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요즘 기획재정부 과장 및 사무관급 공무원들은 업무 출장으로 남태령 고개(서울 사당동과 과천 사이를 잇는 고갯길)를 넘을 때면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재정부가 도입, 시행하고 있는 ‘업무택시제’의 혜택을 보게 된 뒤부터다.업무택시제란 공무 수행으로 출장을 가는 공무원이 시간적 물리적 사유(무거운 짐, 관용차 배차 곤란, 목적지 주차장 부족 등)로 콜택시를 이용하면 재정부가 사후 정산해 주는 제도다. 택시 회사와 미리 협약을 맺어 전용 스마트카드로 결제하고 운영지원과가 알아서 정산하는 시스템이어서 출장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공짜 택시’나 마찬가지다. 민간 기업에서는 이런 식의 비용처리 제도가 많지만, 국민의 혈세를 쓰는 것이어서 지출이 조심스럽다 보니 경비 집행 면에서 유연하지 못했던 정부 부처가 이런 제도를 운영하게 된 것은 파격적이란 평가다.업무택시제 도입은 공공기관 홀짝제 시행이 계기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고유가 상황에서 공무원의 차량 운행을 이틀에 한 번씩 쉬도록 제한했다. 이 때문에 개인 차량을 쓸 수 없는 날이면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청와대 중앙청사 국회 등으로 가는데 극심한 불편을 겪었다.특히 관용차를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의 고통은 더욱 심했다. 한동안 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는 한쪽 어깨에 노트북 가방을 메고 양손에 서류가 가득한 쇼핑백을 들고 낑낑대며 계단을 내려가는 공무원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역은 지상으로부터 승강장까지가 유독 깊게 설계돼 고생은 더 했다.그러나 업무택시제 도입으로 이런 불편이 크게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업무 효율성까지 크게 향상됐다는 게 재정부 공무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출장 가는 공무원들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만은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손수 운전해야 하는 자가용과 달리 택시를 타면 뒷좌석에 편히 앉아 가면서 회의 관련 서류를 한 번 더 체크해 볼 수 있다. 목적지 주차장을 가득 채운 차량들을 보면서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뱅뱅 돌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다.재정부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주차 공간이 늘 부족한 중앙청사로 갈 때면 차를 댈 곳을 찾지 못해 회의 시간에 늦기 일쑤였다”며 “그렇다고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자니 짐이 많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런 불편이 없다”고 말했다. 재정부는 출장 때와 함께 저녁 11시 30분 이후까지 야근하고 퇴근하는 공무원도 업무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불가피하게 야근해야 하는 실무자들의 사기가 그나마 올라갔다는 후문이다.공무원들의 호응도가 높다 보니 업무택시 이용은 매달 크게 늘고 있다.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첫 도입 당시 한 달에 365건이었던 이용 실적은 △10월 909건 △11월 1492건 △12월 925건 등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역 택시 업계도 손님이 늘었다며 희색이다. 재정부는 과천에서 서울로 나갈 때는 과천 안양 군포 의왕 지역의 연합콜택시인 ‘하나콜’을 이용하고 서울에서 과천으로 복귀할 땐 서울지역을 영업 구역으로 하는 ‘SK나비콜’을 이용하고 있다. GPS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손님을 찾아 돌아다니는 빈 택시만 골라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어서 택시 업계 지원 효과도 크다는 분석이다.다만 통상적인 출퇴근용(야근 제외)으로 쓰거나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등 홀짝제가 적용되지 않는 날에 업무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재정부 측은 설명했다. 업무택시제는 홀짝제를 통한 에너지 절약과 택시 업계 지원, 업무 효율성 향상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업무택시 이용이 활성화되면서 과천청사관리소 측은 택시의 청사 내부 출입을 일부 허용하고 있을 정도다. 재정부 관계자는 “종전에는 관용차 배차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홀짝제를 도입하자 중하위직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지만 업무택시제 도입으로 이런 불만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설명했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