이너스 성장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스러운 숫자지만 이미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다. 2008년 4분기 마이너스 5.6%라는 단기적이지만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좀 나아지겠지’라는 기대에 실망을 끼얹듯 국제통화기금(IMF)은 2월 3일 올해 한국 성장률을 마이너스 4%로 수정했다. 한술 더 떠 크레딧리요네(CLSA)는 마이너스 7.2%를 제시하기도 했다. 마이너스의 충격은 익히 예상할 수 있듯이 중소기업의 도산, 자영업자의 몰락, 대량 실업으로 이어지며 중·하위층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다.지금 불황의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평범한 가정주부라고 하더라도 소득 감소,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회사원은 소득 감소, 감원의 위협에 시달리고 학생들은 취업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실제 한경비즈니스가 나가 본 현장은 예상대로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이번 경기 침체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더 큰 것이 특징이다. 대기업은 이미 ‘IMF 학습 효과’를 통해 어느 정도 체질 개선이 이뤄진 상태라 감산, 자산 매각, 임금 동결 등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대기업에 물량을 대는 중소기업은 그대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시화공업단지의 화물 운송 주선업자는 “IMF 때는 그나마 수출 물량이 있어 전체 물동량이 30%가량 줄었지만 요즘은 60~70%가 감소한 상태”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 체질이 내수 강화로 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특히 중국 의존도가 높아 중국 경제의 현황에 따라 부침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잠재성장률 8%인 중국도 올해 6%대의 성장률이 점쳐지면서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어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근로자들의 소비력이 감소하면서 유통업계도 당연히 타격을 입고 있다. 소매시장 성장세가 2008년 5.6% 수준에서 올해 1.2~2.8%로 대폭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며 생산, 유통, 고용 시장으로 충격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다.마이너스 성장의 충격과 관련해 한경비즈니스의 전문가 긴급 대담에서 참석자들은 한국의 경기 침체가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기 위한 대안을 공통적으로 주문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원인은 다양하게 진단했지만 성장률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는데 급급해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 배경이었다는 데는 입을 모았다.이와 함께 한국의 성장 에너지가 소진되기 시작하는 2018년 전까지 남은 10년이 선진국 진입의 마지막 기회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금 한국의 베이이붐 세대랄 수 있는 1955년생의 은퇴가 시작됐고 2018년 인구 증가가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기 침체 원인이 단카이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원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었지만 영향을 미친 것은 인정되는 부분이다.전문가들은 돈을 풀어서 성장률을 플러스로 만드는 것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체질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보았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 정책으로 늘어난 유동성은 경기 회복 이후 또다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오상훈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술적 반등으로 수치상 플러스 성장률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통계치는 착시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양적인 것보다 질적인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허만율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10년 내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하면 대만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선진국 진입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며 조심스레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다행히 IMF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을 4.2%로 전망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외부에서 제시한 수치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올해 마이너스 4%에서 내년 4.2%로 성장률이 상승한다면 그 사이 8.2%의 성장을 한 셈이다. IMF도 함께 언급한 여러 국가에 비해 한국이 가장 빠른 회복 속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