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뱃돈과 어린이 경제 교육
설 연휴가 끝났다. 휴일을 낀 연휴라 연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지만 2009년 중 가장 긴 연휴라고 하니 더 이상의 달콤한 휴식을 올해에는 만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설 연휴 부모들이 갖게 되는 고민 중 하나는 세뱃돈 문제다. 아이들에게 그냥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기도 뭣하고 반대로 ‘엄마 은행’에 믿고 맡기라고 하기엔 자녀들의 반발이 적지 않다. 매년 되풀이되는 갈등이지만 이것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위한 협상은 결코 쉽지 않다. 흔히 말하지 않던가. 협상 능력이 빼어난 일류 비즈니스맨들도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이 자녀들과의 협상이라고.세뱃돈은 사실 자녀들의 경제 교육을 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수단이다. 어린이 경제 교육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용돈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용돈 문제에서 부모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용돈의 소유주가 누구인가?’하는 문제다. 부모들의 입장에선 엄마 아빠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이므로 당연히 돈의 원래 주인은 자신들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아이들의 생각은 딴판이다. 자신의 돈으로 여긴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해 욕망을 갖고 있다. 돈의 효용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돈이 있으면 자신이 갖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쯤은 잘 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돈에 대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용돈을 주기적으로 반드시 정해진 날짜에 맞춰 줘야 하는 이유다.한번 생각해 보라.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데 사장 마음대로 준다면 어떤 샐러리맨이 이를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세뱃돈도 용돈과 마찬가지다. 엄마는 엄마 은행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들은 엄마 은행을 매우 불안하게 생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 자신의 돈을 가져가서 꿀 먹은 나쁜 벙어리 통장이라고 여긴다. 따라서 부모들은 먼저 세뱃돈의 주인이 자신들이 아닌 아이들의 것이라는 냉정한(?)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여기에 대해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친척들이 준 돈 만큼 우리들의 호주머니에서도 나간다. 일종의 맞교환과 같은 것인데, 왜 아이들의 소유라고 얘기하는가.’ 일리 있는 반박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협상의 대상인 아이들은 부모의 이런 사정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아예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전혀 협상이 이뤄질 수 없다. 협상의 본질은 어느 일방의 것을 몽땅 다른 한쪽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양극단의 중간 어느 지점에서 서로 합의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도 예외는 아니다.세뱃돈을 두고 협상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아이 명의로 된 어린이 금융 상품을 갖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저축과 투자 목적의 어린이 금융 상품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어린이 적금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 펀드다. 이들 통장은 자녀들의 명의로 개설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하다. 바로 아이들의 명의로 즉, 자녀들이 소유권을 갖고 있는 통장인 것이다.이 두 상품의 용도는 운용 기간과 목적에 따라 다르다. 어린이 적금은 성인용 적금 상품과 원리상 큰 차이가 없는 확정금리형 상품이다. 확정금리형 상품은 1~2년 정도 단기간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유용하다. 예를 들어 가족 휴가비용을 조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가족들이 함께 가는 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여행에 필요한 비용을 계산한 후 가족들 간에 기여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부모의 비중이 당연히 높을 것이고 아이들의 비중은 낮을 것이다.하지만 어린이 적금은 5년 이상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교육비와 같은 자금을 조달하는 데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인플레이션 위험에 전혀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교육보험을 생각해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교육보험은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부모들 사이에서 필수 금융 상품의 하나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교육보험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0~20년의 세월이 흘러 정작 교육비가 필요했던 시점에 와서 보니 물가 때문에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자녀 교육비나 아이들의 장기적인 미래를 생각한다면 물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어린이 펀드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식형 상품도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단기간에는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비할 수 없지만 10년 이상 투자하면 거의 대부분 인플레이션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만일 어린이 금융 상품에 가입했다면 이제 아이들과 협상하는 것만 남았다. 협상을 위해 우리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미국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한 자본주의 역사상 최대 부호 존 D 록펠러다. 록펠러는 자녀들에게 용돈 기입장을 쓰게 하고 항상 검사했다. 3분의 1은 저축하고 3분의 1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나머지는 자선에 쓰도록 했다. 이런 엄격한 용돈 교육을 통해 ‘3대 가는 부자가 없다’는 속설을 뒤엎고 오랫동안 가문의 부(富)를 유지하고 있다.꼭 록펠러처럼 3분법을 쓸 필요는 없지만 아이와 협상할 때 일부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저축이나 투자를 하도록 하고, 일부는 아이에게 재량권을 주어야 한다. 모든 돈을 저축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이는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돈이라는 것은 버는 것 못지않게 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중에서도 돈을 수전노처럼 다루는 습관을 가진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소액 기부를 통해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최근 우리나라 부모들 사이에서도 어려서부터 올바른 경제 감각을 심어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진 이들이 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어린이 경제 교육의 본질은 돈 잘 버는 아이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재주가 다르듯이 돈을 버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들이 가르쳐야 할 경제 교육은 돈을 다루는 기술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 커다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과 같은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서울대에 가고 미국의 명문 대학에 갈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공부하는 재주는 떨어지더라도 다른 재능을 살리고 올바른 금전 감각을 갖는다면 실패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또한 어린이 경제 교육은 본질적으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점도 잘 알아야 한다. 아무리 학교에서 경제 교육 수업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금전 감각과 태도를 갖게 되지는 않는다.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정치 경제 수업 중 지금 기억나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부모님들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열심히 일한 대가로 돈을 벌어 은행에 가서 저축하셨던 모습은 나이 사십 줄이 넘어서도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설 연휴를 마치고 가족이 함께 모이는 자리를 만들어 보자. 지금까지 계속 경제 교육을 해 왔던 부모들은 다시 한 번 그간의 과정을 점검해 보자. 새로 시작하는 가족이라면 새해에는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경제 교육을 고민하도록 하자.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각종 칼럼 집필, 강의, 라디오·TV 출연 등을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이채원의 가치투자(공저)’ 등을 펴냈으며 최근 십수 년 동안 연구한 부자들의 생각과 삶을 담은 ‘부자들의 생각을 읽는다’를 출간했다.이상건·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