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파고가 높고 길다. 100년 만의 불황이라는데 얼마나 심할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 각 기업들이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구조조정에 힘쓰고 있지만 신통한 해법이 없는 모양이다.1990년대 말에는 과다한 부채 의존, 방만한 경영 등 비용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번에는 전반적으로 부채비율이 낮고 사업 범위도 넓지 않은데 매출이나 이익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경제 전문가들이 입만 열면 과감한 구조조정을 하라고 주문하지만 비용이 아닌 수익 측면의 불황에 대처해 어떻게 구조조정하라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경영 체제에 대한 관심도 증대되고 있다. 일본의 시사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근 심각한 경제 위기에서 성장을 지속하는 가족 기업의 사례를 특집으로 다뤘다. 이들이 강력한 리더십과 치밀한 결속력으로 높은 성과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불황기에 소유 경영 체제가 우월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경영 체제는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지만 전문 경영 체제와 소유 경영 체제 두 가지로 나누어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문 경영 체제와 소유 경영 체제는 각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고 그간 어느 쪽이 높은 경영 성과를 가져오는지 많은 연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나 발견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의미를 가지는지는 미지수인데 삼성그룹과 도요타자동차의 두 가지 경우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삼성그룹은 2008년 4월 가히 혁명적인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의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이재용 전무의 고객담당최고책임자(CCO) 사임 등 기존의 경영 시스템 근간을 바꾸는 일련의 조치가 취해진 것이다. 이제 삼성은 각 계열사별로 독자 경영 방식에 따라 운영되고 사장단회의라고 하는 협의체가 그룹에 관한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도요타자동차는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 도요타가 2008 회계연도 결산에서 영업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되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도요타는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의 증손자인 도요다 아키오를 2009년 6월 주주총회 후 이사회를 거쳐 사장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한다.이처럼 시대 변화에 따라 전문 경영 체제와 소유 경영 체제가 수시로 전환될 수 있다면 이들을 나누어 경영 성과를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 경영 체제의 선택이 성장 전략과 경영 성과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환경이나 상황의 변화에 의해 귀납적으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영 체제가 우월하고 그런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2008년 삼성의 실험, 2009년 도요타의 변신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 없이 계열사 간 통합과 조정, 신규 사업 진출, 대규모 설비 투자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전문 경영 체제 하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해 온 기업이 다시 등장한 소유 경영자에 의해 더 많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전자, 자동차 등 기존 주력 산업에서 불황을 타개하고 혁신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경영 체제의 전환으로 환경 대응과 성장 추구에 실패한다면 또다시 과거의 경영 체제로 선회하게 될 것인가.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소유 경영 체제가 좋으냐, 전문 경영 체제가 좋으냐 하는 논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경영을 잘할 수 있다면 전문경영인이든 오너 경영인이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위기 상황을 맞이해 소유 경영 체제로 복귀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의 경우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를 맞이해 신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재차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홍익대 상경대 교수약력: 1957년생. 80년 성균관대 경상대 졸업. 82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92년 일본 고베대 경영학 박사. 94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0년 옥스퍼드대 초청연구원. 2005년 홍익대 상경대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