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지난 1월 19일 장차관급 인사와 30일 행정안전부 장관 인사 과정을 보면 과거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된다.우선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지난해 7월 개각 때와 닮았다. 지난해의 경우 4월 말부터 터진 쇠고기 파문으로 개각 목소리가 들끓었지만 두 달 이상 끌었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는 이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한 번 신뢰를 준 사람은 웬만하면 교체하지 않는다는 게 이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다. 경험도 중요한 원칙이다. 이 대통령은 수차례 “훈련을 세게 했는데 뭘 또 바꾸나”라며 인사를 미뤘다. 이번 인선 과정도 비슷하다. 지난해 9월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개각 주장이 나왔지만 4개월 동안이나 청와대에선 “국면 전환용으로 안 한다”고 차단막을 쳤다.개각은 여권에서부터 불을 지폈다. 금융 위기에 대한 초동 대처 미흡 등의 책임을 물어 경제 라인 책임론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전쟁 중 장수를 바꿀 수 없다”는 논리를 대며 방어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말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로 한때 경질론은 주춤했지만 얼마가지 않았다. 부처 장관들에 대한 업무 평가가 실시되면서 연말 이전에 경제팀뿐만 아니라 외교안보팀까지 포함한 8, 9개 이상의 대폭 개각설이 흘러나왔다.청와대는 “개각의 ‘개’자(字)도 논의된 적이 없는데 자꾸 얘기가 나오니 당황스럽다”고 거듭 부인했다. 이 대통령은 수차례 “장관 하나 바꿔 나라가 잘될 것 같으면 매일 바꾸겠다”고 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새해 들어 “지금이 개각 얘기할 때냐”며 설 이전 여권 개편을 일축했다. 그러다가 개각이 전격적으로 단행됐다. 어찌됐든 지난해 “사람만 자주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했다가 급작스럽게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인선의 막전막후를 보면 지난해와 다른 점도 보인다. 지난해 초 정권 출범 직전 조각을 할 땐 류우익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 등이, 6월 청와대 개편 땐 한나라당 모 의원 등 핵심 측근 인사들이 인선 실무를 주도했다. 장소는 롯데호텔이었으며 작업은 극비리에 이뤄졌다. 물론 이 대통령이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최종 결단을 했지만 실무까진 직접 챙기지는 않았다. 반면 이번엔 이 대통령이 전 과정을 주도했다. 이 대통령이 인사비서관실의 존안 자료를 토대로 정정길 대통령 실장과 김명식 인사비서관 등의 보좌를 받아 후보들을 일일이 검토한 후 민정비서관실에서 정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인선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이 대통령과 정 실장, 김 비서관 등 3~4명에 불과했다. 개각 발표 당일 오전까지 이 대통령은 명단을 최종 점검했다. 이 과정에서도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개각 발표 직전까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누가 될 것 같으냐”고 역취재하기도 했다. 개각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은 청와대가 아닌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의 입을 통해서였다. 1월 19일 개각 당일 이 대통령과 박 대표의 아침 회동 후 당에서 그 사실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개각 사실을 ‘통보’받았다는 박 대표도 구체적인 명단은 여의도 당사로 돌아와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는 도중에 받았다.1월 30일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이달곤 한나라당 의원이 내정된 사실을 발표할 때는 한나라당이 철저하게 소외된 이전과 정반대였다. 박 대표는 30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당 최고위원 회의를 거쳐 심도 있게 논의한 결과 이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 (기자회견) 30분 전에 청와대에 통보했다”며 “청와대와 교감을 해오며 당이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의 사기를 고려한 것으로, 이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를 중요시하겠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이달곤 의원 발탁도 소수를 제외한 측근 참모나 언론들이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극비리로 진행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개각 발표 이전 그 내용이 새 나가면 백지 상태에서 다시 검토할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 ‘여론 떠보기’ ‘자가발전’이 난무하면서 자칫 구설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개각은 어려운 작업인 모양이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